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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커틀러 대표가 지난 3월 26일 한미FTA 최종 고위급협상에 참석하기 위해 협상장에 들어서고 있다.
웬디 커틀러 대표가 지난 3월 26일 한미FTA 최종 고위급협상에 참석하기 위해 협상장에 들어서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궁금했다. 한미FTA 협상 타결에 반대해 온 쪽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왜 그럴까?

미국 민주당은 만약 의회의 요구, 정확하게는 민주당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의회 비준은 물 건너가게 될 것이라는 강도 높은 '압박'을 했다고 한다. 사실상의 재협상을 요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쪽에서도 한미FTA에 반대하는 쪽이라면 일단 민주당의 재협상 요구에 맞장구를 치고 나설 만도 하련만, 그런 반응은 없었다.

더 궁금한 것은 이상수 노동부 장관과 경제단체들의 상반되는 반응이었다. 이상수 장관은 노동시장의 경우 미국이 더 후진적인데 무슨 재협상이냐는 식의 주장을 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만 하더라도 8개 가운데 우리나라는 4개를 비준한 반면 미국은 2개 밖에 비준하지 않은 것을 예로 들었다.

협상을 끝내놓고 재협상을 하자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재협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노동권에 관한 한 미국이 우리보다 더 낮은 수준인데 무슨 재협상 요구냐는 반박이기도 했다.

하지만 재계도 반대하고 나섰다. 그 이유는 정반대였다. <한겨레>가 13일자 '정부 꼬이는 FTA 실타래'를 통해 소개한 전경련의 입장은 "만약 복수노조나 노조 전임자 임금 등 미 의회의 요구사항은 지난해 노사정이 합의한 로드맵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상수 장관의 말과는 달리 미 의회의 요구가 '재계'에 불리하며, 따라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미 의회는, 아니 미국의 민주당은 한미FTA와 관련해 무엇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는가? 그들은 왜 노동권과 환경권을 한미FTA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걸까? 정부는 왜 여기에 반대하는가? 이상수 장관의 말이 맞는가, 아니면 재계의 말이 맞는가? 한미FTA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까?

'반 한미FTA', 왜 아무 반응이 없을까

그 궁금증을 풀고 싶었다. 먼저 미 민주당이 한미FTA 협상에 추가로 요구하고 있는 내용들이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속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윤곽은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서 대략 드러나 있다.

미 민주당 하원의원 16명이 3월 23일 노무현대통령과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보낸 서한에는 미 의회, 즉 미 민주당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잘 요약돼 있다.

이들 미 하원의원들이 요구한 것은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 계속 지급 ▲부당해고 노동자 원상회복 의무조항 삭제 및 정리 해고 예고 기간 축소 백지화 ▲특수고용 노동자 노동권 보장 ▲노동 기본권 보장 ▲ILO(국제노동기구) 권고 이행 조치의 신속한 실행 등이다.

이는 미 민주당의 '신통상정책'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다. 민주당 지배의 미 하원 세출세입위원회가 3월 28일 발표한 '신통상정책'은 노동과 환경 분야의 가이드라인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국제노동기구의 핵심 규약 도입 ▲다자간 환경 협정의 도입과 이행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특허권이 과도하게 사용되는 것에 대한 제어 ▲정부 조달 등이 특정한 노동 환경 법률을 위협하거나 약화시키지 않도록 규제 ▲투자자에게 미국 법체계 아래의 권한보다 더 많은 권한을 보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부시 행정부나 공화당 지배의 미 의회의 기존의 흐름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한마디로 배치된다.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국제노동기구의 핵심 규약 도입이나 다자간 환경 협정의 도입이나 이행은 미국부터 해야 할 일이다.

이같은 요구는 마치 이라크에서 당장 미군을 철수하라는 민주당의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현재의 전비상태를 겨우 유지할 정도의 예산만을 승인해주겠다는 민주당의 모순적인 정책 표명이나 같은 맥락이다.

한 마디로 지금껏 해왔던 방식의 FTA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협상이 타결됐다고 하더라도 다시 검토하라는 강력한 지침인 셈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미 민주당의 전략적 선택과 정략적 계산도 깔려 있음직 하다.

