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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한치도 양보를 않고 있는 두 선수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한치도 양보를 않고 있는 두 선수 ⓒ 유영수

경상북도에 있는 차량이 한꺼번에 다 모인 걸까. 2007 청도소싸움축제가 열리고 있는 청도군 이서면 서원천변 주변에는 주차를 하기위한 관람객들의 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 위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25일 소싸움으로 유명한 경북의 청도를 찾았을 때의 진풍경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도'하면 무척이나 생소한 도시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소싸움대회 덕에 청도는 이미 전국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기도 하다. 서울에 사는 기자가 소싸움축제가 아니었다면 언제 이 소도시를 방문했을 런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인파로 가득찬 소싸움경기장의 전경
인파로 가득찬 소싸움경기장의 전경 ⓒ 유영수

기선을 제압한 듯 보이는 소가 잔뜩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아래에 깔린 소는 기가 죽어있는 모습이다.
기선을 제압한 듯 보이는 소가 잔뜩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아래에 깔린 소는 기가 죽어있는 모습이다. ⓒ 유영수

수많은 인파가 운집한 특설경기장에는 차가운 전운이 감돌고 있다. 경기장 안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양 선수는 물론이려니와 취재기자들과 사진작가들의 열기 또한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스페인에서 열리는 투우경기장 못지않은 정열이 느껴진다.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를 소개하면 싸움소는 소주인과 함께 차례로 경기장으로 입장한다. 먼저 입장한 선수는 숨고르기에 이어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발길질로 모래를 공중에 뿌린다. 이에 뒤질 새라 뒤이어 입장한 상대 선수도 같은 동작으로 맞선다.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두 선수는 뿔을 맞대고 기 싸움을 벌이는데 그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경기시작 휘슬이 울리면 숨 막히는 접전이 이어진다. 두 선수는 상대의 머리 위에서 상대선수의 머리를 짓누르며 압박을 가하는가 하면 얼굴 아래쪽을 파고들며 뿔로 공격을 하기도 한다.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주던 소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자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휴전을 외치고 있다. 격렬하게 맹위를 떨치던 싸움꾼에서 일순 유순한 양처럼 변해버린 소들이 왠지 귀여우면서도 측은하게 느껴진다.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주던 소들은, 시간이 오래 지나자 지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휴전을 외치고 있다. 격렬하게 맹위를 떨치던 싸움꾼에서 일순 유순한 양처럼 변해버린 소들이 왠지 귀여우면서도 측은하게 느껴진다. ⓒ 유영수

정적을 깨고 상대편 소 밑으로 파고드는 왼쪽 싸움소와 뚝심으로 버티고 있는 오른쪽 소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정적을 깨고 상대편 소 밑으로 파고드는 왼쪽 싸움소와 뚝심으로 버티고 있는 오른쪽 소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 유영수

TV나 인터넷에서가 아니라 직접 소싸움을 관람하는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이들의 경기를 지켜본다, 싸움소들의 세밀한 동작 하나하나에 탄성을 내고 함성을 지르며 연호하기도 한다.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참 아찔할 만큼 재밌는 승부임에 틀림없다.

싸움소들은 온힘을 다해 밀어붙이는 밀치기와 상대의 빈틈을 노려 목을 밀어붙이는 목치기, 그리고 상대선수의 뿔을 걸어 들어올리는 뿔걸이 등 다양한 싸움기술을 선보이며 맹훈련으로 다져진 기량을 뽐낸다. 서로 버티고 싸우다 상대선수를 외면하고 이탈하면 경기에서 지게 된다.

이 싸움소들이 접전을 펼칠 때 소 주인들은 바로 옆에서 각자의 선수를 독려한다. 하지만 경기규칙상 선수를 만질 수는 없으며, 선수를 세심히 관찰하며 지시를 내릴 뿐이다. 자신의 소가 상대선수에게 조금이라도 밀린다 치면 파이팅을 외치며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이 소주인의 임무인 것이다.

소 주인들이 가장 난감한 경우는 싸움소들이 전혀 싸우려 하지 않을 때이다. 보통 한 경기당 12분 정도의 시간 내에 승패가 갈리기 마련인데, 어떤 선수들은 20분을 훌쩍 넘기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펼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말이다.

