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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의 샘 주변에 있는 허술하고 초라한 가게들의 풍경
ⓒ 이승철
"어, 저기 좀 보세요? 바닷가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네."
"정말 그렇군요. 몇 년 전에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인데…."

수에즈운하를 출발한 버스는 시나이반도의 사막길을 거침없이 달렸다. 도로도 괜찮은 편이었고 자동차가 많지 않아서 거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은 그냥 막막한 사막이 아니었다.

도로에서 10여 미터 떨어진 사막에는 홍해를 건넌 이곳 시나이지역에서도 도로를 따라 이어진 수도관 매설 흔적이 계속되고 있었다. 더군다나 가끔씩 멀리 또는 가까이 개발 중인 사막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저쪽 바닷가 좀 보세요? 저건 휴양시설 아닌가요?"

정말 그랬다. 홍해의 푸른 물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 바닷가에는 분명히 휴양시설처럼 보이는 구조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부근에는 아파트처럼 보이는 건물들도 보이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풍경도 보였다.

▲ 언덕위의 야자나무 풍경
ⓒ 이승철
"이집트 정부에서는 지금 사막을 개발하는데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도로 옆으로 매설된 수도관들이 앞으로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수도관을 통하여 공급되는 물은 나일강 물을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지하수를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사막에도 지하수가 상당히 풍부하게 흐르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막도 이제 죽은 땅이 아니네. 물만 공급하면 다시 살아나는 땅이잖아?"

광활한 사막 중에는 물만 공급해 주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옥한 토질을 가진 지역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런 지역에 물줄기를 이어주고 농사를 짓게 하면 죽었던 사막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자! 이제 곧 마라의 샘에 도착합니다."

가이드의 안내가 있은 잠시 후 버스는 여기저기 듬성듬성 야자나무가 서 있는 곳에 멈추어 섰다. 버스에서 내리자 어린이 몇 명이 우르르 몰려든다. 손에는 어설픈 목걸이 몇 개씩을 들고 있다.

▲ 쓴물이라는 뜻을 가진 마라의 샘, 온통 썩은 물이다
ⓒ 이승철
"원 달러! 원 달러!"

어린이들이지만 여자아이들은 머리와 얼굴에 히잡을 둘러쓰고 있다. 가이드의 눈을 피하여 누군가 아이들에게 1달러씩을 주자 잠시 후 나타난 다른 아이가 자기도 달라고 손을 내민다. 마라의 샘, 이곳은 성경에 지명과 사연이 나와 있는 곳이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출애굽기 15장 22~25절)

마라의 샘은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잠깐 동안에 달려온 길이지만 모세가 인솔하던 유대백성들은 3일간이나 걸어서 행군했다니 그 고초가 정말 대단했을 것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마실 물이 없었다면 그 고통이야 오죽했겠는가. '마라'라는 말의 뜻은 '쓴물'이라고 한다. 바다가 가까운 곳이니 틀림없이 바닷물이 스며들어 짠물이었을 것이다. 그 마라의 샘물은 주차장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 베드윈 어린이들, 가난하지만 결코 불행한 표정이 아니다
ⓒ 이승철
그러나 오랜 세월에 퇴락해버린 우물은 상당히 깊었지만 시커멓게 썩은 물이었다. 주변에는 띄엄띄엄 꽤 많은 야자나무들이 서 있었지만 모래바람에 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이 전혀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가 아예 땅 위에 드러누워 버린 모습이 모래사막에서의 고달픈 삶을 하소연이라도 하는 것 같다. 사막에서 야자나무들이 보이는 곳은 대개 오아시스인데 이곳에서는 맑은 물을 찾을 수가 없다.

모래 언덕 위에도 몇 그루의 나무들이 서 있었지만 그곳에도 맑은 물은 없었다. 다만 저 아래 홍해 바다의 푸른 물과 역시 파란 하늘이 맞닿아 있는 풍경이 그렇게 맑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일행들은 이곳저곳에서 야자나무와 푸른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마라의 샘 부근에는 마치 울타리에 허술한 진열대를 설치해놓은 것 같은 가게들이 일렬로 쭈욱 늘어서 있다. 대부분 조악한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들이다. 남자들은 대개 그런 가게들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여자들은 달랐다. 이 가게 저 가게를 들러 몇 개씩의 물건들을 사들고 나온다.

▲ 언덕에서 바라본 홍해와 맞닿아 있는 푸른하늘
ⓒ 이승철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엄마들의 모습도 보인다. 하나 같이 머리와 얼굴을 반쯤 가린 히잡을 둘러쓰고 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가게나 진열해놓고 파는 물건들을 보면 가난에 찌든 모습들이다. 그러나 모두 아름다운 얼굴인 여성들의 표정에서는 불행의 그늘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방인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과 실제 그들의 삶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여인들뿐만 아니라 "원 달러"를 외치면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아이들의 모습에서조차 결코 불행의 그늘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쓴물'이라는 이름의 마라의 샘과 베드윈 사람들의 가난한 가게와 어린이들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우리는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꾸로 서 있는 삼각형 모양의 척박한 땅. 시나이반도는 근세의 역사에서부터 지금까지 역사의 소용돌이 한 중심에 있던 땅이다.

이 땅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래 세계의 화약고라고 일컬어질 만큼 분쟁이 잦았던 곳이다. 1956년 나세르 대통령에 의하여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 이집트에 반발하여 일어난 수에즈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점령하였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돌려주었다.

▲ 언덕 위의 큰 나무 그늘과 그 아래 순례객들의 모습
ⓒ 이승철
그 후 1967년의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이 끝난 후에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73년 시나이반도 수복을 위해 일으킨 아랍연합군에 의해 '욤키프르 전쟁'으로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으나 결과는 중동연합군의 패배로 수복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인 1974부터 1975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병력 분리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연간 약 500만t의 석유를 생산하는 유전지대를 포함한 반도의 일부가 이집트 국토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 후 1977년 11월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과 1978년 9월의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선한 캠프데이비드 회담을 통해 이 시나이반도 전부를 다시 되돌려주게 되었다. 1979년 드디어 양국 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이스라엘은 점령지인 시나이반도에서 군대를 단계적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

▲ 산이 보이는 시나이사막 풍경
ⓒ 이승철
그러나 시나이반도가 완전한 이집트의 영토로 수복된 것은 1982년 4월이었다. 고대로부터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민족과 유대민족간의 끝없이 이어져 내려온 이해와 은원관계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이 땅은 또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중요 통상로이기도 했었다.

이 땅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육상 통로 일뿐만 아니라 지중해 저편에 있는 유럽 대륙이 홍해와 인도양을 거쳐 동양으로 갈 수 있는 해상 교통로의 교량역할을 하는 땅이기도 했다. 이런 지리적 조건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중요한 시기마다 크고 작은 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시나이반도를 가장 유명하게 한 역사적인 사건은 모세가 막강한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를 물리치고 유대민족을 이끌어낸 출애굽 사건일 것이다. 그 이후 40년 동안의 기나긴 광야생활. 이곳 시나이반도를 여행하는 동안 성경의 기록들을 확인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 마라의 샘가에서 필자
ⓒ 이승철
"지금 달리는 이 길은 '왕의대로'라고 합니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중요한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잠시 후에는 여러분을 따뜻하고 후끈후끈한 천연유황찜질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기대 하십시오. 그것도 공짜로 말입니다."

우리 일행들의 기대 속에 버스는 남쪽을 향해 정말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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