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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아빠, 대추리에 나도 갈텨."

작은 녀석 인상이는 담임선생님과 함께 아산 현충사로 기분 좋게 여행을 떠났고, 큰놈 인효 녀석은 여행 떠나는 동생을 부러워하더니 마지막 촛불행사가 열리는 평택 대추리에 가자니까 좋다며 따라나섰습니다. 감기 기운이 있던 아내도 주섬주섬 두꺼운 옷을 챙겨 입고 함께 나섰습니다.

"대추리 가면 군인들이 막고 있어? 내 친구도 대추리에 친척집이 있어서 가봤다는데…."

호기심 가득한 인효 녀석은 대추리로 가면서 내내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합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녀석은 역사 답사 길을 나설 때처럼 가슴 설레는 모양입니다.

ⓒ 송성영
대추리에 도착했습니다. 미군 기지의 철조망, 전쟁터처럼 허물어진 집채들, 폐허가 된 학교를 보더니 녀석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갔습니다.

대추리 그리고 저만치 도두리 너른 벌판, 끝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미군 기지가 들어선다고 하니 녀석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옵니다.

ⓒ 송성영
"나쁜 미국놈들! 에이 나쁜 놈들! 왜 우리 땅에 들어와서 맘대로 빼앗는 겨! 집들을 다 때려 부수구…."

녀석은 씩씩거립니다. 나는 욕설을 퍼붓는 어린 자식의 입을 막지 못했습니다. 자식에게 미안했습니다. 녀석의 욕설이 대추리를 위해 무엇하나 제대로 못한 무능한 나에게 꽂혀왔습니다. 나는 그저 "…그러니까 우리가 힘을 길러야 혀"라는 빤한 말만 되풀이해줄 뿐이었습니다.

대추리에서 미안한 게, 죄스러운 마음 닿는 것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폐허로 변하고 있는 대추리의 살벌한 풍경 속에서도 겨울을 견뎌낸 마늘이 푸르게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미군 기지가 들어설 너른 벌판을 바라보고 있는 마늘밭에도 죄스러웠습니다.

▲ 겨울을 견뎌낸 마늘밭 저만치 허물어진 집채가 보인다.
ⓒ 송성영
조만간 마늘밭은 짓밟힐 것입니다. 미군의 군홧발에 짓밟힐 것입니다. 마늘은 물론이고 밭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져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지만 온갖 생명들을 키우고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렸던 마늘밭은 이제 온갖 잡것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결국은 처참하게 죽음의 땅으로 변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대추리의 땅에서는 더는 생명을 키우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미군들의 노리개가 되어 끝내는 갈기갈기 찢겨 죽음의 땅이 될 것이었습니다.

눈앞에 담배 가게가 보였습니다. 차를 타고 오면서 마지막 한 개비 남은 담배를 불사르고, 더는 피지 않겠다던 부질없는 맹세가 두 시간도 채 안 되어 깨져버렸습니다.

▲ 조만간 대추리, 도두리 마을 사람들의 발이 되어준 버스도 사라질 것이다.
ⓒ 송성영
담배를 피워 물자 버스 한 대가 급하게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발이 돼 주었던 버스도 더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 난데없이 날아든 까마귀떼가 대추리 하늘을 수놓았다.
ⓒ 송성영
행사가 열리는 농협창고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난데없이 까마귀 떼들이 창공을 까맣게 수놓았습니다. 나이 든 노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까마귀는 흔히들 영물이라고 합니다. 까마귀 떼를 보면서 고구려의 기상을 떠올려 봅니다. 삼족오, 세 발 달린 까마귀는 힘 있는 고구려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 출판기념회및 헌정식
ⓒ 송성영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가득한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추리, 도두리 헌정 반전평화 시 산문선 <거기 마을 하나 있었다> 출판 기념 및 헌정식를 갖고 글 쓰는 사람들이 시도 낭송했습니다. 노래도 불렀습니다. 평화 지킴이들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절망보다는 그동안 대추리에서 '자주' '평화'의 의지를 다지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창고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935차 촛불 집회가 열렸습니다. 저마다 촛불 하나씩 들었습니다. '오는 미군 막아 내고 있는 미군 몰아내자' 구호를 외쳤습니다.

나는 이번 촛불집회가 결코 마지막 촛불 집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생명을 되살기 위해 평화의 촛불을 지피고 있었습니다. 대추리의 온갖 생명들이 미군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긴다 하여도 언제든지 되살릴 수 있다는 대추리를 확인하는 자리로 다가왔습니다.

ⓒ 송성영
행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인효 녀석이 지루한 표정으로 집에 가자고 칭얼거립니다. 녀석은 일주일에 두 차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텔레비전을 봅니다. 유일하게 사극 드라마를 꼬박꼬박 시청하고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 것이었습니다. 사극 드라마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가려면 행사를 끝까지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녀석의 귀에 바싹대고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너 그거 하나 못 참아, 드라마가 그렇게 중요해, 오늘이 마지막 촛불집횐데, 대추리 촛불집회는 이제 더는 참가 할 수 없지만 역사 드라마는 재방송도 볼 수 있고 또 앞으로도 얼마든지 많이 볼 수 있잖아."

녀석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녀석은 열셋, 어린 아이일 뿐이었습니다. 대추리에 도착하자마자 자주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역사의식으로 충만했던 녀석의 기상은 온데간데없이 사극에 빠져있었습니다.

진정성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있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촛불집회 30분을 남겨두고 슬그머니 자리를 떴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녀석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지, 말문을 닫아 버린 내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아빠."
"……."

"아빠!"
"…아빠 오늘 너한테 실망했어, 너 하구 말하기 싫어, 넌 말만 앞세우고 실행은 안허잖어, 그것도 못 참어, 드라마가 그렇게 중요해, 오늘이 마지막 촛불 집횐디…."

녀석은 더는 말이 없었습니다. 말 없는 녀석이 안쓰러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 자신이야 말로 대추리에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한순간 '마지막 촛불집회'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희망의 자리였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희망보다는 절망의 뿌리가 더 깊이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정작 실망했다는 말은 내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었습니다.

내일 아침 녀석이 눈 비비고 일어나면 말해줘야겠습니다.

"아빠는 너 한데 실망하지 않았다. 니가 대추리에 간 것만 해도 아빠는 자랑스럽다. 다음에 또 가자."

"왜 우리는 이 땅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일까?"
아들 인효가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글

다음 글은 큰 아들 송인효가 대추리에 다녀와 다음날 아침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내용입니다. 촛불집회를 다 마치고 돌아오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어제 엄마, 아빠와 함께 대추리에 갔다.
대추리, 도두리에 곧 있으면 마을 주민들이 떠나고,
그곳에 미군기지가 세워진다고 한다.
대추리에 들어갈 때 우리나라 경찰들이 입구를 경비하고 있어
약간 무섭기도 하고, 남의 나라 기지를 지키고 있으니 화가 나기도 했다.
대추리 마을에 들어와 건너편의 미군기지를 보았는데
꼭 사진에서 본 남북의 휴전선 같이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또 곳곳에 대추리 사람들의 집들이 부서져 있었다.
그런 집들을 보니 화가 나고, 안타까웠다.
만약 우리 마을에 미군기지가 세워져
대추리 사람들처럼 내가 자란 정든 고향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대추리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왜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땅에서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미군들 때문에 떠나야만 할까?
왜 우리는 이 땅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일까? / 송인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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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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