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국밥 한 그릇에 남도의 맛과 인심이 듬뿍 들어갔다
국밥 한 그릇에 남도의 맛과 인심이 듬뿍 들어갔다 ⓒ 맛객
며칠 전 지방에 갈 일이 있어 영등포역에 나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역 주변에서는 20~30명의 노숙자들이 여기저기 주저앉아 플라스틱 대접에 든 국밥을 비우고 있다. 자선단체에서 배급해주는 음식으로 말 그대로 한 끼 식사를 때우고 있는 중이다. 익숙한 듯 주위 시선은 안중에도 없다.

미식 붐이 일면서 음식은 살기 위해서만 먹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은 살기 위해 먹고 있는 듯보였다. 전직 대통령의 말마따나 굶으면 죽으니까 먹는 본능 외에 어떤 미각의 즐거움도 없을 것이다. 만약 먹지 않아도 살아가는 목숨이라면 밤새 마신 술이 깨기도 전부터 수저를 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보고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음식은 삶과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문화이고 근래 들어서는 여가생활의 한 면을 담당하기도 한다지만 아직도 어려운 이웃에겐 배고프지 않기 위해 먹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생각에서다.

자연스레 맛객은 추구하고 있는 맛의 세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진미와 별미를 소개하고 우리 음식문화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으면서, 정작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망각하지는 않았는지 해서다. 또 음식평론을 이유로 음식사치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자문해 보기도 한다.

음식은 시대에 따라 사람의 입맛 따라 변해가기 마련이다. 퓨전요리 개념이 생긴 뒤로는 음식의 변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뒤죽박죽 음식이 태어나고 있다. 허나, 예나 지금이나 음식의 원형을 가장 잘 지켜오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국밥이다. 장터국밥, 돼지국밥, 쇠머리국밥, 순대국밥, 안동국밥, 콩나물국밥 등 이보다 변화에 무감각한 음식이 또 있을까?

어쩌면 국밥과 퓨전음식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존재란 생각도 든다. 분위기보다는 정서적인 음식이고 맛보다는 배고픔을 달래려고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밥을 마주하는 시간은 가식이나 사치가 필요 없는 솔직한 시간이다. 화려함으로 포장된 음식이 넘쳐나는 요즘에, 국밥은 묵묵히 음식의 근본을 보여주고 있다.

음식의 근본을 지켜가는 국밥

배고파 돌아가시겠다는 사람에게 천하 진미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마도 그는 뜨끈한 쌀밥에 훌렁한 국, 거기에 몇 가지 반찬을 더한 밥상을 원할 것이다. 맛객 역시 그렇다. 배가 고파지면 절로 생각나는 음식이 국밥이다. 그런 걸 먹어야 속이 든든해지기 때문이다.

국밥은 대중적인 음식이다. 그러다보니 국밥집도 흔하다. 하지만 특별한 맛을 내는 집은 흔하지 않다. 단순한 음식 같지만 그래서 특별한 맛을 내기가 더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사실 진정한 맛집도 귀한 재료와 값비싼 음식이 아닌 평범한 재료와 음식으로 특별한 맛을 내는 집이다. 그 음식이 국밥이라면 더욱 좋다.

그 국밥집은 광주 대인시장에 있다
그 국밥집은 광주 대인시장에 있다 ⓒ 맛객
광주 대인시장에서 우연히 찾아낸 '나주식당'의 국밥이 맛이 특별하다. 대인시장은 크기로만 따지면 광주에서 두세 번째 안에 든다. 하지만 외형상 크기완 달리 문 닫는 점포가 많아 분위기는 많이 어둡다. 이 시장 안쪽으로 들어서면 그나마 활기를 띠고 있는 곳이 국밥골목이다.

국밥집 골목, 재래시장에 국밥집이 없다면 무슨 맛일까?
국밥집 골목, 재래시장에 국밥집이 없다면 무슨 맛일까? ⓒ 맛객
길 양쪽으로 어림잡아 10여 곳 이상의 국밥집이 있다. 집집마다 입구에 있는 큰 솥에서는 펄펄 끊는 물에 돼지 머리며 내장을 삶고, 삶은 것들은 쟁반 위에 진열해 국밥집의 분위기를 더한다. 그 중 한 집, 나주식당으로 들어선 건 식당 분위기와 후덕한 인심이 느껴지는 주인아주머니의 외모 때문이다.

