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립 5·18 민주 묘지 신묘역
국립 5·18 민주 묘지 신묘역 ⓒ 이기원
서슬 퍼런 5공화국 시절, 전남 지역 답사가 있었습니다. 역사가 전공이라 학기마다 지역별 답사가 있었습니다. 학점을 따야 하는 전공 필수 과목이었지요. 고대 유적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상적인 답사였습니다.

그 답사길에 남들이 다 잠든 깊은 밤중에 몇몇 학생들만 도둑고양이처럼 망월동 묘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전남대 학생의 도움을 받아 어둠을 헤치며 갔던 망월동 묘지,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묘지마다 죽어간 사람들의 핏빛 사연들이 적혀 있었지요. 그 사연들 읽어가면서 머리가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2007년 1월 다시 망월동 묘지를 찾았습니다. 이젠 국립 5·18 민주묘지라고 부릅니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차를 몰고 갔습니다. 이젠 막을 사람도 없습니다. 숨죽이며 도둑고양이처럼 찾을 이유도 없습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내로라하는 정치인들도 참배하는 성역화된 공간이 되었습니다.

구묘역 가는 길의 대자보
구묘역 가는 길의 대자보 ⓒ 이기원
성역화된 공간에 걸맞게 묘지(신묘역)도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죽어간 이들의 피어린 사연이 묘비석 뒷면에 보기 좋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 사연들을 읽을 때면 눈시울이 더워옵니다. 그래서 가끔은 시린 겨울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구묘역으로 가는 길에 대자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5·18 민주묘역을 방문한 이들의 느낌을 적어놓은 곳입니다. 이 대자보를 읽어가면서 역사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역사는 힘 있는 소수 사람들에 의해서만 씌어지는 게 아니라, 힘없는 다수에 의해 씌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구묘역에 갔습니다. 80년 5월 참혹하게 죽어간 광주의 넋들이 손수레에 청소차에 실려 이곳에 묻혔다고 합니다. 80년 이후 혹독했던 시절 제 몸을 불사르며 죽어간 넋, 의문사한 열사들의 넋이 이곳에 묻혔다고 합니다. 묘비마다 '세상을 바꾸자!'는 띠가 둘러 있습니다.

전두환 민박 기념비가 땅에 묻힌 유래
전두환 민박 기념비가 땅에 묻힌 유래 ⓒ 이기원
구묘역 입구에 묻힌 전두환 민박 기념비
구묘역 입구에 묻힌 전두환 민박 기념비 ⓒ 이기원
구묘역 입구에는 '전두환 민박 기념비'가 땅에 묻혀 있습니다. 1982년 전남 담양군 고서면에 방문했던 전두환 대통령 내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가 뽑혀져 이곳에 묻힌 것입니다. 땅에 묻힌 비를 보면, 힘 있는 자들의 오만이 후일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경남 합천 지방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 때문에 또다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새천년 생명의 숲'이란 공원의 이름을 전 전대통령의 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바꾸려 한답니다.

일해공원 명칭을 고집하는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론을 무시하고 만들어진 상징물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무리하게 특정인의 공덕을 미화하기 위해 세운 공덕비가 뭇 사람들의 돌팔매에 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잘못 세워진 공덕비를 향한 민중의 저항 의식이 비석치기로 되살아난 과거가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의 한 서린 반대를 외면하고 만든 상징물은 언젠가 힘없는 다수에 의해 형편없는 흉물이 되어 방치되곤 했던 과거 사례를 되돌아보길 바랍니다.

나주 궁삼면 항일농민운동 기념공원 탐관오리 공덕비 옮겨진 유래를 적은 비
나주 궁삼면 항일농민운동 기념공원 탐관오리 공덕비 옮겨진 유래를 적은 비 ⓒ 전국역사교사모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