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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의 연습현장. 좌로부터 선(곽선영 분), 캣츠비(김태훈 분)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의 연습현장. 좌로부터 선(곽선영 분), 캣츠비(김태훈 분) ⓒ 이명익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외국에서 저작권을 가지고 있어 해당 국가에 로열티를 지불한 뒤 공연할 수 있는 뮤지컬)이 주름잡고 있는 국내 뮤지컬 시장에 창작 뮤지컬이 도전장을 던졌다.

지난해 인터넷에서 월 500만건이 넘는 조회수와 2006년 '대한민국창작만화대상', '오늘의 우리만화'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만화가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가 뮤지컬로 그 무대를 옮겨 오는 9일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에서 그 화려한 막을 올린다.

젊은 날의 고뇌와 가슴 울컥한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사랑에 대한 미련과 집착, 그 안에 감춰진 비밀을 담아내고 있다. 원작을 본 사람이라면 그들의 노래와 연기를 접하는 순간, 머릿속의 영사기가 차르르 돌아가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지난달 16일, 배우들의 열정이 묻어나는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 연습 현장을 찾았다.

사랑에 목마른 솔로들을 위한 공연

"들켰어~들켰어~♪"

아름다운 화음을 자랑하려는 듯 배우들의 노랫소리가 연습실 밖까지 전해졌다. 연습실 분위기는 배우들의 의상만 편안했을 뿐 실제 공연을 방불케 하는 열연으로 무대의 압도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재미있는 가사와 위트까지 겸비한 수록곡들은 뮤지컬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으며, 배우들은 만화 속 주인공들을 그대로 꺼내온 듯 그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만화 <위대한 캣츠비>의 주인공을 떠올려볼 수 있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1년간의 기획단계를 거쳐 각색, 작곡, 연출, 배우 등이 힘을 합친 작품으로, 작은 규모의 소극장에서 시작하지만 한국 창작 뮤지컬 시장의 등불로 만들겠다는 출연배우들의 열의가 대단하다.

중·소극장용 뮤지컬들이 주로 로맨틱 코미디나 코믹 멜로물인 것에 비해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정통 멜로물로 20대 청춘의 현실적 고뇌와 사랑에 얽힌 이야기를 반전과 함께 재치있게 그려내고 있다. 소극장 작품이기에 관객과 배우가 함께 느끼고 소통하는 점이 국내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들보다 <위대한 캣츠비>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다.

캣츠비 역을 맡은 김태훈씨는 "두 남자간의 우정과 배신, 남녀간의 절절한 사랑, 그 뒤의 반전을 잘 살린 작품"이라며 "캣츠비의 순수한 사랑, 하운드의 스토커적인 사랑, 선의 지고지순한 사랑, 부르독의 돈으로 주고받는 사랑 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여러 사랑의 모습들을 보며 자신의 사랑 방식을 찾을 수 있어, 현재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솔로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대한 캣츠비>는 한국 창작 뮤지컬 사상 최초로 10개월 이상의 오픈런(폐막 날짜를 정해놓지 않고 공연함)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탄탄한 기획과 수준 높은 공연을 보증한다는 의미이다. 뿐만 아니라, 장기 공연의 장점을 살려 지속적으로 작품을 수정·보완할 수도 있어 완성도 높은 공연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국내 최초 시도된 '영상뮤지컬'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의 연출을 맡은 박근형씨.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의 연출을 맡은 박근형씨. ⓒ 이명익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의 연출을 맡은 박근형씨는 1999년 <청춘예찬>으로 그 해 연극계의 모든 상을 휩쓸고, 지난해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로 9개상을 수상해 다시 한 번 연출력을 인정받은 실력파 연출가다. 드라마, 영화 OST 제작 등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작·편곡그룹 아트모스피어가 맡은 음악도 눈길을 끈다.

발라드, 크로스오버, 보사노바, 록 등 스무 곡에 달하는 노래들이 모두 다른 장르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모여 만들어낸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어떤 모습일까.

연출가 박근형씨는 "<위대한 캣츠비>는 원작의 기본틀을 살려 20대 중반의 사랑과 사랑에 대한 미련을 그린 작품으로 사랑에 대해 풀어나갔기 때문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 사랑 때문에 오랜 우정마저 저버린 하운드의 비밀이 밝혀지는 장면은 놓쳐서는 안 될 명장면"이라고 소개했다.

원작자인 만화가 강도하씨는 주인공들을 동물로 그린 이유에 대해 '주인공들은 모두 잘나고 멋있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고양이, 개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동물들로 의인화해 표현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의인화해 표현하지 않고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성격적 특징들만을 반영하고 있다.

