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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별 동문을 소개하는 선배.
기수별 동문을 소개하는 선배. ⓒ 김재경
'재경 은중 동문가족 한마음대잔치' 문자 메시지를 따라 설레는 마음으로 차를 몰았다. 안양 평촌에서 고개 길 하나 넘은 의왕시 오전동은 산과 전답이 어우러진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동네였다.

지난해 모임에서 선배인 우성고등학교 김호기 교장이 동문회 장소가 없으면 학교 강당을 빌려 주겠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러자, 요식업을 한다는 선배는 "음식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쓰레기는 내가 치워주겠다고 나서는 선배까지 있어, 나 역시 질세라 화기애애한 정경은 내가 스케치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너무 변한 동기동창

나로서는 틈이 나지 않는 빡빡한 일정이지만, 호언장담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서둘렀다.

동기동창 윤태를 주차장에서 만났다. 윤태 옆에는 일행인 중년 신사가 있었다. "혹시, 몇 회 선배님이세요" 하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조령리 살던 '윤인식'이라고 한다. 이름은 생생한데 지천명의 세월 앞에 처음 만난 그는 너무 변해 있었다.

지난해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도 예약된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똑같은 실수를 했던 터였다. 백발에 주름살까지 이고 진 노인들이 모여 있지 않은가! 엉거주춤 뒷걸음질 치다말고, 안내장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다가 핸드폰으로 확인까지 했었다.

단발머리 소녀의 추억

인사소개를 경청하는 동문들.
인사소개를 경청하는 동문들. ⓒ 김재경
널찍한 강당에는 '동문사랑·모교사랑·은산사랑'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고, 200여명 선후배가 한자리에 모여 기수별로 단상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1~2회는 한두 분이 참석한 반면 3회부터는 참석 인원이 많았다. 회장을 역임한 조한준 선배는 "은산 중학교 창립초기에 벽돌을 나르던 기분으로 동문회를 시작했는데, 그 기대가 지금부터 나타나는 것 같다"며 감개무량해 한다.

선배의 말에 단발머리 하얀 칼라가 예뻤던 중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학교에 등교하면 여학생들은 시냇가에서 책가방 가득 자갈돌을 날랐고, 남학생들은 손수레 가득 흙을 실어 나르던 신설학교의 흑백 필름 속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기수별로 소개하는 과정에는 육군에서 별을 달았다던 4회 선배와 공군대령으로 예편했다던 선배가 눈에 띄었다. 작고 야무져 보이는 소장 출신 선배는 기억에 없었지만, 공군대령으로 예편한 키가 훤칠한 선배의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지금처럼 정수기가 없었던 69년, 교실 뒤편에는 도르래 두레박우물이 있었다. 얼마나 깊은지 그 우물 안을 들여다보면 다리가 후들거렸고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우물가 언덕, 숙직실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있었다. 학교 텃밭에서 농사 지은 결명자로 차를 끓여서 점심시간이면 큰 주전자 가득 각 교실로 배부했었다.

추운 겨울 도시락 뚜껑에 갈색 빛 차를 부으면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공군대령으로 예편한 선배는 가마솥 부뚜막에 한 다리를 턱 걸치고 주전자 가득 차를 퍼주던 소년이었다.

5회는 이 학교 강당을 흔쾌히 빌려준 김호기 교장이 "장소가 협소하더라도 잘 놀고 가길 바란다"며 인사말을 대신한다.

선후배의 향연

노래하는 이은선 회장을 응원하는 동기들.
노래하는 이은선 회장을 응원하는 동기들. ⓒ 김재경
"저기 젓가락 옥가실 형님 갖다 드려."

고향에 연고가 없는 나로서는 잊었진 정겨운 지명을 얼마 만에 듣는지 모른다. 내가 살던 금갱이며 구럭말 이런 살가운 이름이 모태만큼이나 포근하게 다가온다.

뷔페로 식사를 하면서 노래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기수별로 돌아가며 열창하는 선배들의 노래는 "꿈꾸는 백마강. 백마강 달밤" 등 향토색이 묻어나는 반면, 후배들은 깜직 발랄한 신세대 노래를 온 몸으로 열창했다.

후배들은 음료수를 마신 페트병을 두드리며 열띤 응원을 시작했고, 흥이 오르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 몸으로 춤을 추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총 동창회는 가족모임

열창하는 우성고등학교 김호기 교장
열창하는 우성고등학교 김호기 교장 ⓒ 김재경
"저어기 후상이 동생 아녀. 닮았네."

부부가 함께 나온 3회 유후상 선배는 10회 막내 여동생과 함께 정겹게 열창을 한다. 시골 동네라서 선후배는 혈연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큰 오빠와 동생이 같이 왔고, 처제와 형부, 이종·고종사촌 등 인맥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게 농촌마을의 특성이리라.

선배의 노래가 끝나고 "나 초등학교 때 오빠한테 무지 맞았어요"했더니 선배는 전혀 기억에 없다며 미안해한다. 웃자며 한 이야기지만 지천명의 세월 앞에 마음은 고향땅을 향하고 있었다.

고향 은산면민회에서는 1백만 원을 후원했고, 이은선 회장은 타월과 스카프를 준비했다.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어깨 걸고 노래 부르는 시간만큼은 여기가 고향땅인 듯 살갑다.

"은산중학교를 위하여!"

힘찬 함성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해 보는 시간, 선후배들이 더욱 정겹게만 느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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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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