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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저는 국회교육위원회 소속 안민석 의원입니다. 아크로폴리스 광장으로 쏟아지는 봄볕을 따라 후배들의 활기도 교정을 가득 메우리라 생각됩니다. 며칠 전 3불정책에 대한 교수님의 발언을 접하고 제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공개서한으로 여쭙게 된 점에 대해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난 3월 초 한나라당의 한 의원님은 서울대로부터 서울대에 입학한 고등학교별 학생수를 집계 낸 자료를 요청하여 언론에 공개한 바 있습니다. 이어 서울의 '주요' 사립대라 불리는 대학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교육부의 2008년 이후 대학입시안을 간단히 무시하고 정시 모집 인원 중에서 절반은 수능만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사립대에서 3불정책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새 학기를 맞아 새 선생님, 새 친구들을 맞아 기쁘고 즐거워야 할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의 곁에 있는 학부모들은 이 광경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일부 언론에서 우리 교육을 망치는 원흉으로 지목하던 '3불 정책'의 폐지가 한 걸음 성큼 다가온 것 같아 기뻐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울대는 공부만 잘하는 이기적 엘리트 선발에 골몰한 게 아닌지요

자료를 넘겨준 서울대는 과연 어떤 심정이었는지 모르지만 서울대를 많이 들어간 학교 순서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신문상의 표를 보고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학부모는 혹시 아이가 다니는 학교 이름이나 집 근처에 있는 학교 이름이 들어있을까 가슴을 졸이고, 다른 학교에 간 중학교 친구들이 혹시 내가 다니는 학교는 서울대에 두 명밖에 못 들어갔다고 빈정거리진 않을까 아이들은 속상해 할지도 모릅니다. 자료에 제시된 표의 밑부분에 명단이 있는 학교의 선생님들은 학부모들이 무능하다고 항의는 안할까 교무실에서 수군거리며 일손을 놓고 있을 광경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교수님은 혹시 이런 광경을 한 번도 머릿속에 그려보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교수님, 저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아이들이 노란 봉고차에 실려 자정이 넘도록 학원에 실려 다니고, 시험점수와 석차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아파트 옥상에 피어보지도 못한 꽃들이 몸을 내던지는 입시지옥 속에서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업부담 때문에 서울대 학생이 목숨을 끊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서울대는 오히려 공부만 잘하는 이기적 엘리트 선발에 골몰해 왔습니다. 이 기막힌 현실을 교수님은 어떻게 해명하시겠습니까? 입시지옥 해방을 위해 서울대가 본고사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하시는지요?

교수님께서는 며칠 전 한 초청강연에서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발언은 정치권 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며 이런 저런 예측과 전망을 내느라 바쁩니다만 저는 그 발언 자체에 큰 충격과 실망감을 안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총장 시절에는 조직의 논리와 입장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만 서울대 총장을 그만둔 이후에도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엔 힘에 겨웠습니다.

인재 독점을 위해 전국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게 낡은 방식 아닌지요

교수님, 대학의 선발권, 대학의 자율도 중요합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정부가 대학에서 손을 떼는 날이 빨리 오길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간 그랬던 것처럼 대학입시에 더 이상 초·중등교육이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소위 주요대학들이 '인재'들을 독점하기 위해 전국의 학생들을 줄을 세우는 방식은 낡은 것입니다. 대학이 이런 자율을 누리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와 가정에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개인의 자유도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상식이라고 봅니다.

지금 서울대가 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을 고등학교별로 분류해 세상에 알리고 교수님 말씀대로 고등학교에 등급을 매기면 입시지옥이 초등학교까지 확대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논술만 가지고도 아이들은 입시준비를 하면서 어려워하는데 본고사까지 보게 되면 아이들 비명소리에 우리 어른들은 잠을 못 이루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제 그만 대학은 아이들을 놓아주어야 합니다. 서울대를 비롯한 소위 '주요대학'들이 그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 '선발 기제'에 의존해 타 대학보다 우수한 인재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겉치레보다는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각 대학 교수님들은 고등학교까지 교육과정을 성실하게 마친 아이들 중에서 그 학생이 성취해온 각종 지표와 증거들을 통해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 학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졸업정원제를 통해 학생들이 이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치열하게 공부시키고 대학은 체질을 변화하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수충원도 제대로 하지도 않고 토익과 고시준비를 위한 책이 도서관 좌석을 뒤덮고 있는 대학의 현실을 뒤로 하고 초·중등교육을 탓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교육체계 중에서 맏형이 보여야 할 태도가 아니라고 봅니다.

진정한 경쟁력은 자기 자리에서 신명 다할 때 나오는 것

진정한 경쟁력은 자기 분야에서 자기 자리에서 신명을 다할 때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대학입시 경쟁을 통해 몸과 마음이 지친 아이들이 신명을 다해 학문에 열중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초·중등교육은 망가지고 대학은 경쟁력을 꾀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상황이 과연 교수님의 말씀대로 '하향 평준화'에서 비롯된 것인지, 대학의 서열에 기댄 낡은 선발 기제를 버리지 못하는 것에서 연유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고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교수님, 재직시절 지역균형 선발이나 서울대 개혁을 위해 노력을 보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변화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여러 고민을 하고 국민 앞에 그 고민의 결과를 이야기하실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서울대 교수 재직 당시 강조했던 바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며칠 전 초청강연에서 3불정책과 관련한 발언을 하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 교육을 위해 3불 정책의 폐지가 정말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인지 꼭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제 인생과도 바꿀만한 제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입시지옥에서 해방된 우리 모두의 아이들을 위한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정치인으로서 묻습니다. 제 마지막 남은 기대가 물거품이 되고 교수님이 정치의 길로 들어선다면 저는 정치인으로서 제 꿈인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위해 교수님을 과감히 가슴속에서 지우게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편지를 띄우게 되어 송구스러운 마음을 전합니다. 부디 이 땅의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한 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화답이 이어지길 기다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3불정책#서울대#안민석#국회교육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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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안민석입니다. 제 꿈은 국민에게는 즐거움이 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삶의 모델이 되는 정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오마이에 글쓰기도 정치를 개혁하고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 중에 하나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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