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청년학교 풍물패가 이민자의 날 시위 현장에서 선두에 섰다.
ⓒ 하승창

이민법은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미국 내에서 자신의 위상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미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에겐 몰라도 여전히 영주권이나 취업비자, 혹은 서류미비자 상태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겐 이민법의 향배가 자신의 삶의 방향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국 땅에서 이주민으로 사는 사람들은 낯선 제도와 환경 때문에 자기 의사를 제대로 관철시키기 어려운 실정이다. 당연히 말 통하는 사람들 중심으로 정보를 얻고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게 된다.

얼마 전 '뉴욕 이민자의 날' 행사에서 본 것처럼 다양한 이민자들의 모임이 존재한다. 이민자가 제일 많아서인지 멕시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라틴 계열의 모임이 가장 크고, 중국계도 만만치 않다. 뉴욕 차이나타운 한 가운데에 노조사무실도 있다.

한인들도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모임이 있지만 지금 뉴욕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하는 것은 '청년학교'다. 지난번 '이민자의 날' 행사에서 선두에서 풍물을 치며 참석자들을 이끌었던 풍물패 '비나리'가 이 청년학교에 속해있다.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은 이민자들의 각성

1984년에 설립된 청년학교는 교육활동을 바탕으로 이민자 권익옹호와 정치력 신장을 위해 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무실을 찾은 날도 끊임없이 한인 이민자들이 찾 와 무엇인지 상담하고 서류작업에 대한 도움을 받고 있었다.

여섯명의 상근자들이 5·18재단에서 온 2명의 인턴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상근자들 중에는 2명의 변호사도 있다. 아무래도 이민자들의 권익옹호라는 단체의 성격상 이민법에 대한 전문성이 필요해서인 모양이다.

회원제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단체 재정의 60%정도는 시정부나 재단의 도움을 받고 있고, 나머지는 후원금과 정기적인 모금행사를 통해 충당한다.

청년학교가 본격적인 이민자운동단체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이다. 당시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선거공약이 현실화되면서 이민자들의 복지에도 찬바람이 불어닥쳤다.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선거공약에서 복지재정의 삭감을 약속했고, 이민자들에게 주어졌던 복지혜택이 축소됐다. 갑자기 의료혜택이나 생활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 노인들은 당장 타격을 받았다.

한 순간에 버림받을 수 있다는 이민자들의 현실은 그들의 각성으로 이어졌고 청년학교는 이민자들과 함께 본격적인 운동에 나섰다.

'뉴욕 이민자의 날' 행사에서 명함만 교환했던 차주범 부장은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포괄적 이민개혁법안(Comprehensive Immigration Reform)"이라고 말했다.

▲ 청년학교 사무실.
ⓒ 하승창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서류미비자"

지금 미국 내에 서류미비자들은 12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 정도다. 이들은 불법체류자가 아니다. '불법'이란 형사적으로 법률을 위반한 경우를 지칭하지만, 이들은 형사적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

차 부장은 "우리는 이들을 '서류미비자'로 부른다"며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자들의 시위에서 "사람은 불법이 아니다(No Human being is illegal)"는 구호는 이같은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차주범 부장은 "현재 미국이 필요로 하는 이민노동력은 한해 48만 5천 정도로 평가되는데, 한 해 발급되는 취업비자는 턱없이 부족해서 이미 구조적으로 이민자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이민법체계로는 이같은 상황을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민노동력 없이 미국을 유지하는 것이 실제로 불가능하다"며 "진짜 '국가안보'는 국경에 울타리를 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래서 이민자들의 시위 구호 중 하나가 "우리가 미국이다"인지도 모르겠다.

청년학교는 지난해 2월, <뉴욕타임즈>에 전면광고를 실었다. "이민개혁이 국가의 번영과 안보의 열쇠이다(Immigration Reform is key to our Nation's Prosperity and Security)"라고.

1만4000명의 개인과 261개 단체의 힘으로 7만8000불을 모아 실은 이 광고는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친이민법안인 케네디-맥케인 법안을 제출했던 존 맥케인 공화당의원은 이 광고가 실린 <뉴욕타임즈>를 사서 자신의 동료의원 전원에게 돌렸다.

실제로 국가안보를 강화한다고 통과시킨 각종 법률이 아무런 실효를 담보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리얼아이디법(연방차원에서 새로운 신분증명을 만들기로 한 법)은 연방에서 통과되었지만 3년이 지난 주정부 차원에서 지금도 예산 문제로 실제 집행은 한 곳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국경수비법이 통과되었지만 국토안보부는 예산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민자 문제는 미국의 미래"

지난 번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백인들은 조만간 소수인종이 될 자신들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는지 모른다. 2050년이 되면 오히려 소수가 된다는 것 아닌가?

이미 미국의 주요 대도시들은 점점 백인이 소수가 되고 있는지 오래다. 오죽하면 <웨스트 윙(West Wing)"이라는 드라마 마지막 시즌에서 새로 선출되는 대통령이 멕시코 사람이겠는가?

청년학교의 문유성 국장은 "미국에서 이민자 문제는 미국의 미래와 직결돼있다"고 말했다. 이미 미국에서 이민자운동은 새로운 개념의 민권운동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이 문 국장의 생각이다. 이민자들에 대한 '사면'은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민자운동은 반전운동과 더불어 지금 미국 사회운동의 새로운 중심이다. 그 운동의 중심에 청년학교도 나란히 서 있다.

#이민#불법체류#유학#미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