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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야생 참두릅이 자라고 있다
지리산 야생 참두릅이 자라고 있다 ⓒ 맛객
향미만 놓고 보자. 가을송이와 비교해도 처지지 않는 게 두릅이다. 이렇게 말하면 "웃기고 있네. 꽁짜로 줘도 안 먹는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초고추장 맛이 90% 이상 차지하는 무취무미의 뷔페 두릅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건 맛객도 먹기 싫다.

생김새가 왕관을 닮아 산나물의 제왕으로 불리는 두릅, 불리는 이유가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두릅의 향취는 모든 산나물의 향을 응축해 놓은 듯 인상적이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처럼 한없이 맡아도 맡아도 싫증나지 않는 향을 품고 있다. 거기에 쌉싸래한 맛과 오독오독한 식감까지 겸비했으니 이만하면 최상급에 속하는 산채가 아니겠는가.

나물철은 지금부터 진짜

봄만 되면 언론에서는 너도나도 봄나물기사를 쏟아낸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중행사지만 판에 박은 듯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쑥과 돌나물, 달래와 냉이, 나물 소재가 이보다 더 천편일률적일 순 없다. 발로 뛰지 않은 기사다 보니 나물사진들도 재배되어 나온 시장표 나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그런 나물에서는 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리산 낮은 곳에는 고사리를 비롯해 취나물 원추리 산부추 등이 올라오고 있다
지리산 낮은 곳에는 고사리를 비롯해 취나물 원추리 산부추 등이 올라오고 있다 ⓒ 맛객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나물 철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언론의 나물기사와 들나물이 들어갈 때쯤 산나물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나물 빠진 나물기사는 향취 없는 나물과도 같다. 아무렴, 나물 중에 나물은 산나물이지. 넘나물(원추리), 얼레지, 취나물, 고사리, 두릅, 참나물, 곰취, 고추나무나물, 지보나물(비비추), 다래나물, 활나물 등 하루가 다르게 산 빛깔이 변해가는 4월과 5월의 산은 나물산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두릅은 가지 맨 위에 올라오는 첫 순이 가장 맛있다
두릅은 가지 맨 위에 올라오는 첫 순이 가장 맛있다 ⓒ 맛객
4월 6일 지인과 함께 구례 산동면 지리산자락에 올랐다. 산 초입에는 원추리가 한창 자라 반달눈썹 모양을 하고 있다. 맛있는 걸 먼저 발견한 산짐승이 시식한 흔적도 보인다.

조금 더 오르니 두릅나무에 새 순이 돋았다. 경기도 가평지역은 두릅 눈(순)이 총알모양을 한 상태지만 예가 더 따뜻해 가장 맛있는 상태를 하고 있다. 더 오르니 아래 두릅과는 달리 여기도 총알 모양을 하고 있다. 불과 몇 백여 미터 떨어졌지만 기온차가 있어 그렇다.

산부추, 산짐승이 뜯어 먹은 흔적이 보인다
산부추, 산짐승이 뜯어 먹은 흔적이 보인다 ⓒ 맛객
이 곳 넘나물(원추리) 역시 이제 막 순이 올라오고 있다. 주위를 살펴보니 산부추도 올라온다. 혹자는 산 부추는 질겨 못 먹는다 하지만, 당신의 입이 동물들보다 솔직하느냐 묻는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독초와 아닌 것을 구분해 먹는다.

동물들이 먹는 풀을 못 먹는다면 대체 먹을 수 있는 식물은 무엇인가? 혹, 잎에 독을 묻혀 벌레 한 마리 얼씬 못하게 재배하는 그런 채소들은 안심하고 먹지는 않는가? 맛객은 연약한 벌레도 못 먹는 채소를 먹느니 짐승들이 먹는 산부추가 백번 낫다는 생각이다.

두릅 3개, 어떻게 맛볼까?
두릅 3개, 어떻게 맛볼까? ⓒ 맛객
두릅은 가지 끝에 올라오는 첫 순이 가장 통통하고 맛있다. 이게 자라고 나면 가지 여기저기에서 순이 돋는다. 하지만 맛도 크기도 첫 순에는 미치지 못하고, 독도 어느 정도 올라 따고 나면 절단면이 금세 검게 변한다. 때가 일러 첫 순은 3개밖에 따지 못했다.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먹기가 아깝다. 좀 더 많이 오래 자연이 선물한 향을 음미하리라.

