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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일 가구마다 비치된 물탱크
2007년 5월 2일 가구마다 비치된 물탱크 ⓒ 김환희

2007년 5월 2일 집 주인이 설치해 준 물탱크
2007년 5월 2일 집 주인이 설치해 준 물탱크 ⓒ 김환희
이곳 필리핀 바기오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점은 아마 물일 것이다. 특히 이곳은 고산지대라 물이 나오는 날(월, 수, 금)이 정해져 있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까? 바기오의 모든 가정에 있어 물탱크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곳 바기오가 필리핀의 다른 지역에 비해 시원하기는 하지만 가끔 이상 기후로 연일 무더위가 이어지는 날에는 물의 소비량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물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물을 충분히 받아두지 않으면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곳에 오기 전에 물 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집 주인에게 몇 달 전부터 물탱크 하나를 더 설치해 줄 것을 부탁을 하였다. 그런데 집 주인은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내 이야기를 무시하였다. 무엇보다 물탱크에 물이 없을 때마다 물을 배달시켜야 하기 때문에 따른 비용 또한 만만치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불편함을 여러 번 겪은 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집 주인을 찾아 갔다. 그리고 집 주인에게 애로사항을 털어 놓았다. 그러자 주인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며칠 뒤에 물탱크 하나를 더 설치해 주겠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물탱크를 설치를 주겠다던 약속 날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외국인과의 약속을 안하무인격으로 생각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사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전화를 걸어 물탱크를 설치해 줄 것을 종용하였다. 결국 집 주인과 몇 번의 실랑이를 벌인 후에야 비로소 우리 집에 물탱크를 설치되었다. 중요한 것은 물탱크를 설치하기까지의 기간이 2개월 이상이 걸렸다는 사실이다.

올 1월 달의 일이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컴퓨터와 인터넷을 설치하기 위해 이곳에 오랫동안 생활해 온 한 지인으로부터 필리핀 현지인을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인터넷을 설치하고 난 뒤, 그 현지인은 인터넷 사용에 있어 문제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하며 도와주겠다며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그 이후로 인터넷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에게 전화를 걸면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찾아와 도움을 주었다. 특히 그 현지인은 영어 구사능력이 유창하여 의사소통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2007년 5월 2일 현지인이 써 준 차용증1
2007년 5월 2일 현지인이 써 준 차용증1 ⓒ 김환희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로부터 전화가 걸러왔다. 갑작스런 그의 전화에 처음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내가 수술비 때문에 퇴원을 못한다며 미안하지만 돈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집으로 오게 하여 2000페소(한화 4만원)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다음 달 봉급날에 꼭 갚아주겠다며 원하지도 않은 차용증까지 써주는 친절함까지 써주며 "Thank you"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다음 달 그가 돈을 갚기로 한 날짜가 되었다. 아침 일찍 오후 5시에 우리 집을 방문하겠다는 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내심 필리핀 사람들의 정직과 신용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후 5시쯤 되어 그가 찾아 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그렇게 밝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I am sorry"라고 말을 하며 종이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내용인 즉,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봉급을 받지 못해 며칠 뒤에 돈을 꼭 갚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찾아와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는 그가 왠지 믿음직스러워 힘을 내라고 말을 하며 그를 돌려보냈다.

며칠이 지나 그가 돈을 갚기로 한 날짜가 되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오후에 찾아오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내게 보냈다. 이번에는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오후에 찾아 온 그는 또 한 장의 차용증을 건네며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사정인즉,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게 갚아야 할 돈을 장례비로 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돈은 다음 달 봉급때 꼭 갚겠다고 하였다. 어머님의 장례비에 그 돈을 썼다는데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다음 달, 돈을 갚겠다는 날짜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으며 미안하다는 전화 한 통화 없었다. 심지어 내가 전화를 걸어도 받지도 않았으며 아예 전화를 끊어 버리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그가 내게 보여준 모든 친절이 가식적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람과의 약속을 우습게 생각하는 현지인의 행동이 괘씸하기까지 하였다.

요즘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그에게 매일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한편으로 현지인들이 보여주는 모든 친절이 가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기대하면서.

"'We would like Philippines who keep their promise. Don't think of Koreans as a dupe!"

덧붙이는 글 | 강원일보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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