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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 명절을 맞이하여 전주에 있는 장인어른 댁과 광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머니를 찾아 뵀다.
주일 오후라 한산할 것 같았지만 서울에서 전주까지 6시간이나 넘게 걸렸다. 서하남 IC에서 길을 잘 못 들어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탔다가 다시금 광주로 빠져 중부고속도로를 탔는데 그 길이 막혀버렸던 것이다.
힘들게 찾아 왔는지 장인어른은 우리들을 보자마자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했다. 물론 장모님도 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들도 셋 씩이나 데리고 갔으니 너무나 기분 좋게 여겨주셨다. 장모님도 벌써부터 예쁜 때때옷도 사다 놓으셨는지 그것을 방에서 들고 나오셨다. 그렇게 그날 저녁은 온 가족들이 웃음꽃을 피우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일찍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세배를 올렸다. 물론 돌이 지나지 않은 막내 녀석은 빠졌다. 나와 아내 그리고 첫째 딸과 둘째 녀석이 모두 세배를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
"오냐. 민주랑 민웅이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여기 세배 돈."
"예. 고맙습니다."
흰 봉투에 든 세배 돈을 우리 집 식구들에게 모두 각각 주셨다. 딸아이도 좋아하고 둘째 녀석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벌써부터 돈맛을 알면 안 될 것을 아셨던지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5천원 짜리를 담아 하나씩 주셨던 것이다. 너무 고마웠다.
새해 인사를 끝으로 나와 아내는 첫째 딸아이를 데리고 광주로 향했다. 이미 차량들이 다 빠져나갔는지 그 길은 그야말로 아우토반이었다. 곧장 화순에 있는 전대병원에 들러 6층 병실을 향해 올라갔다.
"우리 삥아리 오네. 민주도 오냐?"
"엄마. 잘 있었어. 얼굴이 좋아보이네."
"조금 낫긴 허다만…."
"형수는?"
"응, 밖에 나갔는가 보제…."
"저기 형수 오네. 형수 고생이 많죠."
그곳에서 우리 식구들은 형수와 함께 엄마가 식사하는 모습도 지켜보고, 병실 아래에 있는 식당에서 형수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함께 밥을 먹으며 형수의 얼굴을 보니 얼굴이 반쪽이 된 듯 했다.
사실 어머니는 수술이 잘 되어 얼굴이 활짝 핀 듯 하지만 아직까지 대소변은 가누지 못하는 상태다. 그 까닭에 똥오줌을 받아내는 몫은 형수가 해 내고 있다. 아마도 극진한 사랑이지 않나 싶다.
엄마와 형수 사이에는 서로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울 엄마가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땅덩어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형수의 사랑 이외에는 그것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하룻밤도 지내지 못하고 곧장 오후 무렵에 위로 올라왔는데, 문뜩 딸아이가 여러 어르신들에게 했던 말 "난 할머니가 두 명이나 있어요"가 떠올랐다. 그것은 전주로 내려오는 명절 그 아침에 아내가 얘들에게 했던 말인데, 그것을 딸아이가 아침부터 자랑삼아서 여러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해 댔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말이 내 가슴에 콕 박혔던 것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이미 친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간 지 오래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셔서 명절 때에 내려가면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으니 그지없이 고마울 따름인데, 앞으로도 세 분 모두 오래도록 사셨으면 하는 그 바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