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테니스장 주변에 어느새 만개한 산 복숭아꽃이 아름답다.
테니스장 주변에 어느새 만개한 산 복숭아꽃이 아름답다. ⓒ 양동정
어렸을 적, 없는 살림에 동생은 형인 나에게 가려 제대로 학교도 못 다니고, 고생만 시킨 것 같아 늘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특히 2년 전에는 폐와 식도에 이상이 있어 큰 수술까지 하고 음식 섭취가 여의치 않아 비쩍 마른 모습을 볼 때마다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아 짠하기 한이 없는 동생이다.

"그래! 밥맛이 없는 철이니, 쑥이라도 된장 풀어서 한번 끓여 먹고, 없는 입맛이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다"하면서 시합 중간중간에 쑥을 캐기 시작한 것이 비닐봉지에 담으니 제법이다. 집에 가지고 들어오니 처는 제수씨와 함께 얼마 전 이사한 막내 여동생네가 궁금하다며 평택의 동생네로 다니려 갔단다.

뜯어온 쑥을 쏟아놓으니 제법 많다. 두집 식구가 족히 먹겠다.
뜯어온 쑥을 쏟아놓으니 제법 많다. 두집 식구가 족히 먹겠다. ⓒ 양동정
그렇다면 차가 없는 처를 제수씨가 데리고 갔으니 올 때도 실어다 주려 집에 들리겠구나 싶어, 뜯어온 쑥을 정성스레 다듬는다.

난생처음으로 쑥을 뜯어, 처음으로 다듬어 보는 일이다. 어려서 자취생활을 오래한 탓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물 한 컵 내 손으로 떠다먹지 않는 내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쑥을 뜯어다 다듬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쑥스럽다.

쑥을 다듬는 작업이 다 끝났다. 하나는 우리목, 하나는 동생목, 인셈이다.
쑥을 다듬는 작업이 다 끝났다. 하나는 우리목, 하나는 동생목, 인셈이다. ⓒ 양동정
하지만 동생의 건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는 생각에 손톱에 물이 들도록 정성스레 다듬은 쑥을 두 개의 그릇에 나누어 담아 두고, 제수씨가 오기를 기다렸다.

손톰에 쑥물이 니코틴 마냥 들었다.
손톰에 쑥물이 니코틴 마냥 들었다. ⓒ 양동정
하지만 여동생 집에서 너무 늦게 나서는 바람에 밤 열두 시가 넘어 처만 아파트 마당에 내려주고 그냥 갔다고 한다.

"에이! 쑥 뜯어 왔는데 가져다가 동생 좀 끓여 주라 하지?" 했더니, 처가 하는 말이 "시골 어머니가 쑥이랑 머위대 나물이랑 다아! 뜯어 보내서 가져갔어요" 한다.

다시 한번 부모님의 가이없는 자식 사랑에 고개가 숙여진다.

제수씨가 오면 싸주려던 잘 다듬어진 쑥 두그릇이다.
제수씨가 오면 싸주려던 잘 다듬어진 쑥 두그릇이다. ⓒ 양동정
아침에 일어난 처가 식탁 위에 놓인 잘 다듬어진 쑥 그릇을 보고 "누가 쑥을 다듬었어요?" 하고 묻는다. 멋쩍어 대답 대신 피식 웃기만 하는 나를 보고 "당신도 늙어 가나 봐요" 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