반면 어떤 선수들은 기껏해야 2분 남짓 싸우는 척하다 이내 싸울 의사가 없는 표정으로 모래에 얼굴을 파묻고 있거나 무언의 시위를 하며 주인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럴 때 소 주인들은 재주껏 자신의 싸움소를 설득해 보지만 끝내 경기에 임하지 않을 경우 기권 패를 선언하는 모습도 보인다. 권투경기 중 넉 다운이 되기 직전의 선수를 대신해 코치가 흰 수건을 던지며 기권을 하는 장면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스페셜게스트로 초청된 주한미군 로데오시범단이 시범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스페셜게스트로 초청된 주한미군 로데오시범단이 시범을 보여주고 있는 모습 ⓒ 유영수

로데오 시범경기 연속장면. 선수를 태우자마자 앞발과 뒷발을 연이어 들며 떨어트리려 요동을 치는 소. 그러다 선수가 떨어지자 바로 승리의 세리머니를 보여주려는 듯 우스꽝스런 동작으로 멀리 달아나는 싸움소의 모습이 무척 재밌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로데오 시범경기 연속장면. 선수를 태우자마자 앞발과 뒷발을 연이어 들며 떨어트리려 요동을 치는 소. 그러다 선수가 떨어지자 바로 승리의 세리머니를 보여주려는 듯 우스꽝스런 동작으로 멀리 달아나는 싸움소의 모습이 무척 재밌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유영수

로데오선수가 싸움소 등에서 떨어지면 경기장 한편에 대기하고 있던 동료소들이 일제히 달려나와 함께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자축세리머니를 보여준다. "우리 인기 되게 많은 거 같은데 이참에 광고도 하나 찍으면 어떨까?" 이렇게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
로데오선수가 싸움소 등에서 떨어지면 경기장 한편에 대기하고 있던 동료소들이 일제히 달려나와 함께 경기장을 뛰어다니며 자축세리머니를 보여준다. "우리 인기 되게 많은 거 같은데 이참에 광고도 하나 찍으면 어떨까?" 이렇게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 ⓒ 유영수

이날 경기에서 특별게스트로 초청된 주한미군의 로데오 시범단은 정오를 조금 넘겨 무대에 등장했다. 몇 명의 남자선수가 미리 준비된 싸움소 위에서 번갈아가며 시범을 보여준다. 헌데 많이 기대했던 탓인지 생각보다 썩 재밌어 보이지는 않는다. 차라리 싸움소들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는 본경기가 더 스릴 있게 느껴진다.

2007 청도소싸움축제는 외견상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대회 개막 후 이틀 동안만 10만 여명이 넘는 관람객이 청도를 다녀갔고 경기내용 또한 박진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주차하는 데 최소한 1시간, 그리고 경기장에서 나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데만 다시 1시간이 걸리는 주차대란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내년에 또 청도를 찾아올 관람객은 줄어들 것으로 여겨진다.

소싸움에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관람객들. 그리고 경기장 인근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가족들끼리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 흥겨운 주말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청도소싸움축제는 주민들의 지역잔치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경기에 흥미를 잃은 싸움소들이 소주인의 만류에도 아랑곳않고 양편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경기에 흥미를 잃은 싸움소들이 소주인의 만류에도 아랑곳않고 양편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유영수

이날 경기의 최대 하이라이트 장면. 20분이 훨씬 넘겨가며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양 선수. 하지만 오른쪽 소 금강이 혀를 내밀고 지친 표정으로 버티다 결국 대치장소를 벗어나 바삐 경기장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어찌나 빠른지 카메라에 담기도 힘들 정도였다. 관중들은 즐거워하지만 쓸쓸히 경기장 한켠에 서있는 금강이의 모습이 애처롭게만 느껴진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날 경기의 최대 하이라이트 장면. 20분이 훨씬 넘겨가며 박빙의 승부를 펼치던 양 선수. 하지만 오른쪽 소 금강이 혀를 내밀고 지친 표정으로 버티다 결국 대치장소를 벗어나 바삐 경기장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어찌나 빠른지 카메라에 담기도 힘들 정도였다. 관중들은 즐거워하지만 쓸쓸히 경기장 한켠에 서있는 금강이의 모습이 애처롭게만 느껴진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유영수

덧붙이는 글 | 2007 청도소싸움축제는 3월 28일까지 계속됩니다.

맛있는 음식과 멋스런 풍경사진을 테마로 하는 제 홈피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 
(http://blog.naver.com/grajiyou)에도 올려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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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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