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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이었다. 저녁 식사 후인데 애비가 난데없이 평원이를 안고 들어왔다. 더구나 아이의 속옷가방까지 챙겨들고서였다. 마치 가출한 사람처럼 말이다. 평원이는 그 품에서 잠 자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할멈과 내가 의아하여 동시에 물었다. 애비는 아이를 내려놓으며 좀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얘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어요"

@BRI@입원?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어제만 해도 부산에 다녀오지 않았는가. 며느리는 가난한 우리 집안에 시집온 이후로 늘 바쁜 생활에 시달렸다. 시부모라고 해야 무능하기까지 하여 즈이들 살림에 아무것도 보탬이 되지 않았으니 더욱 힘들고 고단한 형편이다.

그런데도 목적한 바를 이루어보려고 동분서주, 대학원 공부로 직장 일로 서울이든 광주든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다. 게다가 별로 튼튼한 몸을 타고 났다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할멈은 은근히 걱정스러워하면서도 며느리의 강단을 믿어왔던 처지다. 그리고 젊은 사람 아니던가. 그런데 입원이라니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낮부터 별안간 산통이 왔는데…어쩔 수 없이 입원시켰어요. 평원이를 사흘만 여기 놔뒀으면 하구요"
"산통이라니?"

할멈이 기절이라도 할 듯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임신 20주째 들어선 사람이다. 다섯달이 아직 안된 몸이다.

애비 말에 의하면, 에미의 양수막에 균열이 생겨서 아기가 그 쪽으로 나오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이다. 26주는 돼야 아이를 받아 인큐베이터에라도 넣어서 기르기를 기대할 수 있으나 그 미만인 경우에는 곤란한 점이 있다고 한다. 하여 일단 아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조치하면서 기다려 보다가 사불여의하면 양수막을 꿰매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하더란다. 지금 그러한 시점에 있다는 것이다.

"오늘 밤이 고비인 것 같은데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내일 아침에 전화드릴께요."

애비는 오히려 늙은 부모를 위로한다. 그리고는 평원이를 안방 침대 가운데에 눕히고는 휭하니 나가버렸다. 내가 뒤따라 나가보려고 옷을 주워 입으려하자 할멈이 만류했다.

"지금 당신이 가서 뭘 어쩌려구요. 거기 걔 처가 식구들도 와 있는 모양이니 무슨 일이야 있겠어요? 내일 아침에 전화한다니 좀 기다려 봅시다" 하였다.

할멈은 평원이를 혼자 보기가 불안했던 것이다. 나는 그냥 주저앉았다. 두 사람은 평원이를 가운데 두고 물끄러미 들여다 보기만 했다. 그런데 전같으면 그냥 그대로 내일 아침까지 자야 할 평원이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더니 벌떡 일어서면서 제 애비를 찾는지 두리번 거린다.

애비가 보이지 않아서일까? 평원이는 갑자기 까아 하고 울기 시작했다. 할멈이 끌어안으려 하자 손을 내저어 거부하면서 더욱 크게 운다. 나까지 나서 안아보려했지만 그마저 뿌리친다.

녀석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진다.

"평원아!" "평원아!"

우리 내외가 안쓰럽게 부르며 갖은 부드러운 말로, 몸짓으로 달래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래 위층에 다 들릴 것 같아 더 신경도 쓰였다.

"얘가 전에 없이 왜 이러지?"

할멈이 침대에서 내려가며 안아볼려 했지만 할미 손이 닿으려 하면 주먹을 울러메고 달려들기까지 한다. 내가 그러면 좀 다를까 했지만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정녕 전에 없던 모습들이다. 할멈은 속이 상해서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한다.

"얘가 뭘 아나?"

한동안 그러다가 할멈이 업어주자 그 등에서 콜콜 잠이 드는 듯 싶었다. 할멈은 바로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잠이 드는가 싶었다. 우리 내외가 아이를 둘러싸고 앉아 한동안 천장을 보고 있는데 아이가 다시 낑낑거리며 일어났다. '평원아 자야지' 하며 할멈이 손을 내밀자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 싫어, 할아버지 싫어"

그 애가 일어난 자리를 보니 매트가 흥건히 젖어있었다. 아이의 내복을 보니 그것도 다 젖어있다. 오줌까지 싼 것이다. '이상하네...' 하면서 할멈이 부랴부랴 집에 여분으로 챙겨두고 있던 평원이의 내복을 꺼내 입히려 했지만 막무가내로 거부하며 공격적으로 나왔다.

어거지로 옷을 갈아입히고 다시 아이를 업으니 간신히 업힌다. 그렇게 또 잠시 잠이 들었다. 나는 평원이가 싸놓은 오줌자리에 타올을 덮어 깔고 누웠다. 잠이 올 리 없었다. 새벽 4시로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벌떡 일어났다.

"왜요?"
"아무래도 그냥 못있겠어. 잠깐 병원에 다녀올께"하고는 병원으로 달렸다.

병원의 다른 병동은 다 불이 꺼져있고 분만실 쪽에만 불여울이 보여 그리로 들어가니 여기저기서 진통의 신음소리들이 들려왔다. 한 곳을 기웃해보니 애비가 제 처를 보살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에미는 연신 신음소리을 토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밤새 저렇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아...으음...아버님 어디 앉으시게 하..."

그 와중에도 에미는 애비에게 시아버지 앉을 자리를 마련해드리라 하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무거워졌다. 에미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어떤 말도 해줄 능력이 없는 무력한 이 시애비였다.

내가 병원에서 돌아와 막 잠이 들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할멈이 받았다.

"... 응, 응, 그래... 너무 속상해 하지 마라. 내자식 안될려고 그런건데 뭘...에미나 잘 살펴라"

훌쩍거리는 할멈의 목소리엔 강한 울음이 넘치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기를 돌려서 낳았단다. 그런데....현대의술로도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하더란다.

평원이는 설잠인진 모르나 침대를 가로로 타고 식식 자고 있었다. 얼굴도 못본 제 동생을 보내느라 그렇게 고통스러웠 했던 밤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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