강도하 원작의 '위대한 캣츠비'
강도하 원작의 '위대한 캣츠비' ⓒ 애니북스
원작은 인터넷 만화만의 특징인 스크롤바를 잘 활용했다는 네티즌들의 평을 받고 있다. 스크롤바를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감정의 선이 높아지는 것을 잘 표현했다는 것.

반면 인간의 내면적인 모습을 다뤄 다소 난해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에 대해 연출가 박씨는 "원작은 한 컷 한 컷이 모두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원작의 내면적 고뇌를 표현하기 위해 뮤지컬에서는 '여백'과 '정적'을 이용했고, 시간의 제약 때문에 단순하게 표현하는 연출 방법을 택했다"고 밝혔다.

또 "원작이 너무나 유명한 만화였기에 부담이 더욱 컸다. 그러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고 곡들 또한 굉장히 좋아 흥행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음악들은 대부분 밝고 경쾌한 리듬으로 구성돼 음악만 들어도 관객들은 충분히 흥겨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국내 뮤지컬에서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화려한 애니메이션 영상과 무대가 결합된 영상 뮤지컬이다. 영상은 원작에서 사랑이 다가오고 떠남을 암시하는 나비, 캣츠비와 하운드의 갈등, 달동네 마을 등 원작의 장면을 삽입해 뮤지컬의 이해도와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기획주관사인 다온커뮤니케이션 측은 "영상만으로도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될 수 있을 정도다. 기대 이상의 멋진 무대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씨는 <위대한 캣츠비>를 배우들의 땀과 노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라 평하면서 "대형극장의 뮤지컬 공연들은 갖가지 효과들과 화려한 조명 등을 사용해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극장 공연이어서 버라이어티한 부분은 다소 떨어진다. 순전히 배우들의 실력으로 표현되는 작품"이라고 전했다.

원작자인 강도하씨의 배려도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몫했다. 강씨가 "만화 <위대한 캣츠비>와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는 서로 별개의 작품이다. 원작에 구애받지 말고 훌륭한 공연으로 만들어 달라"는 뜻을 밝혀 뮤지컬 제작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고.

박씨는 "원작자의 이런 환대(?)가 없었더라면 과감한 생략과 첨가 등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강씨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내며 "원작이 워낙 잘 알려진 작품이라 원작보다 더 재미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또 대중적이면서도 여운이 남는 공연으로 완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창작뮤지컬 발전 위해 전용극장 시급

연습현장에서 실제 공연의 열기가 느껴진다. 좌로부터 페르수(정인지 분), 캣츠비(김태훈 분).
연습현장에서 실제 공연의 열기가 느껴진다. 좌로부터 페르수(정인지 분), 캣츠비(김태훈 분). ⓒ 이명익
박광수의 <광수생각>, 강풀의 <순정만화>, 김혜린의 <불의 검>, 김진의 <바람의 나라> 등 만화를 원작으로 한 공연들이 대학로의 새로운 레퍼토리로 자리잡아가는 추세에 대해 박씨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만화에 대한 인식도 변해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부모님들이 만화를 보는 아이들을 나무라곤 했었지만 요즈음엔 애니메이션학과도 생기고 점차 예술적 분야로 인정받고 있다. 또 만화는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공연 문화로 쉽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며 앞으로도 만화를 원작으로 한 공연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현재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은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 <맘마미아>, <토요일 밤의 열기> 등 라이선스 뮤지컬이 주도권을 잡고 있어 대형 극장에는 수입 뮤지컬이, 소형 극장에는 창작 뮤지컬이 집중되는 편식 현상이 두드러진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화려한 창작 뮤지컬의 등장을 기대하기에 앞서 그런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작품의 뼈대야 예술가에 의해 창조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바탕이 되는 토양을 갖춰야 한다. 뿌리 내릴 자리 없이 열매만 맺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다. 좋은 작품의 출현에 앞서 그러한 존재가 등장할 수 있는 구조적인 시스템의 구축, 환경의 조성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며 뮤지컬 전용 극장 마련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박근형씨는 창작 뮤지컬을 하려면 프런티어(개척) 정신이 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창작 뮤지컬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노력은 물론 금전적 여유 또한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창작 뮤지컬 시장이 더욱 침체돼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픈런 방식을 통해 보완, 수정되면 라이선스 뮤지컬과 견줄 수 있는 작품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며 "무조건적인 칭찬보다 건전한 비평과 격려를 해준다면 국내 창작 뮤지컬 시장도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정경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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