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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들이 칼끝 같다.
풀잎들이 칼끝 같다. ⓒ 서성
삼월의 비는 우량이 많지 않아 보통 가는 비(細雨)라 하거나, 잔비(小雨)라고 한다. 혹은 듬성거리게 온다 하여 고대 중국에선 소우(疏雨)라고 하거나, 역시 가늘다는 뜻으로 섬우(纖雨)라고도 한다.

삼월의 비는 확실히 파초를 두드리는 시원한 여름에 내리는 비와 다르고, 낙엽에 젖어드는 가을비와도 다르다. 같은 봄비라 해도 꽃이 한창인 사월의 비와도 또 다르다.

삼월이 되면서 비가 오는 날이 드문드문 찾아온다. <대대례기(大戴禮記)>에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화합하면 곧 비가 내린다(天地之氣和卽雨)"고 했는데 아마도 3월의 비가 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듯하다.

삼월의 비야말로 만물의 소생을 도와주는 비이다. 이러한 비의 느낌을 잘 잡은 시로 당대 맹교(孟郊)의 짧은 시 '봄비가 내린 후(春雨後)'가 있다.

昨夜一霎雨, 어젯밤 지나간 가랑비
天意蘇群物. 만물을 소생시키려 하는 하늘의 뜻이네
何物最先知? 가장 먼저 그 뜻을 알아차린 건 무얼까
虛庭草爭出. 빈 뜰에서 다투어 나오는 풀들이라네


이제 막 자라나오는 풀들은 비에 씻겨 초록 물이 든 것처럼 신선하다. 이들이 하늘의 뜻을 알고 있다 함은 마당의 풀들조차 우주의 활동 속에 속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삼월에 비가 오면 기온이 내려가고 봄이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비가 그치면 나무들이 목욕을 한 듯 신선해지고 초록빛도 더욱 진해지니 말이다.

검은 땅에서 저 푸른 녹색이 터져나온다.
검은 땅에서 저 푸른 녹색이 터져나온다. ⓒ 서성
봄비를 읊은 시 가운데 잘 알려진 것으로 두보(杜甫)의 '봄밤의 비를 기뻐하다(春夜喜雨)'가 있다.

好雨知時節, 내려야 할 때를 아는 좋은 비가
當春乃發生. 봄에 맞추어 초목의 싹을 틔우는구나
隨風潛入夜, 바람 따라 몰래 밤에 와서는
潤物細無聲.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는구나
野徑雲俱黑, 들길은 구름과 함께 캄캄하고
江船火獨明. 강위의 배에 불이 홀로 밝다
曉看紅濕處, 새벽이 되면 붉게 젖을 터이니
花重錦官城. 성도(成都)의 거리에 꽃들이 짙어지리라


이 시는 두보가 761년 봄(50세)에 성도(成都)에 있을 때 지었다. 당시 두보는 교외의 완화계(浣花溪)에 초당을 짓고 비교적 안정된 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시에는 봄비에 대한 기다림과 기쁨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전반 4구는 밤에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는 봄비의 특징을 잘 표현하였다.

녹색의 풀들이 진군하는 군대 같다.
녹색의 풀들이 진군하는 군대 같다. ⓒ 서성
삼월에 비가 내릴 때 읽고 싶은 또 한 편의 시는 한유(韓愈)가 쓴 '이른 봄 장적(張籍)에게(早春呈水部張十八員外)'이다. 장적은 한유의 절친한 친구이다.

天街小雨潤如酥, 장안 거리에 내리는 잔비 우유처럼 윤기 나고
草色遙看近却無. 멀리선 보이는 풀빛도 가까이 가면 오히려 안 보여
最是一年春好處, 지금이 바로 일 년 중 봄이 가장 좋은 때
絶勝烟柳滿皇都. 황도(皇都)에 버들이 가득 찬 때보다 훨씬 뛰어나구나


이 시는 이른 봄의 풍경을 산뜻하게 그리고 있다. 천가(天街)와 황도(皇都)는 모두 당(唐)나라의 수도인 장안(長安, 지금의 서안)을 가리킨다. 어느 학자는 이 시가 823년에 쓰였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지금부터 1200년경 전의 서안의 이른 봄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먼저 잔비에 젖은 장안의 모습을 우윳빛으로 그리고 있다. 소(酥)는 연유(煉乳)로 이른 봄의 잔비가 그처럼 윤기난다고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우유가 지닌 풍요로움과 생명감을 환기하고 있는 것이리라. 봄이 주는 느낌을 이런 어휘로 잡아낸다는 것이 신선하다.

어느 사이 민들레가 모양을 갖추었다.
어느 사이 민들레가 모양을 갖추었다. ⓒ 서성
제1구도 뛰어나지만 사람의 입에 더욱 회자되는 것은 제2구이다. 풀빛(草色)이 멀리에서는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맘때 느낄 수 있는 이러한 경험은 버들에서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버들가지에 싹이 나기 시작할 때, 멀리서는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보이지 않는 걸 여러 번 느낀 적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도 느꼈겠지만, 그것을 언어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것을 표현해내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일일 것이다.

"초색요간근각무(草色遙看近却無)." 오래전에 한유(韓愈)가 이미 우리를 대신해서 이 말을 하고 있다. 제3구는 직설적으로 이른 봄이 일 년 중 가장 좋은 때라고 말하고 있고, 제4구는 이른 초봄의 이러한 풍경은 봄버들이 한창인 때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짧은 시를 그림으로 연상하여도 좋을 것이다. 제1구는 장안의 비 오는 거리를 원경으로 잡고 있다면, 제2구는 연한 연둣빛 버드나무를 근경으로 잡았다. 제4구는 다시 원경으로 물러나 한 달 정도 지난 후 푸른 버들이 가득 찬 장안의 거리를 그린다. 원경과 근경의 교차 속에서 이른 봄은 더욱 신선하게 다가선다.

비가 와서 고인 물속에서 겨울 나무가 봄을 기다린다.
비가 와서 고인 물속에서 겨울 나무가 봄을 기다린다. ⓒ 서성
봄이 되면 사람들은 꽃을 말한다. 그러나 한유는 잔비와 풀빛을 말하고 있다. 신록이 꽃보다 향기롭게 느껴지는 때가 바로 요즈음이다.

혹간 먼지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변덕 많은 봄 날씨를 탓하다가도 화창한 햇볕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조만간 이른 봄의 강렬한 생명감은 어느 사이 익숙해지고 사람들은 날씨가 더워질까 걱정하리라.

덧붙이는 글 | 서성 기자는 열린사이버대학교 실용외국어학과 조교수로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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