참치초밥과도 바꾸지 않을 두릅초밥

요즘 초밥의 재료는 범위가 없다. 쇠고기는 물론이고 버섯으로도 만든다. 1년여 전에는 아보카도로 만든 초밥을 호박초밥이라고 했다가 누리꾼들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도 있다. 호박을 아보카도라 했다면 응당 질책을 받아도 싸지만, 우리 땅 과일도 아닌 아보카도를 호박이라 한 건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즉시 잘못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하는 누리꾼들을 보면서 두릅보다 씁쓰름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제철에 난 싱싱한 재료는 뭐든 초밥의 재료로 활용되어지고 있다. 두릅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 초밥을 만들자. 두릅초밥. 두릅초밥의 핵심은 씁쓰름함과 진한 풍미를 어떻게 밥과 조화시키느냐다. 두릅의 상태를 보니 딴 지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절단면에 변색이 거의 없다. 그만큼 독성이 강하지 않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굳이 데치지 않고도 요리가 가능하겠다.

소금 설탕 식초를 넣은 물에 한 시간여 담가둔다
소금 설탕 식초를 넣은 물에 한 시간여 담가둔다 ⓒ 맛객
찬물에 소금과 설탕 식초를 넣고 두릅을 반으로 잘라 1시간여 담가둔다. 소금을 넣는 이유는 두릅의 쓴맛과 떫은맛을 제거할 뿐 아니라 간도 배어 심심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식초는 두릅의 녹색을 유지해주고, 설탕은 쓴 맛을 중화시켜 준다.

두릅을 담가 놓은 동안에는 밥을 짓는다. 초밥을 몇 번 만들다 보니 밥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지어진다. 일류초밥에는 못 미치겠지만 맛객이 만들어 먹는 초밥의 밥치고는 그럭저럭 아쉽지 않다는 뜻이다.

뜸이 거의 들었을 때 쯤 한 번 저어주는 것도 밥이 고슬고슬해지는 비결이다. 물론 밥을 그릇에 옮길 때 부채질을 해주면 밥알의 형태가 뚜렷해진다. 여기에 설탕과 소금 식초를 적당량 넣고 주걱을 눕히지 않고 세로로 세워 잘 섞는다.

두릅을 찌고 있다
두릅을 찌고 있다 ⓒ 맛객
생선초밥과 달리 두릅은 맛과 향이 강한 재료. 자칫 밥이 두릅에 끌려갈 수 있다. 해서 식초와 설탕을 다른 때와 달리 좀 더 세게 했다. 두릅은 데치지 않고 살짝 찐다. 완전히 익히면 촉감이 없기 때문에 50% 정도 익으면 불을 끈다. 찬물에 재빨리 헹구어 두릅 밑동을 잡고 팔을 휘저어 탈수 시킨다.

산의 별미, 두릅초밥
산의 별미, 두릅초밥 ⓒ 맛객
밥을 말아 두릅을 올리니 그럴싸한 두릅초밥이 완성된다. 간장도 안 찍고 맛을 본다. 두릅의 신선함과 씁쓰름한 향취가 새콤달콤한 밥과 어울려 절묘한 풍미를 자아낸다.

두릅 잎에 초장을 살짝 끼얹어서도 먹어본다. 두릅 자체의 순수한 향은 반감되지만 맛은 한결 풍부해진다. 적당히 익혀 씹히는 맛이 느껴지나 싶더니 밥과 어울려 이내 사라져간다. 남는 건 자연의 향과 맛 그리고 여운. 오도로초밥(참치뱃살)과도 바꿔먹지 않을 맛이다. 이 계절 아니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맛 볼 수 있는 이 재료엔 특별함이 깃들어 있으니까.

이 맛, 참치초밥과도 바꾸지 않겠다
이 맛, 참치초밥과도 바꾸지 않겠다 ⓒ 맛객
애정 없는 요리는 사랑스럽지 않은 재료에서 나온다. 재료의 가치를 알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요리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사람을 들뜨게 하리라. 지금 이 두릅처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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