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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작은 마을에 같은 성을 가진 택견과 검도, 쿵푸 도장의 김 관장들이 등장한다. 뒤늦게 문을 연 쿵푸 도장의 김 관장은 뛰어난 실력에 훤칠한 외모에 로맨틱한 피아노 연주로 터줏대감이었던 김 관장 둘을 긴장시킨다. 그들 간에 수련생을 모으기 위한 온갖 잔꾀와 술수가 동원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흡사 '박정희 대 박정희 대 박정희'의 시대를 살고 있는 느낌이다.

[박정희 하나] '영웅의 딸', 부채는 빼고 자산만 물려받았다

▲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0일 고엽제전우회 총회에서 축사를 마친 뒤 퇴장하자, 참석자들이 "박근혜"를 연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먼저, 박정희의 혈육으로 진정한 후계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대표는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국회의원이 되고 한나라당 대표가 되고 오늘날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 덕분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베트남 파병 때문에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까지 '영웅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칭송하는 판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철저히 아버지 박정희의 긍정적 유산만을 편식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부채를 빼고 자산만 물려받는 유산은 없지만, 정치에서 얼마든지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 둘] '샐러리맨', 한반도 대운하로 개발의 꿈을 꾼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또 하나의 박정희’라고 할 만하다. 그는 요즘 부쩍 검은 색안경을 끼고 여러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러고 가만히 보니 좀 닮기도 닮았다.

또한 그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향해 나가면서 내놓은 카드가 바로 '한반도 대운하'라는 것이다. 21세기 정보통신 사회에서 거대한 토목건설 사업을 대선 카드로 내놓은 것을 보면 흡사 박정희 시절의 개발독재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참고로 그는 박정희 시절 경부고속도로 공사현장에서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어 낸 사람이다.

11일, 이명박 전시장이 두바이의 현대건설 현장을 방문해서 "우리 사회도 빨리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계획이 실천될 수 있도록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상당히 문제가 있는 퇴행적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경제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라면 곧 돈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빈부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더 이상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걱정이다.

더 문제가 있는 것은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리더십'이다. 그건 바로 우리나라가 독재시절에 많이 겪었던 그 리더십이다. 민주화 다원화된 현재,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리더십'의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유신과 긴급조치권을 밀어붙인 박정희의 그 리더십 말인가?

▲ 지난해 11월 포럼 '한반도대운하 국운융성의 길'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마친 뒤 웃으며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정희 셋] '바보', "한미FTA로 하면 된다, 나를 따르라"

그런데 요즘 두 터줏대감 '박정희'에 도전하는 새 '박정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이 새 도전자는 작년부터 갑자기 '하면 된다' 정신으로 무장하고 "나를 따르라"를 외치고 있다. 한미FTA를 해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고 훈계하며, 그 수많은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말 강력히 밀어붙이는 리더십을 몸소 보여 주었다.

박정희는 유신독재정치를 하면서 수많은 인권탄압을 저질렀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우리나라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 정부를 '참여정부'라고 이름지었지만, 그 참여는 국민들의 참여가 아니라 미국의 영향력에 참여하는 정부였던 것 같다.

노 대통령은 한미FTA협상이 타결된 직후에 이루어진 대국민 담화에서 "그동안 근거도 없는 사실, 논리도 없는 주장이 너무 많았다"며 "앞으로는 합리적인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그간 막연한 낙관이나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구체적인 근거나 논리가 없는 쪽은 오히려 정부였다. 더구나 일은 이미 다 저질러 놓고 합리적인 토론을 하자는 것은 그야말로 합리적이지 못한 태도이다.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정치 퇴행

그간 정부는 한미FTA 협상 중에는 반대 집회를 원천봉쇄하고 반대 광고도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제 협상이 타결되고 나니 수많은 국가기관과 산하단체와 기업까지 동원해 한미FTA 찬성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에는 보조금 지급을 정지하고, 한미FTA에 부정적인 수업 자료를 사용하지 말라고 각 교육청에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게 합리적인 토론을 하자는 자세인가? 이런 모습은 박정희 때의 정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영화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에서는 세 김 관장이 조폭에 맞서 힘을 합치는데, 지금 우리 현실에서는 박근혜, 이명박의 두 박정희 후계자에 뒤늦게 '박정희 마인드'로 각성한 노 대통령이 합세하여 시대를 거꾸로 돌리려 하는 형국이다.

이 시대에 왜 이런 '박정희 대 박정희 대 박정희'식의 정치적 퇴행을 겪어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정말 참여정부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 지난 7일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에서 한미FTA 저지 범국본 대표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밝게 웃고 있는 '죽음의 동맹' 사진을 해머로 부수는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박정희#이명박#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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