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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5일 파업에 들어간 <시사저널> 기자들이 직장폐쇄에 맞서 농성하고 있다. 지난해 6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그 뒤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였고, 최근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연이어 나오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고 있다. 김현미 기자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다. <편집자주>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금창태 사장 등 시사저널 경영진의 기자회견을 지켜 본 시사저널 노조원들이 사측의 직장폐쇄 조치 이후 임시 편집국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금 사장에 의해 삭제된 '삼성' 관련기사 1차 데스킹을 맡았던 장영희 기자가 "시사저널에서 '삼성'을 다룰 때마다 내부갈등을 빚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금창태 사장 등 시사저널 경영진의 기자회견을 지켜 본 시사저널 노조원들이 사측의 직장폐쇄 조치 이후 임시 편집국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금 사장에 의해 삭제된 '삼성' 관련기사 1차 데스킹을 맡았던 장영희 기자가 "시사저널에서 '삼성'을 다룰 때마다 내부갈등을 빚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 8일 <시사저널> 기자들을 만났습니다.

기자 회견장이 아닌 전국언론노조 회의실에 차려진 농성장에서 만났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듯이 지금 시사저널 기자들은 한 달 넘게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삼성 2인자의 문제를 지적한 기사를 기자와 편집국장도 모르는 사이에 사장이 일방적으로 인쇄소에서 들어낸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인쇄소에서 기사가 사라지다!'

70~80년대 군사독재정권 때에나 있었던, 그래서 민주화된 21세기에는 이미 사라진 일이라고 믿었던 기자들은 당연히 분노했고,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벌써 8개월째입니다.

저는 정당의 대변인과 부대변인, 청와대 국내언론 비서관으로 모두 7년 가까이 언론관계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 기자들을(특히 정치부 기자) 1000명 가까이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덤으로 가졌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사물과 인물을 평가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입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부대변인 초창기 시절(기자들 표현으로 '초짜 부대변인 때'), 정부와 당에서 아무리 좋은 일을 발표해도 기자들이 '이건 이런 문제가 있고, 저건 저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꼬집어대는 걸 지켜보면서 저는 밤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우리가 일을 잘못하는 게 아닌가, 이러다 우리(나라)가 망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지요. 그것이 기자와 언론의 속성이라는 것을. 만약 기자들이 '쫑알쫑알 꼬치꼬치' 묻고, 써대는 일을 그만두고 우리가 주는 대로 받아쓰기만 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기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기자들의 비평에 은근히 화가 날 때면 '너희가 우리를 평가하듯 우리도 너희들을 평가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위협해줍니다. 기사를 보면 기자의 의식과 정보의 수준을 알 수 있다는 협박이지요.

<시사저널> 기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모 대변인 선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마디로 '액물'들입니다. 미워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결코 무시할 수도 없는 골치 아픈 존재들이라는 얘깁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처럼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보는가 했더니, 난데없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대형폭탄을(그들은 '특종'이라고 부릅니다) 커버스토리로 만들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는 '주특기'를 보유하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폭탄 맞은 대변인실은 기사의 정체를 확인하랴, 밀려드는 타 회사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랴, 후속기사 체크하랴, 며칠 동안 정신이 속 빠지는 난리를 치게 됩니다. 그때마다 '이것들 다시 기자실에 나타나기만 해봐라, 내가 앞으로 니들 질문에 대답해주면 사람이 아니다.' 얼마나 다짐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본 <시사저널> 기자는 이런 모습이었다

사장의 일방적인 삼성 관련 기사 삭제 이후 기자들의 파업과 사측의 직장폐쇄 등으로 시사저널의 상황이 악화된 가운데 언론노조는 2일 오전 삼성본관앞에서 '<자본권력> 삼성의 언론통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철흥 시사저널 분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장의 일방적인 삼성 관련 기사 삭제 이후 기자들의 파업과 사측의 직장폐쇄 등으로 시사저널의 상황이 악화된 가운데 언론노조는 2일 오전 삼성본관앞에서 '<자본권력> 삼성의 언론통제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철흥 시사저널 분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형폭탄(특종?)을 터뜨린 후 며칠 동안 문제 기자는 기자실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신 지금은 '시사저널 원상복구'에 온몸을 던지고 있는 서명숙 전 편집국장이 전화를 걸어와 어울리지 않는 은근한 목소리로 '김부 미안해, 우리가 너희 미워서 그런 거 아니잖아. 어떻게 기자가 알고 안 쓰니? 내가 술 한 잔 살게.' 구슬리면, 값싼 내 맹세는 <시사저널> 기자들과의 한잔 소주에 녹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시사저널의 수많은 특종들은 시간이 지나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고, 정치의 흐름을 바꿔놓기도 했습니다.

밉지만 미워할 수 없고, 속은 쓰리지만 '다들 숨은 한 칼(?)이 있다'고 평가해 줄 수밖에 없는 기자들. 그래서 <시사저널>은 작지만 힘 있는 시사 주간지였습니다.

그 기자들이 거리로 밀려나고, 편집위원과 자유기고가들이 만든 요상한 물체가 <시사저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기자들은 취재하고 기사 쓰고, 편집위원은 편집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사장님은 회사가 원만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경영에 전념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다. 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시사저널> 사태의 발단이 된 삼성 또한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삼성이 언론을 대하는 방식의 문제에 대해서는 'PD수첩'에서 충분히 확인한 만큼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삼년 공정거래법과 금산법을 놓고 국회 전체가 떠들썩한 싸움판이 되었을 때 삼성이 어떻게 의원들에게 접근하고 로비하는지 직접 겪어본 당사자로서 삼성이 어떻게 언론을 다루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 최고 권력은 대통령도 여당도 군부도 아닌, 삼성입니다. 정치권력은 5년마다 바뀌지만 삼성의 권력은 대를 이어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국민도 알고 언론도 알고 삼성도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체입니다.

정치권력의 언론관행이 바뀌었듯이 대한민국 최고권력 삼성의 언론관행도 바뀌어야 합니다. 정치검열은 사라졌지만, 경제검열은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은 삼성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수많은 비판과 특종보도가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게 발전했습니다. 그렇듯 삼성에 대한 비판보도가 삼성을 무너지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 그 누구도 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이 무너지거나 작아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삼성에 대한 작은 비판기사 하나 들어내려다가 벌어진 사회적 갈등의 원책임에 대해 그리고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삼성은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시사저널> 정기구독을 끊은 지 두 달째입니다. 때로는 놀라움으로, 때로는 깊은 생각으로 끌어주던 '진짜 <시사저널>'이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액물' 친구들 잘 버텨주게나. 힘내라, 진짜 시사저널!

#김현미#열린우리당#릴레이#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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