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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지난 1월 말, 문학기행 차 섬진강변에 위치한 진뫼마을 고향집에 온 서울 초등문예창작연구회(백미문학) 회원들.
ⓒ 전라도닷컴

"안녕하세요? 김도수 선생님! 저는 서울 홍제동 홍은초등학교 6학년 4반 신정화 선생님 제자 임상윤이라고 합니다. 제가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를 읽었거든요.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이번 4월 25일 날 우리학교 공개수업에 꼭 오실 거죠? 저희 엄마도 그 책을 읽고 너무 부럽대요. 우리 가족은 시골에 집이 없거든요. 그럼 그 날 뵈요. 선생님을 무척 보고 싶어 하는 상윤 올림."

지난 1월 말.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서울지역 초등학교 교사들 모임인 '서울 초등문예창작연구회(백미문학)' 회원 140명이 섬진강 상류에 자리 잡고 있는 내 고향 진뫼마을(전북 임실)에 문학기행을 왔다. '서울 초등문예창작연구회'는 방학을 이용하여 문학작품의 현장을 찾아나서는데 올 겨울에는 내가 쓴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전라도닷컴 펴냄)란 책을 읽고 찾아왔다.

그렇게 문학기행을 온 서울홍은초등학교 신정화(51·서울초등문예창작연구회 회장) 선생님은 "책 읽는 동안 고향사랑과 부모님 생각하는 마음이 애절해 가슴 먹먹했다. 모든 게 서양화되고 시멘트 깔린 도시에서 고향과 자연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자라는 우리 학생들에게도 들려주고 싶다"며 "책에 담긴 이야기를 학생들과 함께 시(詩)로, 극본으로 바꿔보는 수업을 해 보겠다"고 했다.

지난 4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홍은초등학교(교장 황연규) 6학년4반 교실에서 진행될 공개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전남 순천발 서울행 첫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름답고도 소박한 고향 사랑, 부모 공경하는 효심, 자연 사랑, 가족 사랑, 친구와 우정 등 책상에 앉아 머리로 쓴 글이 아닌 발자국 따라 남겨진 책이라 선생님 책을 선택했는데 하늘이 두 쪽 나도 오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실천력'이 마음을 사로잡아 학부형들까지 책을 읽고 공개수업에 오시라 했는데 안 오시면 안됩니다."

아이들에게 생생한 육성으로 섬진강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신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새벽잠을 설치고 상경하게 된 것이다.

섬진강 촌놈 '공개수업' 주인공이 돼 상경하다

▲ 선생님과 아이들이 열심히 준비한 공개수업. 학부형들이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
ⓒ 박정순

신정화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6학년 4반 교실에 도착하니 마침 점심시간이다. 아이들은 나를 보자 차려놓은 식판을 놔두고 우르르 몰려나와 사인 좀 해 달라고 줄을 선다. 교실 뒷면 게시판에 붙어 있는 '네 칸 만화로 바꾸기, 그림으로 그리기' 등을 보니 이미 책 속에 들어 있는 내용들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수업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맨 먼저 임상윤 학생이 책 내용 중 한 꼭지인 '벼락바위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서운했을까'를 시로 바꾼 '바위 별'을 낭독하면서 공개수업은 시작됐다.

"마을의 놀이터 엄마 아빠의 쉼터 벼락바위/ 우리들을 지켜주는 수호신/ 벼락바위에서 누워 있으면 내 마음도 별같이 반짝인다/ 우리 아파트에서는 보이지 않던 별들이 보이고 마구마구 쏟아진다/ 별을 세어본다/ 셀 수 없는 별을 다 세는 날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벼락바위는 우리들의 별자리/ 벼락바위는 우리들의 천문대."

이동윤 전휘재 한송이 양은화 학생은 벼락바위 사연을 노래로 바꾸어 '벼락바위 홍제천 북한산'이라는 맑고 고운 노래를 들려주었다.

"진뫼마을 산골짜기 사이로 맑은 물 흐르는 섬진강에/ 바위들 중 가장 큰 벼락바위 우리들의 추억 가득 벼락바위…/ 넓고 넓은 홍은초 사이로 맑은 물 흐르는 홍제천에/ 벼락바위는 없지만 장마 지면 미꾸라지 놀러 오는 홍제천…/ 미꾸라지 많이 잡아서 추어탕 만들어 보자/ 보글보글 맛있게 끓여서 진뫼마을 친구에게 보내보자/ 진뫼 추어탕보다 맛있다 하면 정말 좋겠다."

