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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둠벙의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는 자연의 경고음이기도 합니다.
ⓒ 송성영

@BRI@찬바람을 밀어내고 따스한 기운을 몰고 오던 봄비가 갑자기 장마 비처럼 줄창 나게 내렸습니다. 졸졸거리던 도랑이 ‘콸콸꽐’ 소리 내며 쓸려갑니다. 그 다음날인 어제(3월 5일) 이른 새벽부터 갑작스럽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진달래꽃이라도 필 것만 같았던 앞산이 희끗희끗한 눈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도롱뇽 알을 품고 있는 둠벙에 살얼음이 얼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꽃샘추위입니다. 하지만 처마 끝에 고드름이 맺히고 풀렸던 땅이 꽝꽝 얼어버렸으니 꽃샘추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갑작스럽고 큰 기온 변화입니다. 꽃샘을 내는 게 아니고 거의 증오 수준입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기온 변화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겨울에도 작은 둠벙을 통해 심상치 않은 기온 변화를 접했습니다. 지난겨울 우리 집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만들었습니다. 굵은 철사 대신에 버려진 철제로 썰매 날을 만들고, 곧게 뻗은 나뭇가지 끝에 대가리를 잘라낸 못을 박아 꼬챙이를 만들었습니다.

▲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만들었습니다.
ⓒ 송성영
우리 집 주변에서 썰매 탈 곳은 딱 한 군데 뿐입니다. 밭 가장자리에 파놓은 둠벙입니다. 우리는 썰매를 옆에 끼고 예년처럼 작은 둠벙이 꽁꽁 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눈 뜨고 일어나 날씨가 엄청 춥다 싶으면 배꼽 아래 단전에 힘을 모아 둠벙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마다 둠벙은 온통 얼음이었습니다. 둠벙에 살그머니 발을 내딛어 봅니다. 하지만 둠벙은 비상시에 울리는 벨처럼 경고음을 냅니다.

“짜 자장~”

얼음 갈라지는 소리입니다. 마치 ‘더 이상 들어오지 마! 위험해!’ 라고 자지러지게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그 소리는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칠 때처럼 둠벙에 쩍쩍 갈라진 증표로 남겨집니다.

썰매를 끌고 둠벙에 들어갔다가 혼쭐이 난 우리 집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 밖으로 나와 둠벙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 썰매를 타러 둠벙에 들어갔다가 얼음이 갈라져 깜짝 놀래 밖으로 나온 인상이
ⓒ 송성영

“아빠, 새끼 붕어들은 잘 살고 있을까?”
“올 겨울은 별로 춥지도 않고 둠벙에 얼음이 꽝꽝 얼지 않았으니께 잘 살겠지.”

2년 전 늦여름, 인근 저수지에서 잡아온 늘씬한 토종 붕어 몇 마리를 둠벙에 풀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봄 우리는 둠벙 가득 몰려다니는 작은 치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송사리 떼인 줄로만 알았는데 채집을 해놓고 보니 붕어 치어들이었습니다.

▲ 예년에는 꽝꽝 얼었던 둠벙(2005년 겨울)
ⓒ 송성영

그해 겨울에만 해도 둠벙이 꽝꽝 얼었습니다. 둠벙 안으로 들어가 두 발로 굴러대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얼음이 두껍게 얼었습니다. 둠벙 안의 붕어가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꽝꽝 얼었습니다. 붕어들은 둠벙의 환경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 산란까지 했던 것입니다. 수많은 새끼 붕어들을 낳았던 것입니다.

처음에 새끼 붕어들은 수면 위에서 놀았습니다. 수십 마리가 떼 지어 다녔습니다. 아마 수백 마리는 됐을 것입니다. 장마가 끝날 무렵 치어들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살아남은 치어들은 수면 아래에서 놀았습니다. 손톱만한 몸집은 예전보다 좀 더 커졌지만 그 수는 줄어만 갔습니다.

▲ 붕어 치어들이 가득했던 2006년 여름 둠벙
ⓒ 송성영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아마 그 많던 붕어 치어들은 물장군(늪이나 연못 또는 하천의 고인 물에서 서식한다. 작은 물고기나 올챙이, 개구리 등 수생동물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잡아 체액을 빨아먹는다)들이나 장구애비(낫처럼 생긴 앞다리로 수서곤충이나 작은 물고기를 잡아서 체액을 빨아 먹는다. 체액을 빨아 먹힌 먹이는 속이 텅 빈 껍질만 남게 된다. 전갈의 모습과 함께 무시무시함을 닮아 '물속의 전갈'이라고도 불린다)에게 잡아먹혔을 것으로 보입니다. 둠벙 가득했던 올챙이들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었듯이 말입니다.

만약 둠벙 안에 붕어 치어나 올챙이를 먹고 사는 물장군과 장구애비와 같은 곤충들이 없다면 둠벙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둠벙 안은 온통 붕어들로 버글거리는 ‘붕어의 둠벙’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붕어들의 천국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붕어들의 개체수가 너무 많게 되면 오히려 붕어들에게는 해가 될 것 입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붕어들은 늘어나게 될 것이고 급기야 둠벙은 붕어들의 지옥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먹이가 부족하게 될 것이고 수초들이 사라져 산소 부족으로 작은 둠벙 안에는 뚱뚱 부어오른 붕어들의 시체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둠벙은 더 이상 생명의 보금자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온갖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는 둠벙은 소우주입니다. 지구를 축소 시켜 놓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둠벙 안의 생물들이 그러하듯 어느 한 개체의 세력이 커지면 지구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지금 지구가 그렇습니다. 인간의 세력이 너무나 커서, 욕심이 너무 많아서 지구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온난화 현상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우리의 작은 둠벙은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온 몸으로 보여줬습니다. 둠벙은 예년처럼 썰매를 탈수 있을 만큼 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예 둠벙 가장자리에 썰매를 대기시켜 놓고 거의 매일 같이 찾아갔지만 둠벙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겨울 방학 내내 둠벙은 우리에게 썰매를 태워주지 않고 수차례 경고음만 반복했습니다.

“짜 자장~”

둠벙의 얼음 갈라지는 소리는 자연에 함부로 다가오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음이면서 대재앙을 예고하는 온난화 현상에 대한 최후통첩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경고음을 무시하거나 아예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연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게 되면 그 소리는 잠언처럼 들려올 것이지만 자연을 쥐어짜서 좀 더 많이 먹고자 한다면 그 소리는 절대로 듣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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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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