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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룩소르 식당 앞 주차장 옆에서 그릇을 만드는 도공
ⓒ 이승철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목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원 달라"를 외친다. 기원전 몇 천 년의 청동기시대에 이루어 놓은 그들의 찬란한 문명을 접하고 나오는 길이어서 그런지 구걸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생뚱스럽다.

여왕의 장제전을 출발한 버스는 곧 야채밭과 사탕수수밭이 펼쳐진 평야지대로 들어섰다. 도로변은 이제 씨앗을 뿌리기 위해 갈아놓은 밭도 보이고 파랗게 자란 야채밭이 싱그러운 모습이다. 수천 년 동안 이집트인들을 먹여 살린 기름진 땅이다.

@BRI@"저렇게 찬란한 문화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 지금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요?"

모두가 품고 있는 의문을 누군가가 혼잣말처럼 툭 던진다.

"도로변 500미터 이내에는 사탕수수 재배를 못하게 합니다. 우거진 사탕수수밭이 테러범들의 은신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건 완전히 동문서답이다. 가난과 도로변에 사탕수수를 재배하지 못하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 나라는 1981년 10월, 사다트 전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무바라크(Mubarak) 현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거의 27년 동안 계엄령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20대들은 대부분 계엄령 중에 태어난 사람들이어서 계엄령이 무엇인지도 구별하지 못하지요."

▲ 빵굽는 여인
ⓒ 이승철
▲ 기름진 나일강변 농토 풍경
ⓒ 이승철
계엄령이라면 우리나라도 군사정권시절에 몇 번인가 경험했던 일이다.

"또 지난 1997년에는 이 룩소르에서 테러사건이 발생하여 외국인 58명이 희생당했는데 그때 그 테러범들이 은신하고 있던 곳이 바로 저런 사탕수수밭이었답니다."

"아하! 그랬었구나."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며 이해가 간다는 반응들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장기집권의 독재정권과 테러가 발생하는 사회적 불안을 안고 있는 이집트가 경제성장을 이룰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버스는 곧 나일강물을 끌어올려 농사에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도수로 개천 부근의 한 식당 앞에 있는 주차장에 멈춰 섰다. 그런데 한 개의 식당과 기념품 가게 한두 개가 자리 잡고 있는 이곳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차량 진출입을 통제하는 수동차단기가 설치되어 있고 군인들 몇이 지키고 있었다.

공무원 수가 전체 국민의 30%가 넘는다는 이집트는 군인과 경찰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군인이 경찰이고 경찰이 군인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원 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이 또 몰려든다. 우리 일행은 곧바로 제법 넓고 시설이 훌륭한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 야채밭 건너 사탕수수밭
ⓒ 이승철
▲ 현지식당 요리사
ⓒ 이승철
음식은 현지식단이었다. 일행들의 일부는 벌써 우리 음식이 그리워 고추장과 장아찌 등 우리 고유의 밑반찬을 꺼내 놓는다. 배식은 뷔페식이었다. 식성 좋은 나와 몇몇 일행들은 이것저것 색다른 음식을 잔뜩 담아다가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기가 좋은 음식은 식탁 옆 조리대에서 만들어주는 '짜파게티' 요리였다. 요리사는 옆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솜씨를 과시하기라도 하려는 듯 멋지고 날렵한 솜씨로 조리 기구를 움직이며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식당을 이용할 때마다 불편한 것은 물과 음료수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내놓는 물이 이 나라에선 따로 사서 마셔야 하는 메뉴에 포함되었다. 각종 음료수도 마찬가지였다. 커피나 각종 음료수는 1인분에 보통 1달러씩 추가로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음식들은 대체로 풍족하고 위생관리나 맛이 괜찮은 편이었다. 식당 안에는 우리 일행 외에도 서양사람 일가족 몇 명과 또 한 그룹의 우리나라 관광객, 그리고 일본인들 한 그룹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 음식맛이 매우 좋습니다
ⓒ 이승철
▲ 룩소르 거리풍경
ⓒ 이승철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자 주차장 주변에는 우리가 들어갈 때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주차장 옆에 도공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젊은 도공은 물레를 돌리며 붉은 진흙으로 조그마한 그릇들을 만들고 있었다.

또 그 옆 한쪽에서는 현지 여성 한 명이 호떡처럼 생긴 빵을 만들어 굽고 있었다. 이 여성은 머리에 예의 검은 히잡을 두르고 앉아 계란을 잘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이는 흙벽돌을 쌓아 만든 화덕 안에 장작불을 피우고 빵을 구워내는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자 자세까지 바로잡으며 좋은 사진을 찍으라는 시늉을 한다. 다 구운 빵을 꺼낼 때는 앞으로 내밀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 여성도 외국인관광객들에게 매우 익숙한 표정이었다.

▲ 룩소르 재래시장의 야경
ⓒ 이승철
▲ 재래시장의 옷가게
ⓒ 이승철

"야! 이놈 봐라, 내가 못 알아들을 줄 알고 함부로 욕을 하네."

그런데 바로 그때 도공 앞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 일행들에게 자신이 만든 그릇들을 사라고 권하던 도공이 우리 일행들에게 자기네 말로 심한 욕을 했던 모양이다. 설마 우리 일행들 중에 자기네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을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 도공이 만든 그릇들은 조잡한 수준이었을 뿐만 아니라 깨질 염려가 있는 그의 그릇을 이제 여행이 시작된 마당에 구입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도공은 자신의 그릇을 사지 않는다고 욕을 한 것이다.

곧 우리 일행의 현지가이드가 그들의 말로 도공을 혼내기 시작했다. 도공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얼굴이 질린다. 외국인들에게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욕 한마디 했다고 저렇게 놀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도공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곧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는 것 같았다.

그 도공이 그렇게 당황한 이유는 곧 밝혀졌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까 그 친구, 근처에 있던 경찰에게 신고하면 앞으로 한동안 장사도 못할 뿐만 아니라, 당장 경찰에게 그야말로 뒈지게 얻어맞습니다."

현지 가이드 이 선생의 말이었다. 국가재정수입 1순위가 관광수입인 이집트에서는 외국인들에게 불친절하거나 행패를 부리다가 경찰에게 적발되면 우선 호되게 얻어맞고 상당히 무거운 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 룩소르 농촌의 나일강물을 끌어올린 농수로
ⓒ 이승철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이며 수 천 년의 찬란한 오랜 역사를 가진 이집트, 그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조상들로 인하여 관광수입으로 사는 이 나라 사람들, 세계 최장의 나일강과 그 나일강 유역의 비옥한 농토에서 풍부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나라이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정치적인 이유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문제였다. 풀릴 것 같으면서도 쉽게 풀리지 않는 알쏭달쏭한 숙제를 가슴에 안은 채 우리들은 버스에 올랐다. 다음 코스는 이집트 고대문명이 이루어 놓은 정말 수수께끼 같은 거대한 석조건축물, 카르낙 신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서 시인이승철 을 검색하시면 
홈페이지 "시가있는오두막집"에서 다른 글과 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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