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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풍경
교정 풍경 ⓒ 안준철
봄 속의 겨울인 꽃샘추위도 가고 봄기운이 완연해진 탓인지 쉬는 시간이면 둘 셋씩 짝을 지어 교정을 거니는 아이들이 눈에 띕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의 표정 속에서도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집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굳게 닫혀 있던 교실 창문이 지금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 열린 창문 너머로 쉬는 시간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훔쳐보았습니다. 얼마 전 '휘파람 사건'이 있었던 경영정보과 남학생 교실에서는 팔씨름이 한창이었습니다. 열흘 전쯤 수업 시간에 휘파람을 분 녀석이 있었지요. 혼을 내주려다가 교실에 새가 한 마리 날아온 모양이라고 넘겨버리고 말았지요.

쉬는 시간 교실 풍경
쉬는 시간 교실 풍경 ⓒ 안준철
그 후 며칠이 지나 평소 친하게 지내는 한 여선생님이 저를 부르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느닷없이 그 휘파람 사건을 들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수업시간에 휘파람을 분 아이가 있었다면서요. 학력 평가 주관식 국어시험에 6하 원칙에 의거해서 최근에 일어난 일을 써보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쓴 아이들이 많았어요.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었던가 봐요. 이제야 선생님 수준에 맞는 아이들을 만났구나 싶었어요!"

그 여선생님 말로는 여섯 명 아니면 일곱 명이 그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누구일까? 어떤 내용일까? 저는 그것이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아이들이 써낸 시험지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조차 일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날 7교시 마지막 수업이 경영정보과 수업이었습니다. 수업 종료를 십 분쯤 남겨두고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기억에 남아 있는 대로 글을 다시 한 번 써보라고 했습니다.

학력평가에 휘파람 사건을 소재로 쓴 아이는 일곱 명이었습니다. 그들이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는 동안 다른 아이들에게도 영어 시간에 있었던 일들을 소재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영어 수업에 대한 인상이나 건의도 좋고, 개인적인 부탁이 있으면 그것을 써도 좋고, 딱히 쓸 말이 없으면 멋진 시를 한 편 써도 좋다고 했습니다. 시가 어려우면 낙서라도.

그 말을 잘 했다 싶게 한 녀석이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시보다도 더 멋진 낙서였습니다.

'안녕? 나야!! 오랜만이야!!
안녕 A4!!! 반성문 이후 간만인 걸~!!
중학교 땐 하루에 한 번씩 만났는데...
자주 찾아오렴. 네가 없으니 외롭다.'


또 다른 작품(?) 중에는 저를 은근히 약 올리는 글도 있었고, 괜스레 코끝을 찡하게 만든 녀석도 있었습니다. 휘파람 사건을 쓴 아이 중에도 6하 원칙에 의거해서 단 두 줄의 글을 써낸 아이가 있는가 하면,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렇게 긴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진지하게 글을 쓴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음 날 저에게 영어 문장으로 된 글을 가져온 아이도 있었습니다. 자화자찬이 될 소지가 없지 않지만 자랑스러운 경영정보과 1학년 1반 학생들의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선생님!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했지만 바로 어제부터 무서운 얼굴을 보여주시네요. 후후 만원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첫 만남을 가진 날, 영어 선생님이 우리에게 친절한 교사가 되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그 후 영어 선생님은 영어를 쉽게 잘 가르쳐 주셨고, 정말 화를 한 번도 내신 적이 없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영어시간이 너무 재미있다. 더욱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꽃마리와 새움 튼 가지들
꽃마리와 새움 튼 가지들 ⓒ 안준철
'어느 날 영어시간 수업 중에 어떤 학생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 소리를 듣고 선생님께서는 "우리 교실에 새가 한 마리 날라 왔네!" 하시며 화를 내시기는커녕 즐거워하셨다. 그러자 2~3명의 아이가 휘파람을 불었다. 영어 선생님은 마음이 넓은 것 같다. 우리들이 떠들어도 많이 참으시다가 박수를 치시며 조용히 시키신다. 앞으로 영어시간이 재미있을 것 같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내가 휘파람을 불었다. 다음 날 선생님은 "누가 휘파람을 불었니?"하고 물으셨다. 난 "저요"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선생님이 반갑게 말씀해주시니 아무리 잘못을 하여도 나의 마음속 잘못을 숨기고 싶지 않다. 만약 모든 선생님들이 안준철 선생님처럼 친절하게 하시면 학생들이 거짓말을 하고 그럴까? 난 결코 그러지 않으리라고 말하고 싶다. 난 선생님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교육의 꽃인 아이들 풍경
교육의 꽃인 아이들 풍경 ⓒ 안준철
'영어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한 지도 어느 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즐거운 일, 또는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그중에 휘파람 새 사건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수업을 시작하려던 순간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듣기에 새의 소리였지만 분명 사람이 불었던 휘파람 소리가 분명하였다. 하지만 영어 선생님께선 "어 우리 반에 새가 한 마리 들어왔네?"라고 말씀하시자 계속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에 나는 당연히 선생님께서 화를 내실 거라 장담했다.

하지만 안준철 선생님의 "새가 두 마리로 늘었네!~"라는 다정한 목소리에 휘파람 부는 소리는 점점 이어졌고 휘파람 부는 애들은 점점 늘어갔다. 선생님은 우리와 약속한 것을 어기기 싫어서 그러셨는지 아니면 진심으로 우리를 이해해 주시고 너그럽게 대해주시려고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새를 모두 날려보세요!"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만약 이렇게 말하지 않고 화를 내며 말했더라면 선생님과 우리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수업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렇게 웃으며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서로 웃으며 수업을 할 수 있었고 더 열심히 하려는 마음도 먹게 된 것 같다. 안준철 선생님은 내 머리 속에 지워지지 않는 좋은 선생님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교 하는 아이들
하교 하는 아이들 ⓒ 안준철
'One day during the class someone did whistle.
Ordinary teacher will say "Come here!" or Punishment!
But Mr. Ahn said "There is a bird in the our class, isn't it?"
And he said "Take out all your birds in your mind!"
At that moment, I thought he has so much humor and sense.
When the class was over, Mr. Ahn and the students were happy!'

어느 날 수업시간에 어떤 학생이 휘파람을 불었다. 보통 선생님 같았으면 "너 나와!"라고 말하든지 아니면, 벌을 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안 선생님은 "교실에 새가 한 마리 들어왔네!" 라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는 "우리들의 마음에 있는 새를 날려보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는 선생님이 유머감각이 풍부하시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날 때 선생님도 학생들도 모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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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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