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가득 메운 사진 속 아이들이 얼굴 가득 웃음꽃을 터뜨리고 있다. 낡은 창문을 닦는 아이들, 고사리 손으로 노란 모자를 쓰고 있는 꼬마. 중급반 여자아이들은 음악에 맞춰 막 춤을 시작하려는 참이다.
서랍 속에 묵혀뒀던 졸업 앨범을 펼친 듯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낡은 건물과 나무로 된 복도는 1980년대 한국 여느 학교의 풍경과 같다. 아이들이 입은 치마저고리 정도가 사진 속 장소가 '우리학교'(민족학교)임을 알린다.
'우리학교' 출신의 재일교포 3세인 김인숙(30)씨가 카메라를 들고 기타오사카 조선초중급학교를 찾은 것은 지난 2000년의 일이다.
김씨는 그 후 7년 동안 한국과 오사카를 오가며 아이들의 모습을 찍었다. 그 유쾌한 순간들이 'sweet hours'라는 이름으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 1층 '카페 수카라'에서 전시되고 있다. 사진전 첫날인 17일 전시회장에서 사진작가 김씨를 만났다.
'우리학교' 아이들에겐 한국도 북한도 '우리나라'
일본에서 의상과를 졸업한 김씨가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이유는 사진이 담아내는 '빛과 색'이 좋아서였다. 촬영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던 김씨는 오사카에 있는 비쥬얼아트대학(VISUAL ARTS COLLEGE OSAKA)에서 사진을 공부하며, 자신만이 찍을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자신이 잘 아는 '우리학교'를 담아보자고 생각, 학교와 아이들을 찍기 시작했다.
김씨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김명준 감독의 영화 <우리학교>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정치나 민족이라는 담론의 틀 속에 아이들을 가두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얘기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둘은 닮아있다. 김명준 감독이 '아이들을 만나보라'라고 얘기하듯 김씨도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김씨가 찍은 사진 한 장, 한 장엔 7년의 세월을 아이들과 함께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우리학교' 출신인 김씨는 '우리학교'와 북한의 관계만 강조하는 일부 시각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북한 위주의 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배경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씨 역시 우리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일본 땅에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또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국도 북한도 '우리나라'로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김씨가 만난 '우리학교' 아이들은 밝고 꿈 많은 평범한 아이들이다. 김씨는 사진을 둘러보며 '리희사'라는 아이를 가리켰다. 전시회의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희사는 웃는 모습이 너무나 해맑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고.
2000년 촬영한 사진에서 환하게 웃으며 창을 닦고 있던 희사는 7년 후 창가에 서서 수줍게 웃고 있다. 카메라를 든 김씨를 '언니!'라 부르며 뛰어와 안기던 꼬맹이가 어느덧 고급부에 진학하게 됐다고 한다. 가수 동방신기의 팬인 희사는 김씨가 갈 때마다 믹키유천에 대해 묻는다. 그런 희사의 꿈은 국제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학교'를 찍는 일은 행복해요. 자식을 키우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으니까. 어릴 때는 서로 찍어달라고 조르던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괜히 부끄러워해요. 그 안에 들어가 아이들의 내면에 있는 얘기를 듣는 것이 좋아요. 사진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참 좋아해요. 대신 꼬맹이들은 자기가 안 찍혀 있으면 서운해하니까, 좀 더 큰 다음에 보여주려고요. (웃음) 앞으로도 아이들의 모습을 계속 찍고 싶어요."
'우리학교' 아이들과 학창시절을 추억해보자
김씨는 잠시 동안 작품 속에 담긴 아이들의 사연을 들려줬다. 이 꼬마가 자라서 저 사진만큼 컸고, 저기 있는 아이들은 자매 지간이다, 남자아이들은 항상 시끌벅적하게 노는데 여자아이들은 이제 눈길도 안 준다 등. 아이들의 모습을 설명하는 김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김씨는 다음 작업으로 '가족사진'이라는 이름의 시리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에 사는 지인들과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학교'를 찍는 작업도 계속할 예정이다.
이 유쾌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별다른 준비는 필요 없다. 재일동포나 '우리학교'에 대한 관심은 사진을 보고 난 후 보여도 충분하다. 전시회의 제목 그대로, 사진들은 달콤했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상기시킨다.
김씨에게 직접 'sweet hours'를 소개해줄 것을 부탁했다.
"사진의 배경은 '우리학교'지만 딱딱한 사회나 정치적인 얘기는 없어요. 그저 아이들의 순수함과 따뜻함을 느껴볼 수 있는 사진전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각자 자신의 학창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2000년부터 7년 동안 기타오사카 조선초중급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김인숙의 사진전 'sweet hours'는 17일부터 오는 5월 7일까지 산울림소극장 1층 '카페 수카라'에서 열린다. 28일 낮 1시부터는 작가 김인숙씨와 대화할 수 있는 워크숍도 준비돼 있다.
| | "김명준 감독, 정치색 배제하고 '우리학교' 봐줘 고마워" | | | [인터뷰] 김수향 ㈜아톤 한국 지사 대표 | | | | 이번 김인숙씨 전시회를 기획한 곳은 일본에서 잡지 <수카라>를 발행하는 출판사인 ㈜아톤이다. 17일 오후 김수향 ㈜아톤 한국지사 대표를 만나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수카라>는 어떤 잡지인가?
"<수카라>는 2005년 11월 창간됐다. < Korean culture >를 발간했던 '한국문화원'에서 ㈜아톤 측에 제작 지원을 의뢰했다. 잡지명인 '수카라'는 숟가락의 일본어식 발음이다. 한국과 관련해 연예인 이외의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실제로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다루고 있어서 여타의 한류잡지와 차별화돼 있다."
- 사진전이 카페에서 열리는 것도 신선하다. '카페 수카라'에 대해 소개해 달라.
"㈜아톤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잡지가 한국을 일본에 알린다면 카페는 일본 문화를 한국에 알리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밥을 카페에서 먹는 것은 일본문화의 하나다. 밥을 먹을 수 있는 카페라는 콘셉트와 함께 일본 작가들의 전시회를 하거나 일본 디자인, 예술 계통 책을 소개하고 있다."
- 김 대표 자신도 '우리학교' 출신인 교포 3세라고 들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우리학교'가 주목받고 있는데.
"인숙씨 사진에 찍힌 곳이 실은 내 모교다. 아직도 한국에서 '우리학교'는 왜곡돼 있다. 한류를 만들어낸 이들 대부분이 '우리학교' 출신이다. 학교의 공이 큰데, 북한과 맺은 관계만 부각하려 하는 모습을 볼 때는 안타깝다. 얼마 전에 <우리학교>를 봤는데 한국인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놀랐다. 시대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김명준 감독이 정치색을 배제하고 학교를 봐줘 고마웠다."
- 이번 전시회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내가 오사카에 있는 '우리학교'를 다닌 게 30년 전 일이다. 김인숙씨가 7년 전부터 그곳 사진을 찍었는데 별로 변한 게 없다. 비록 낡은 건물이지만 '우리학교' 아이들이 뛰어노는 추억의 장소다. 그냥 낡은 공간에서 사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봐 달라. 왜 이 아이들이 '우리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학교'의 의미가 무엇인지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