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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성군 압록유원지 섬진강변의 참게잡이
ⓒ 이철영

오딧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나간 지 19년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왔다. 9년의 트로이전쟁과 10년간의 고된 항해를 거치며 그토록 돌아가고자 했던 고향은 그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동물적 회귀본능이었을까, 아내, 아들과의 재회였을까, 탈환해야 될 왕권이었을까.

뭇 생명들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강력한 본능의 명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난 언덕을 향해 머리를 두고, 명절때는 귀성행렬이 온 나라를 들썩인다. 오래도록 이땅을 등진 망명자들과 재외동포들의 고향을 그리는 한숨이 가슴을 저미는 것처럼 태어난 곳은 모든 생명들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 이철영

강은 생명을 잉태하고, 회귀하고자 하는 어미들은 강물을 역류한다. 거꾸로, 태어난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물에 몸을 싣기도 한다. 섬진강의 은어는 연어와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성장하고 강물에 알을 낳는다.

반면 참게는 가을에 알을 낳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댐과 하구둑이 그다지 건설되지 않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바다로 가기 위해 온갖 장애물을 넘으며 들판을 뒤덮었던 참게떼의 오딧세이는 가히 장관이었다고 전한다.

ⓒ 이철영

섬진강변에서 나고 자란 참게잡이 박종선(59세)씨는 "참게는 뭐든지 다 묵는 잡식이지라, 근디 알에서 나와 클라믄 젖을 묵어야 해. 젖이 뭣이냐. 동물성 플랑크톤이여. 돌에 붙은 이끼만 묵어가꼬는 안 큰단 말이세. 그라고 소금 안 묵으먼 미안허지만 마누라하고 잠 잘 일도 없어. 탱크에 가둬 놓은 게도 바닷물 농도로 염분을 맞춰주먼 정확히 삼일이믄 교미를 해. 섬진강서 잽히는 은어, 황어, 게 모두 소금이 필요하제. 나트륨 성분이 없으믄 생식홀몬 생성이 안되거등."

굳이 생물학자가 아니더라도 그의 진단은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린다.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물길에 몇 개의 댐이 생기고,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수중보들이 하나 둘 건설되면서 강에 의지해 사는 생명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 더욱이 바위, 자갈, 모래로 이루어진 맑은 물의 섬진강은 바닥이 뻘로 이루어진 탁한 강에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어종들의 보고였다.

그는 "내가 알기로도 댐 막은 뒤로 한 다섯 가지는 없어져 부렀제. 학명은 모르겄고 사투리로 '불뭉탱이(마치), 댕비리(돌피리), 번지리, 여울피리, 똥쟁이'는 볼 수가 없어. 옛날에는 은어 잡을라고 투망 던지믄 귀찮게 올라와서 다 던져 부렀는디, 인자는 그리워, 보고잡당께."

▲ 통발에는 참게 10여 마리가 들어 있었다. 박종선씨는 "15-6년 전만 해도 밤에 횃불들고 참게 잡으러 나서면 지게로 져 나를 만큼 많이 잡았다"며 안타까워했다.
ⓒ 이철영

한창 시절에 그는 친구들과 모여 소주 댓병 하나 들고 강가에 진을 치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었다고 자랑한다.

"그물 하나 들고 솥단지, 양념 좀 챙기믄 밤 새 댓병이 몇 개는 죽어났제. 물반, 고기 반이었응께. 그라고 15~6년 전만 해도 밤에 횃불 들고 참게 잡은다고 나서믄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수만마리씩 잡았어. 아조 지게로 져서 날랐제. 우리도 일본 뽄을 봐야써. 가본께 거그는 강에 참게가 바글바글해. 계속 방류를 해왔드라고."

<동국여지승람>의 '토산란'에 참게는 '강원도를 제외한 7도 71개 고을의 토산물'이었을 정도로 전국의 강과 논둑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 중의 하나였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참게 큰 놈은 사방이 약 3~4치 정도이며 빛깔을 검푸르다. 수놈은 다리에 털이 있고 맛이 매우 좋다. 이 섬의 계곡에도 간혹 참게가 있으며 나의 출생지인 열수(대동강의 옛이름이라고 함)가에서도 이 참게를 볼 수 있다. 봄철에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 논두렁 사이에 새끼를 까고 가을이 되면 강물을 따라 내려간다. 어부들은 얕은 여울가에 돌을 쌓아 담을 만들고 새끼로 집을 지어 그 안에 넣어 두면 참게가 그 속에 들어와서 은신한다. 밤에 횃불을 켜서 참게를 잡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 이철영

참게는 장마가 끝나는 9월 말경에 시작해서 4~5월까지 잡는다. 방법은 한 쪽으로만 구멍이 나 있는 V자형 통발을 물결의 방향에 따라 설치해 놓았다가 날마다 거둬들이는 것과 양쪽으로 구멍이 난 통발에 갈치살이나 오징어 등의 미끼를 넣어 두어 잡는 두 가지 방식이 주로 쓰인다.

두 가지 모두 부지런하지 않으면 다른 이들이 걷어가 버리거나 참게가 그물에 걸려 죽어버리기 때문에 새벽에 일찍 통발을 걷는다고 한다. 지금처럼 봄에 잡히는 것이 씨알은 작지만 맛은 덩치 큰 가을 것에 비해 더 좋다고 한다. 유별난 미식가들은 참게를 먹기 얼마 전부터 쇠고기를 먹여 살찌운 다음 먹기도 한다.

▲ 봄철 입맛을 돋우는 밥도둑 참게장과 매운탕 정식.
ⓒ 이철영

참게는 남자 다리에만 털이 많은 것처럼 수놈의 다리에만 수북한 털이 있다. 큰 앞발을 세우고 성내는 모습이 마치 용맹한 옛날 장수를 보는 듯한데, 참게탕과 게장의 맛을 보면 그 맛은 너무도 판이하다.

시인 안도현은 그의 글에서 말하기를 연어에게서는 강물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참게에게서는 강, 바다, 땅의 냄새가 모두 난다. 특히나 부드러운 속살에서 느껴지는 은밀하고도 고혹스러운 질감과 향기는 농염한 여인의 것이라 할 만 하다.

지금 남도는 매화, 벚꽃 흐드러진 강가에서 참게탕에 소주 한 잔, 참게장에 밥 한 그릇 비워낼 호시절 봄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oil 사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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