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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큰 아들 녀석은 만 6개월부터 영어 동화책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가 미국에 온 지 3개월 되었을 때 태어났고, 그때 집에 있던 한글 동화책은 <까꿍놀이>(최숙희 저/ 보림) 한 권뿐이었다.

지금은 미국 생활에 요령이 생겨 새 책이나 한글 책도 구입하지만, 처음 유학 생활을 시작할 때는 중고책만 샀고 그것도 2-3달러 넘어가면 비싸다고 다시 내려놓았다. 그 덕에 큰 아이 정우는 '연령에 맞춘 책 목록' 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무 그림책이나 봐야 했다. 다행이 만 30개월인 정우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 중 하나가 바로 책이다. 아무렇게나 쌓아둔 책 속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골라와 읽어달라고 졸라대면 귀찮기도 하지만 아주 기특하다.

만 8개월 무렵, 처음으로 '좋아하는 책'이 생겼다. 책을 보기보다는 빨고 씹어대는 때이니만큼,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책'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 책은 < The Three Billy Goats Gruff >(우락부락한 세 마리 숫염소). 권장 연령은 2살 반이었지만, 어차피 글은 엄마가 읽어주는 것이니 상관없었나 보다.

▲ “The Three Billy Goats Gruff” (Stephen Carpenter 그림) 표지
ⓒ HaperFestival
세 마리 염소가 무서운 괴물이 지키고 있는 다리를 건너는 간단한 줄거리다. 제일 작은 염소가 먼저 건너는데 괴물이 잡아먹겠다고 앞을 가로막는다. 염소는 벌벌 떨며 다음에 건너올 더 큰 염소를 먹으라고 말한다. 욕심이 생긴 괴물은 작은 염소를 그냥 보내준다.

두 번째 염소도 자기보다 훨씬 큰 세 번째를 잡아먹으라고 하자 괴물은 또 그냥 보내준다. 드디어 세 번째 염소에게 덤벼들지만, 세 번째 염소는 오히려 괴물을 물에 빠뜨리고 무사히 다리를 건넌다는 이야기.

염소가 다리에서 괴물을 만나는 모습이 반복되는데, 염소들이 점점 커지고, 상대적으로 괴물은 점점 작아지는 그림들이 재미있다. 염소 세 마리를 두고 첫째, 둘째, 셋째라는 서수를 가르쳐보기에도 좋다. 정우는 괴물이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염소를 위협하는 장면을 제일 좋아 한다.

성격이 거칠고 우락부락하다는 염소들도 이 책에서는 크고 동그란 눈을 갖고 있고 괴물도 어눌해 보이는 것이 귀엽다. 세 번째 염소가 괴물에 맞서는 장면도 온순한 표현으로 아이에게 읽어주기 부담이 없다.

▲ “The Three Billy Goats Gruff”(Stephen Carpenter 그림) 중에서)
ⓒ HaperFestival
"Well, come along," cried the third Billy Goat Gruff.
"I've got two big horns and four hard hooves, and I'm not afraid of you!"
So up climbed that mean, ugly troll, and the big billy goat butted him with his horns and stomped on him with his hooves, and tossed him off the bridge and into the river below.

("자, 덤벼봐라" 우락부락한 세 번째 숫염소가 외쳤습니다.
"나는 뿔 두 개와 단단한 발굽이 네 개나 있다. 그리고 난 네가 무섭지 않다!"
그러더니 나쁘고 못생긴 괴물 위로 올라가서, 우락부락한 큰 숫염소는 뿔로 받고, 발굽으로 밟고, 다리 밑 강물 속으로 밀어버렸습니다.)


▲ “The Three Billy Goats Gruff” (Susan Blair목판) 표지
ⓒ Scholastic
미국에는 잘 알려진 이 노르웨이 전래동화는 이미 여러 가지 판으로 출판되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1963년에 출판된 것을 다시 찍은 것으로, 목판 그림이 제목처럼 정말 거칠고 우락부락하다. 세 번째 염소가 괴물을 위협하는 똑같은 장면은 운율이 있어 읽는 재미는 있지만 표현이 거칠어 깜짝 놀랐다.

▲ “The Three Billy Goats Gruff” (Susan Blair목판) 중에서
ⓒ Scholastic
"Well, come along! I've got two spears,
And I'll poke your eyeballs out at your ears.
I've got besides two great, flat stones,
And I'll crush you to bits, body and bones."
That was what the big billy-goat said.
And that was what the big billy-goat did.

("자, 덤벼봐라! 나는 창이 두 개 있다. 이것으로 네 눈알을 후벼 귀로 밀어낼 테다.
또 나는 납작하고 단단한 돌이 두 개 있다. 이것으로 네 살과 뼈를 가루로 부셔버릴 테다."
우락부락한 큰 숫염소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락부락한 큰 숫염소가 그렇게 했습니다.)


이 책의 교훈이 무엇일까? 괴물처럼 욕심 부리지 말고 '먹을 것이 있을 때는 재빨리 먹어야 한다' 일까? 염소를 잡아먹겠다는 괴물이 몹쓸 짓 한 것도 아니다. 괴물도 먹어야 살 테니까. '우락부락한' 염소들과 괴물의 머리싸움에서 괴물이 진 것뿐이다. '괴물이 나빠서 물에 빠졌다(혹은 죽었다)'식의 권선징악의 결론을 미리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곧 8개월이 되는 둘째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주려고 하자, 큰 아이가 냉큼 달려와 엄마 무릎을 차지한다. 괴물이 큰 소리로 '내 다리를 건너는 게 누구냐~!'할 때는 까르르 웃어대고, 괴물이 물에 빠지자 '풍덩!'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세 마리 염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마지막 그림을 보고는, 작은 염소는 누워 먹는다느니, 까만 염소는 똑바로 먹는다느니 해설을 늘어놓는다. 둘째 아이는 책장을 잡아 입으로 가져가려고 애쓰고 있다. 아이들은 제 수준과 취향에 맞게 책을 즐길 테니 '교육적인 요소'는 신경 쓰지 말자.

아참! 돌 전에는 영어와 한글로 번갈아 읽어주었는데, 지금은 한글로만 읽어주고 있다. 다음에는 미국에서 사는 아이가 겪는 영어와 한글의 문제에 대해 말해보겠다.

덧붙이는 글 | “The Three Billy Goats Gruff” pictures by Stephen Carpenter, HaperFestival, 1998
“The Three Billy Goats Gruff” wooden cut by Susan Blair, A little owl Book,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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