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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초제와 농약으로 신음하는 땅
ⓒ 이종락
경북 상주시에서도 70리나 떨어진 화서면의 외진 산골마을로 귀농한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45년간 살았던 도시를 떠나 시골로 올 때 다른 것은 몰라도 공기와 물만큼은 오염되지 않았을 것으로 막연히 기대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해발 300m 산골마을의 공기는 차고 맑았으나 마을 환경으로 인한 공기는 아주 가끔씩 숨쉬는 데 스트레스를 주곤 한다. 우리 집 주변은 집집마다 소득증대를 위한 소규모 축사로 인해 소똥 냄새가 심심찮게 코를 찔렀다. 그래도 자동차 매연보다는 훨씬 몸에 좋으리라 생각하고 넘어간다 치더라도 여름철이 되면 모기, 파리로 인한 불쾌감은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탄보일러의 연탄가스도 상당한 호흡기 훈련을 요구했다. 3탄 3구를 갈아 넣을 때 숨 한번 잘못 들이쉬면 그동안 마신 맑은 공기가 도로 아미타불 되기도 한다. 요즘 시골집은 경유 값 폭등으로 인한 경제사정 때문에 대부분 기름과 연탄보일러를 겸용으로 때면서 주로 연탄을 애용(?)한다.

아주 간혹 바람도 없고 날씨가 눅눅한 날은 굴뚝의 연탄가스가 아래로 내려와 일산화탄소에 포위당할 때도 있다. 하루에 두세 번 연탄을 갈 때는 마스크를 끼더라도 단전 호흡하는 정신으로 임하고 있다. 그럼에도 시골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시골살이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 보도된 지하수 오염실태는 빙산의 일각

▲ 지하수
ⓒ 이종락
그런데 시골의 물 사정은 정말 심각하다. 일부 시골도 요즘은 약품 처리하는 상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대도시와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아직은 오지이다 보니 집집마다 각자 지하수를 뚫어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마을주민들 말에 따르면 수질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하나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 경기도 이천의 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오염된 지하수를 마셔오다 마을 주민들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조사하고 책임져야 할 관계기관은 늘 뒷북치는 소리만 하고 있다. 우리 마을의 경우 어떤 집은 지하수를 깊게 뚫어 지하암반수를 마시고 있다며 은근히 자랑하는 집도 있고, 윗마을의 어느 집은 식수로 사용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시골로 이사한 지 며칠이 지난 후 우리 식구들의 손과 얼굴은 까칠까칠 거칠어지는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시골 지하수가 철분이 많아 물이 세기 때문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적응된다고 대수롭잖게 말했다.

산간지역이라 매일 불어대는 바람도 한 몫 하는 것 같았다. 온 식구가 세수하고 나면 로션을 듬뿍 바르고 안 쓰던 바셀린까지 찍어 바른다. 딸들은 시골에 오니 물이 좋기는커녕 수돗물보다 더 나쁘다고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도시의 오염된 물과 공기를 벗어나고 싶어 귀농했는데 생각해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 식구가 먹는 물, 내가 직접 알아보겠다고 상주시청에 의뢰한 지하수의 검사 결과, 아이들에게 청색증을 유발할 수도 있는 질산염이 식수기준치 (10ml/1리터 이하)를 초과한 것(11.9ml/1리터)으로 나타났다. 식수로 사용하는 것은 알아서 판단할 일이었다.

계곡물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자리는 이미 오래 전 도시의 투기꾼들에 의해 점령당한 지 오래라는 한 농부의 말이 새삼 아프게 다가온다. 오랜 세월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 온 촌로들도 제초제와 농약 때문에 시골 물은 이제 끝났다며 한탄한다. 이 외에도 축사분뇨와 수세식화장실, 이 모든 것들이 흘러 흘러 땅 속으로, 계곡과 강으로 스며드니 시골 땅에서 맑고 깨끗한 물을 바란다는 자체가 뻔뻔스러운 것 같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제초제와 농약, 화학비료 없이 지을 수 없다는 농사

소비생활을 버리고 가급적 돈 안 쓰는 생태적인 삶을 살기 위해 시골을 선택했는데 사람살이의 기본인 물이 나빠 돈으로 해결방안을 고민해야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한강의 물이 얼면 얼음을 석빙고에 보관하여 여름에 먹었다는 말이 이제는 아득한 옛날의 전설로만 들리는 현실이 참담하기만 하다.

생명의 근원인 대지를 병들고 썩게 만드는 제초제와 농약이 땅과 작물에 범벅이 되는 현실, 그 대가로 우리는 물론 다음 세대에게 물은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백발의 노인네들만 남아 있는 농촌, 제초제와 농약, 화학비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현실, 하루하루 썩어만 가는 땅과 물 앞에 귀농 초보자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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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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