권혁철 오다윤 김수민 김유리 이동주 학생은 학교 옆 홍제천에 섬진강 맑은 물 한 줄기가 흘러들어 그 강에서 수영하는 날을 꿈꾸는 '찾아가자'란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청계천 찾아가자 서울한복판/ 송사리 미꾸라지 금붕어 피라미/ 물고기들 인사에 아이들 즐거움/ 섬진강 거슬러 올라왔나 청계천 맑은 물…/ 홍제천 수영 시절 오려나/ 세검정 하늘을 이불 삼아/ 잠 잘 날 오려나 노래자랑 해볼 날/ 언제나 오려나 기다 린다 홍제천에서."

섬진강 이야기를 줄줄 꿰는 도시학교 아이들

▲ 연극공연 중인 아이들. "야, 너희 집에 누룽지 서리하러 갈까?" "그래 좋아!"
ⓒ 박정순

공개수업의 절정은 아이들이 직접 '극본'을 만들어 공연한 연극 '별 따러 가자'였다. 주인공 유민역을 맡은 윤진현 학생이 극본을 쓰고, 김연주 정주희 나현준 신영민 정혜란 김소희 김기범 최용재 임시훈 최회란 학생이 출연했다. 책 속에 나오는 진뫼마을 벼락바위의 커다란 사진을 칠판에 붙여 연극무대 배경으로 삼았다.

2006년 여름. 두메산골 섬진강 가에 있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자그마한 진뫼마을. 20여 가구 옹기종기 모여 사는 강변마을에 유민이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된다. 이사 오던 날, 유민이는 거름냄새 팍팍 풍겨오는 이곳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휴대폰도 잘 안 터지는 이곳이 싫다며 부모님께 짜증을 낸다.

지나가는 땅강아지를 보고 까무러치는 유민이를 보고 민철이가 손으로 덥석 잡으며 '뭐, 이딴 걸 가지고 그러냐'며 핀잔을 준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던 유민이는 차츰 진뫼 생활에 익숙해지고 서리 가는 것도 앞장설 정도로 잘 적응을 해가고 있다. 그러다 벼락바위에 누워 북두칠성을 찾으며 별 헤는 밤을 보낸다. 서울 별들은 다 죽었는데 진뫼 별은 이렇게 초롱초롱 떠서 나를 보고 말을 걸어오는 구나. 유민이는 잊지 못할 별 헤는 밤의 추억을 쌓고 있었다.


아이들은 책을 완전히 소화해 내고, 문학적 상상력을 더한 창작물을 내놓고, 멋진 연기까지 해내고 있었다. 수업을 참관한 사람들 모두 감탄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만드는 공연이었다.

마지막으로 김호경 박재준 유지인 학생이 돌아가며 내는 '독서 퀴즈놀이'. 책을 대충 읽었다가는 한 문제도 못 맞출 문제들이 나왔다. "진뫼마을 아이들은 뭐하고 아이스께끼를 바꿔 먹었나요?" "50만원에 팔린 고향집을 얼마에 다시 샀습니까?" "해바라기 놀이는 어떻게 합니까?" 아이들은 여기저기 손을 들며 척척 알아 맞춘다. 읽은 책의 내용을 아이들 스스로 시로, 노랫말로, 극본으로 바꾸려면 섬진강 푸른 물에 '퐁당' 빠져야만 가능했을 터. 내 보기에는 최소한 두 번 이상씩 책을 읽은 듯했다.

하지만 '서리'란 단어를 모를 정도로 시골생활을 전혀 체험하지 않는 아이들이다. 시골의 일상을 책만 읽고 극본으로 쓴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정화 선생님은 세 번째 고쳐온 극본을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단다. 전혀 손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책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고 있어서였다.

"우리 아이들 마음에 아름답고 맑은 섬진강 이야기가 스며든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섬진강 맑은 물 한 줄기를 아이들 마음 속에 흘려 보내주고 싶었는데, 뜻이 이루어진 것 같아서 행복했습니다."

"수업을 자랑하거나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보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김도수씨 같은 분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본보기로 내세우고 싶었습니다."


신 선생님이 <섬진강 푸른물에 징·검·다·리>라는 책을 주제로 공개수업을 한 이유를 학부모들에게 설명했다.

