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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9일 떠나기 전 마당에 상을 펴고 빙 둘러앉아 떡국을 먹고 있는 모습
ⓒ 서미애
결혼 19년 동안 멀다는 이유로 명절 날 친정에 가본 것이 설과 추석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힙니다. 올해도 역시나 가려는 마음 전혀 없이 큰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제주도에 사는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미애야! 우리 오남매가 언제 다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겠노? 이번이 딱 그런 기회인데 너만 빠져서 섭섭하다. 내가 차비 10만원 보태줄 테니까 제사 지내고 내려 온나."

거리가 멀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늘 빠듯한 살림살이에 경비도 만만치 않고 또 특히나 설날은 아이들의 세배 돈까지 부담이 안 될 수가 없었지요.

남들처럼 명절 보너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요즘 경기가 더욱 안 좋은 택시 영업으로 중·고등학생인 두 아이를 키우기도 벅찬 상황이니까요. 꼭 언니가 차비를 보태주지 않더라도 저만 빼고 다 모인다는데 속으로는 무척 가고 싶었습니다.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남편과 시어머니께서 아이들도 봄 방학인데 돈 걱정 하지 말고 가서 며칠 놀다 오라며 등을 떠밀어 주셨습니다. 못 이기는 척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큰집을 나서 무작정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모든 차편은 매진이었고 고속열차에 입석이 남아 있었습니다.

동대구 역까지 해보아야 1시간 40분 걸리니 그쯤이야 서서갈 용기로 입석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동대구 역에서 청도까지는 부산가는 무궁화호로 환승을 하기로 했습니다.

기차도 환승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개찰구로 나올 필요 없이 12분을 기다려 환승을 하니 얼마나 편리한지 몰랐습니다. 청도 역에서 부산 시댁에 다녀오는 여동생네 가족을 만나 마중나온 남동생 차를 타고 친정집에 도착하니 도깨비 시장이 따로 없습니다.

집안은 북적대는 가족들로 그득 찼습니다. 엄마에게 세배를 드리고 저와 여동생 부부가 아이들 세배를 받는데 모두가 열명입니다. 대학생인 두 조카에게는 2만원씩,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구별 없이 모두 만원씩을 주었습니다. 엄마는 정 서운하면 오천 원씩만 주지 뭘 만원씩이나 주느냐고 옆에서 쿡쿡 찌르고 있습니다.

"엄마 괘안타.안 왔으면 몰라도 애들도 1년에 한 번있는 설인데......."

어느새 마당에는 두 개의 상이 펴지고 상 가운데 놓여진 두 개의 풍로 위에 고기가 구워지고 있습니다. 식구가 많으니 역할 분담도 척척입니다. 두 남동생은 숯불 위에 고기를 굽고, 제부는 담 밑에 쌓아둔 블록을 상 둘레로 나란히 놓고는 신문지 한 장씩을 깔아 앉을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날씨는 봄날씨처럼 따뜻하고….

"아니! 웬 소고기야? 얼마큼을 사서 이 식구가 다 구워먹는단 말이야?"
"제주도에서 언니가 직접 잡는 데서 사 왔대. 엄마 고아 드시라고 사골도 사오고."

역시나 언니는 맏이다운 몫을 합니다. 그때 마침 작은 외삼촌 가족이 엄마에게 인사를 왔습니다. 외삼촌과 외숙모 그리고 외사촌 동생까지 둘러앉으니 가족은 모두 스물한 명입니다. 고기는 구워 내기가 바쁘고….

"장모님 한 잔 받으세요. 외삼촌도 받으세요. 그래 자네도 한 잔 받게. 누나도 한 잔해. 언니야 우리도 한 잔 하자. 올케들도 수고했어. 한 잔 씩 받아."

서로 서로 챙겨주는 후한 술 인심이 공중으로 붕붕 떠다니고 있습니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노을은 취기 오른 얼굴을 더욱 붉게 채색하고 해와 달이 교대식을 마친 이후까지도 술잔의 공중부양은 묘기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취기가 거나하게 오른 제부가 노래방을 쏘겠다고 호기를 부리며 나섰습니다.

"자기 그렇게 객기 부려놓고 나중에 나보고 결제 맡기지 마."

여동생의 면박에는 아랑곳없습니다.

"자네가 모자라면 내가 보태 줄 테니 걱정 말게."

평소에는 점잔하신 외삼촌마저 취기로 부추김을 하시니 택시와 대리기사를 불러 결국엔 노래방으로 향했습니다. 사위와 장모가 파트너가 되어 사교춤을 추고,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는 외삼촌의 값비싼 트위스트 춤에다가 저마다 둘째라면 서러운 가족들의 '끼'가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댑니다. 이렇게 가족들이 다 모여 노래방에 간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 2월 19일 아버지 산소에 올라가는 가족들
ⓒ 서미애

▲ 2월 19일 달성서씨 현감공파의 가족 납골당
ⓒ 서미애
다음 날 아침, 대가족은 한 마을에 살고 계시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를 찾아가 세배를 드리고 아버지의 산소에 성묘를 갔습니다. 2년 전 가족 납골당을 만들어 아버지는 여덟 분의 윗 조상님들과 함께 그곳에 안치 되어 있는데 불효한 딸은 납골당에 모셔진 후 처음 성묘를 간 것이었습니다. 상석 하나 없던 초라한 아버지의 묘소였는데 잘 꾸며진 납골당에 모셔진 아버지를 뵈니 마음이 훈훈해 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 사이 엄마는 자식들에게 나눠 줄 음식들을 골고루 나눠 담고 계셨습니다. 땅 속에 꼭꼭 묻어 둔 김장김치를 나눠담고 전 소쿠리를 펼쳐놓은 채 똑같은 부피로 나누어 담고. 무말랭이·깻잎·콩잎김치도 같은 부피로 나누어 담았습니다. 고추누각·고추장·참깨·참기름·냉동실에 넣어둔 갈치와 옥돔까지….

▲ 2월 19일 땅속 깊이 묻어둔 김치를 봉지마다 담고 있는 엄마
ⓒ 서미애
"아이고 다리야. 다리야"하시면서도 다락에 올라가서 한 아름, 냉장고를 뒤져 또 한 묶음, 뒤뜰을 돌아가서 또 한 보퉁이를 꺼내오시니 마치 곳곳에 요술 상자를 숨겨 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도 못내 아쉬운 엄마는 차가 모퉁이를 돌아설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이렇게 다 모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추억을 안겨주었고 우리 오남매는 더욱 훈훈한 가족애를 가슴 깊이 느끼고 또 새기는 참으로 뜻 깊은 설을 보내고 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mbc라디오 여성시대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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