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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순씨(윗줄 오른쪽)와 함께 프로를 진행하는 엄마들.
전정순씨(윗줄 오른쪽)와 함께 프로를 진행하는 엄마들. ⓒ 여성신문
[김나령 기자]"중증 장애아는 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데 이는 고스란히 엄마 등 가족의 몫이 되는 게 현실입니다. 사회가 장애인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대구 성서지역의 소출력방송 성서공동체 FM(89.1Mhz)엔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다. 중증 장애인을 키우는 엄마들이 직접 제작부터 진행까지 맡아 장애인 관련 사연과 정보를 소개하는 프로 '담장 허무는 엄마들'이 그것.

특수학교 학부모로 만난 엄마 8명은 '장애인을 위한 방송'을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로 방송국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2005년 8월, 22살 뇌성마비 장애아를 둔 전정순(47)씨가 전체 기획과 대본을 맡고, 15살 난 중증 소아마비 아들을 둔 양금자(45)씨가 마이크를 잡아 방송을 시작했다.

이들은 20살이 넘는 아들에게 기저귀를 채워주고, 밥을 먹이며, 학교에 데려다주는 시간을 쪼개 매월 넷째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방송을 한다. 아이들을 보살피기에도 바쁜 엄마들이 방송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방송을 듣고 사람들이 장애아에 대한 담장을 조금이라도 허물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전정순씨는 "당사자가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방송 경험도 없는 엄마들이 덜컥 일을 시작했다. 방송을 듣고 한 사람이라도 더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 있기를, 장애인에게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되길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전씨 등은 방송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매월 방송 내용을 CD로 제작해 특수학교와 물리치료실로 전달하는 등 열심히 활동했다. 이런 마음이 전달됐는지 인기연예인이 진행하지 않아도, 특별한 방송기술이 없어도 '담장 허무는 엄마들'은 입소문을 타고 전달돼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방송을 통해 특별교실을 계단으로 올라야 했던 초등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고, 장애아가 집 근처 일반학교로 전학하는 계기가 됐다. 또 장애인교육지원법 등 장애인에게 필요한 법안과 정책들을 공론화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방송에 참여하는 고정인원만 10여명, 비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인원도 20여명으로 늘었고, 사회 각계각층의 자발적 도움도 늘었다. 얼마 전에는 지난 1년8개월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긴 자료모음집도 출간했다. 자료모음집은 장애인의 날인 4월20일을 기념해 한권의 책 '담장 허무는 엄마들(가제)'로 출판된다.

"책이 나오면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할 겁니다. 데리고 나가기 힘들어서, 남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변변히 외식 한번 시켜주지 못했던 우리 아이들에게 따뜻한 봄날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은 지난해 12월 방송분부터 인터넷(scnfm.or.kr)을 통해 다시 들을 수 있다.

장차법 제정 이후 과제는?
"일하는 장애여성 위한 사회권 확보 시급"

▲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는 시위현장.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은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금지 규정을 별도로 마련해 여성 권한을 강화했다. 장차법에 따르면 내년부터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임신이나 출산을 못하게 하면 가족이라도 처벌받는다.

또 여성장애인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차별받지 않으며 성생활에 있어서도 자유를 보장받는다. 성폭력 예방교육시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예방내용을 포함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하지만 여성장애인의 '성'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은 장차법의 한계로 지적된다. 김광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추진연대(장추련) 법제위원회 부위원장은 "장차법뿐만 아니라 기존 장애여성에 관한 정책은 성폭력, 임신, 출산 등에만 초점이 맞춰진 게 현실"이라며 "이제 일하는 장애여성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결혼 안한 장애여성의 인권에 관심을 갖는 등 장애여성의 사회권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부위원장은 "기존의 여성정책과 장애인정책을 분리해 추진하지 말고, 장애여성 인지적 관점에서 여성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장애인권을 위한 과제로는 활동보조인서비스 권리보장,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 사회복지사업법 개정 등이 있다. 장애인계는 최근 활동보조인서비스 권리보장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복지부는 5월부터 1급 및 이에 준하는 중증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을 파견하는 '중증장애인의 활동보조인서비스 사업'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장추련 등은 복지부 정책이 자부담과 상한시간제 등에 의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며, 장애인들의 사회 참여를 위한 치료나 시설, 장애아동의 방과후 프로그램도 없는 점 등을 들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합의안을 찾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은 지난해 국회의원 229명(대표발의 최순영 의원)의 공동발의로 상정됐으나 다른 법안에 밀려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외면당했다. 이에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등은 지난달 26일부터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장차법 시행에 있어서도 험로가 예상된다. 현재 장차법에 명시된 각종 차별금지 규정을 시행하려면 수조원대의 예산이 필요한데 당장 예산 확보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또 정부는 장차법 시행령을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 자문기구인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합동준비단’을 꾸렸으나 장애인이 포함되지 않아 장추련 등과 마찰하고 있는 실정.

박옥순 장추련 사무국장은 "장애인 당사자가 배제된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4월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닌 ‘장애인 투쟁의 날’로 알고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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