"이번 주에 고추 모 심으러 진뫼에 가야 허지 않겄소?"

▲ 홍은초등 6학년4반 아이들과 수업을 참관한 학부모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맨 뒷줄 왼쪽 끝이 본인이다.
ⓒ 박정순

▲ 지난 해 봄, 마을 앞 텃밭에 세운 부모님 '사랑비'
ⓒ 전라도닷컴

수업이 끝나자 선생님은 "작가에게 궁금했던 것이 있으면 질문하라"며 나를 교단에 세운다. 어린 시절 꿈이 교사였는데 '이제야 그 꿈이 이뤄지는구나' 생각하며 교단 앞에 섰다.

"자식들에게 돈과 물질이 아니라 벼락바위에 누워 별 헤던 밤의 추억을 물려주고 싶었다. 그러면 평생 맑고 밝은 추억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 수 있다고 믿었기에 여름방학이면 저렇게 벼락바위에 누워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자곤 했다"고 말을 꺼냈다.

"아직도 벼락바위만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맑고 깨끗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말도 해 주었다. "내게 힘들고 괴로운 일이 생길 때면, 벼락바위에 누워 별 헤던 밤의 추억을 떠올리면 금방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며 이런저런 추억들을 들려줬다.

"책 속에서 계획만 했던 '어머니 사랑비'를 이제는 세웠습니까?" "서리하면서 한번도 들키지 않았습니까?" "벼락바위에서 감자는 무엇으로 삶아 먹었습니까?" "아버지 보물 1호 투망은 지금 누가 보관하고 있습니까?"

아이들의 질문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오후 1시에 시작된 공개수업은 예정시간 40분을 훌쩍 넘겨 3시쯤에야 끝났다. 수업이 끝나고 다시 흐뭇한 자리가 이어졌다. 지난 1월 말 문학기행 차 진뫼마을에 온 서울 초등문예창작연구회(백미문학) 회원들에게 땅 속에 묻은 김장김치에 막걸리 한잔씩 대접했더니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어야 한다'며 식당에서 뒤풀이를 마련했다.

회원들은 아내에게 "징글징글하게 고향 사랑하는 사람 만나 그 동안 가기 싫은 진뫼에 가느라 수고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같은 날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요?" 라고 위로(?)를 먼저 건넸다.

98년 봄, 고향집을 산 뒤 주말이면 무조건 고향으로 달려가던 남편, '진뫼병' 환자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고향으로만 줄곧 내달리던 남편을 따라 다녀야만 했던 아내가 모처럼 속내를 꺼내 놓았다.

"한번은 진뫼 이장님이 정말 궁금한 게 있다면서 '진뫼가 그렇게도 좋소! 아니먼 남편이 옹게 헐 수 없이 따라댕기요?' 하고 물어보데요. 젊은 여자가 아이들 데리고 주말마다 남편 고향집에 따라댕깅게 보기 좋아 속에 있는 말 좀 들어볼라고 물어봤겄지라우.

사실 다른 데는 한번도 못 가 보고 어찌나 진뫼만 댕겼더니 진뫼 가는 도로가 아조 진절머리가 나 불죠. 근디 오늘 공개수업이 끝나고도 아이들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남편에게 질문을 계속 해쌌는디, 그거 보고 제가 오늘 겁나게 행복해 부렀당게요. 그동안 헛되게 진뫼에 따라댕기지는 안 힜구나 허는 생각이 들어 전에 보다 더 열심히 진뫼에 따라댕길랍니다."


밤 12시에 탄 순천행 고속버스. 좌석에 앉자마자 아내는 내 손을 꼭 붙들고 말한다. "이번 주에 고추 모 심으러 진뫼에 가야 허지 않것소?"

▲ 서울 초등문예창작연구회(백미문학) 회원들과 뒤풀이 하고 나서 기념촬영을 했다.
ⓒ 전라도닷컴

덧붙이는 글 | 김도수 기자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고향마을로 돌아가 밭농사를 짓고 있고 전라도닷컴(http://www.jeonlado.com/v2/)에 연재한 고향 이야기를 모은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란 산문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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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정겹고 즐거워 가입 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염증나는 정치 소식부터 시골에 염소새끼 몇 마리 낳았다는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다뤄줘 어떤 매체보다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살아가는 제 주변 사람들 이야기 쓰려고 가입하게 되었고 앞으로 가슴 적시는 따스한 기사 띄우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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