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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산이라는 뜻을 가진 테미.
둥근 산이라는 뜻을 가진 테미. ⓒ 김유자
대전의 테미공원에서 열리는 벚꽃축제에 다녀왔습니다. 테미는 둥근 산이라는 뜻입니다. 이 산에 벚꽃이 피어날 때면 멀리서 바라보면 산 전체가 뜬구름같이 보입니다. 해마다 벚꽃이 피면 축제를 여는데 날씨가 쌀쌀했던 탓인지 작년보다 훨씬 덜 붐비더군요.

사람에 치이질 않으니 꽃 구경이 수월했습니다. 하기야 정작 축제라고 하면 사람 구경이 제일 재밌다고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재미는 좀 덜했던 셈이지요.

ⓒ 김유자
ⓒ 김유자
벌써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이제 막 꽃구경을 시작하려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벚꽃의 인사는 요란하지 않습니다. 가는 사람에게나 오는 사람에게나 그저 꽃잎 몇 개 떨어뜨려 줄 뿐.

저 벚꽃들은 알고 있습니다. 요란하거나 떠들썩하거나 겉치레가 지나치면 여운이 없다는 걸 말입니다. 하긴 꽃의 처세법이라고 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처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겠지요.

ⓒ 김유자
ⓒ 김유자
ⓒ 김유자
50∼60년생은 족히 돼 보이는 이곳의 벚나무들은 키가 아주 크지요. 벚나무들은 그냥 위를 향해 자랄 뿐 결코 아래를 지향하는 법이 없습니다. 아마도 나무와 나무 사이가 너무 가까운 나머지 옆으로 가지를 뻗을 공간이 전혀 없기 때문인 듯합니다. 면적에 비해서 너무 배게 심어 밀도가 아주 높습니다.

옛날에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 '키다리 미스터 김'인가 하는 노래 있지요? 고기 보면 '싱겁게 키만 크다'는 가사가 나오는데 꼭 이곳의 벚꽃들이 그 짝이 났습니다. 산이 온통 벚나무 투성이니 아마도 나무 간 거리가 충분해서 옆으로 가지를 쳐나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벚나무 숲이 되었을 듯합니다.

그래도 이 벚나무들은 장한 녀석들입니다. 올해의 그 징한 황사를 물리치고, 쌀쌀했던 요 며칠 동안의 꽃샘추위를 물리치고 이렇게 곱게 피어났으니까요. 이쯤에서 꽃들에게 치하의 말 한마디를 건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환하게 피어나느라고 애 많이 썼다!"

ⓒ 김유자
ⓒ 김유자
사실 꽃놀이를 즐기려면 먼저 꽃의 노동부터 치하해주는 게 순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지난 겨울 혹한 속에서 꽃이 감당해야 해야 했던 지난한 노동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여기까지 찾아온 자신의 손과 발의 수고를 의식의 맨 앞자리에 놓는 듯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산꼭대기에 처져있는 여러 개의 천막 속에선 음식을 대접하고 대접받는 소리로 왁자지껄합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속이 상할 만도 하건만. 꽃은 낯빛을 흐리는 법도 없이 그저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입니다.

ⓒ 김유자
ⓒ 김유자
세상에 벚꽃을 노래한 시가 어디 하나 둘 뿐이겠습니까마는 저는 이기철 시인의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이라는 시를 좋아합니다. 벚나무들 사이에 가로로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서 그의 시를 기억해 내려고 애씁니다.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통장도 벗어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청하게 앉아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 이기철 시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전문


잠시 벚꽃 그늘에 앉아 봅니다. 알싸한 벚꽃 향기가 코끝을 스쳐갑니다. 벚꽃이냐, 사꾸라냐. 우리나라가 원산지냐, 일본의 국화냐. 예전에 저는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따지고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식물까지 이데올로기를 대입시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질 수 있다면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습니까.

감히 시인처럼 그늘에 앉아 잠시 생애를 벗어놓을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고 그냥 허공 속으로 흩날리는 꽃잎이나 바라보며 앉아있다가 하릴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물론 제가 떠나올 때도 벚나무들은 별다른 인사가 없었지요. 그러나 저는 알고 있지요. 벚나무가 제 마음속 여운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서 인사를 생략했을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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