'재협상 안 된다' 만이 유일한 선택인가

한미FTA 협상 시한 종료가 임박한 가운데 지난 3월30일 저녁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미FTA 반대'를 외치고 있다.
한미FTA 협상 시한 종료가 임박한 가운데 지난 3월30일 저녁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미FTA 반대'를 외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렇다면 이에 대한 우리(우리가 누구인지는 헷갈린다. 그렇다고 다른 말을 쓰기도 그렇다)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할 수도 없다는 한국 정부의 반응은 일단 정직하다. 하지만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발언은 정직한 것은 아니다. 미 민주당의 요구가 모순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우리가 그들보다 노동조건이나 노동권에서 낫다고 말할 처지는 아니다.

이 장관의 발언처럼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ILO 핵심 협약 두 가지를 더 비준했다고 하더라도, 또 손쉬운 해고 등 미국의 노동여건이 우리보다 '신자유주의적'일지라도 결코 대한민국의 노동권 수준이 미국보다 낫다고 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미국측이 실질적으로는 아직은 한 단계 위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에 비하면 노동부나 환경부 등 정부 관련 부처의 반응은 솔직한 편이다.

노동부 쪽 관계자는 미 민주당과 공화당, 나아가 미 행정부와의 논의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우리나 미국(부시행정부)이나 미 민주당이 요구하는 노동권 수준을 한미FTA에 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선을 그었다.

"가장 친환경적인 FTA를 했다"고 자신하는 환경부 쪽 사람들은 아예 더 이상의 '논의'나 '재협상'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쪽의 반응은 어떨까? 미 민주당의 재협상 요구 내용에 대한 평가에서는 정부와 다를지 모르겠지만 그 결론은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고려대상이 아니다."

한국 정부와 '반 한미FTA'의 합창

민주노총 등 노동계나 환경단체들은 미 민주당의 요구 자체는 '전향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한미FTA에 반대하기 때문에 아예 고려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에서부터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미 민주당의 최종적인 목표는 결국 한국시장의 추가 개방 아니겠느냐"는 의구심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는 '부정적'이다.

미국 스스로 ILO 주요 협약이나 생명공학안정성의정서를 비준하지 않고 있으면서 ILO 핵심 조약의 이행이나 다자간 환경협약의 준수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지적이다.

맞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미 민주당의 노동권이나 환경권 강화 요구를 마냥 무시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또 미 민주당의 압력으로 미 무역대표부(USTR)가 재협상을 요구해 온다면 '안 된다'며 한국 정부와 '합창'을 하는 것이 한미FTA에 반대하는 쪽의 '유일한 선택'일 수 있을까?

'노동'과 '환경' 문제는 '인권문제'와 함께 이른바 선진국들의 가장 대표적인 '위선 상품'이자 '위선 전략'으로 활용돼 왔다. 형편이 나은 그들의 잣대와 기준을 강요함으로써 그럴 수 없는 나라들을 비난하고 정치적으로 압박하며,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유효한 압력수단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까지를 주고받는 FTA 협상에서라면 그래도 전향적이고, 진보적인 가치를 갖는 것이 바로 '노동권'과 '환경권'일 수 있다. FTA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그 순기능적인 측면에 대해서까지 눈감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무엇보다 한미FTA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측면에 주목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꼭 FTA 순기능까지 눈감아야 할까

마지막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

웬디 커틀러 대표가 미 의회의 '압력'을 거론하며 한국 측과의 재협상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협상이 타결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한 마디로 판을 깨자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점을 커틀러 대표인들 모를 리 없다.

그녀는 누구한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즉각적인 반응은 한국 쪽에서 나왔다. 자구 정도는 몰라도 "재협상은 결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판이 깨질 것을 각오하라는 최후통첩 같은 것이기도 했다. 한국 정부의 이런 완강한 입장 천명은 커틀러 대표한테 보내는 경고였을까? 아니면 미 민주당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을까?

북한 핵문제도 확인했듯이 미국의 모습은 여러 가지다. 부시행정부의 미국, 민주당 지배 의회의 미국, 한미FTA에 역시 반대하는 미자동차노조의 미국…. 한국의 모습 또한 다양하다.

바야흐로 멀티 플레이어 시대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백병규#미디어워치#한미FTA#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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