맛객은 그간 식당 출입을 취미로 삼다보니, 음식 맛은 만드는 이의 표정에서 이미 느낄 수가 있을 정도가 되었다. 대체로 그 직감은 맞아 떨어진다. 나주식당도 예외는 아니다. 그대가 나주식당에서 국밥을 마주하게 된다면 적어도 서너 번은 놀라리라.

서너 번 놀라게 하는 국밥

돼지 내장과 머릿고기가 듬뿍 들어간 국밥 한 그릇에 4천원 한다.
돼지 내장과 머릿고기가 듬뿍 들어간 국밥 한 그릇에 4천원 한다. ⓒ 맛객
아저씨로 보이는 남자가 4천 원 하는 국밥을 넘칠까봐 조심스레 들고 온다. 한눈에 봐도 돼지 내장이 고봉으로 들어갔다. 내용물의 푸짐함에 한 번 놀라게 된다. 국밥에 들어 있는 양념이 많다 생각하지만 진하지가 않아 다 풀어도 짜지 않다.

특이하게도 국밥에 콩가루가 들어갔다. 처음 접한다면 콩가루에 다시 놀랄 것이다. 맛객도 콩가루 들어간 국밥은 난생 처음이다. 만약 그대가 콩가루 들어간 국밥이 싫다면 주문 시 빼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웬만하면 콩가루와 함께 먹길 권한다. 콩가루가 들어가 국물 맛이 참 구수하다. 양념에 풀지 않고 맛을 본 국물은 잡내가 없이 개운하고 담백하다.

풍부한 내용물이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풍부한 내용물이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 맛객
잠시 언급했지만 세 번째로 놀라게 되는 건 맛이다. 육수 맛뿐만이 아니라 내장의 질도 좋아 질기지 않은 상태에서 식감이 좋다. 양이 많아 먹다 보면 배가 불러온다. 그런데도 숟가락을 놓기가 싫다.

이게 바로 보이지 않는 맛이다. 즉각적으로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계속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 느끼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수가 좋지 않거나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갔다면 결코 느끼하지 않는 맛을 낼 수는 없다. 그대가 마지막으로 놀라게 되는 건 이 집의 서비스다.

맛객은 혼자서 나주식당에 들렀다. 반대로 다른 테이블 손님들은 둘이거나 여럿이서 식사를 하는 중이다. 그런데 테이블마다 머릿고긴지 수육인지 모르겠지만 한 접시씩 놓고 먹는 게 아닌가. 음…. 광주는 국밥 먹으면서 기본적으로 수육 한 접시도 주문해 먹는구나 혼자 생각했다.

잠시 후 계산을 하는데 아주머니가 말씀 하신다.

"둘이서 오시면 서비스 한 접시 나가는데 혼자 오셔서 안 드렸어요."

뭐야 그렇다면 다른 손님들이 먹고 있는 게 서비스였단 말인가? 말이 서비스지 결코 적은 양이 아니어서 당연히 메뉴판에 있는 걸 주문했다고 생각했다.

서비스로 그걸 먹지는 못했지만 아쉽지는 않다. 식사를 할 때 국밥의 국물이 없는 것을 본 아주머니가 더 가져왔는데, 인심이란 이런 거구나 생각하게 만들었으니까. 국물 더 드릴까요? 물음에 아주 조금만 더 주세요, 부탁까지 했건만 말이다. 처음 주문한 것보단 작은 양이지만 고명도 올려 새 음식과 다름이 없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나주식당을 나서면서 국밥의 기준이 생겼다. 앞으로 어디서 어떤 국밥을 먹든 간에 나주식당보다 잘한다! 아니면 못한다! 라고 말하게 될 것 같다.

국밥은 편하고 가격 부담 없어 좋다
국밥은 편하고 가격 부담 없어 좋다 ⓒ 맛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 정보는 blog.daum.net/cartoonist 에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