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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한 석회석 바위산 밑에 수천년간 서있는 핫셉수트 장제전
ⓒ 이승철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감춰진 공동묘지였던 왕가의 계곡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목 오른편 바위산자락에 거대한 신전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핫셉수트 장제전이다. 우리 일행들은 이 신전을 둘러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도 예의 자동차가 끄는 작은 무궤도 열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이 신전은 핫셉수트 여왕이 부왕인 투트모스1세와 자신의 부활을 위하여 스스로 건축한 유일한 신전이다. 이 신전은 다이르알바리(Deir el Bahri) 석회암절벽 바로 아래에 3개 단으로 건축된 거대한 석조건축물이었다.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여왕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 신전의 주인공이며 제18왕조시대의 걸출한 여걸이던 핫셉수트 여왕이다. 그녀는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었지만 스스로 여자이기를 거부하고 남장을 한 여왕으로 유명하다.

▲ 장제전 전면 열주에 나란히 서있는 파라오의 신상들
ⓒ 이승철
회화나 벽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여왕은 남성처럼 수염을 붙이고 남성 행세를 하였으며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부정하고 신의 자식이라고 주장하여, 스스로 신이 되고 싶었던 어쩌면 과대망상증에 빠진 여왕이기도 했다.

그녀는 또 투트모스1세의 딸로 구약성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를 양아들로 삼아 기른 공주로 알려진 여인이다. 모세의 출애굽기는 람세스라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람세스2세 시대의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연대표를 살펴보면 투트모세2세 시대라는 것이 새롭게 대두되는 학설이다.

그녀는 남편 투트모스2세가 죽은 후 그의 후궁에게서 낳은 아들 투트모스3세가 겨우 1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하다가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여왕은 왕좌에 있는 동안 왕권과 함께 신권까지 휘두르며 상, 하 이집트의 양대 주권을 의미하는 2중의 관을 쓴 절대 군주로 군림하기도 했다.

이 장제전은 자신이 왕위에 있는 동안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전시목적의 건축물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그녀의 절대 권력도 20여년이 지난 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투트모스3세가 성년이 돼 계모이자 백모이며 한 때 왕권을 찬탈했던 여왕을 몰아내고 권력을 되찾은 후에 여왕은 증오와 복수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 핫셉수트 여왕상과 부서진 장제전 오른쪽 부분
ⓒ 이승철

▲ 제단 석축과 장제전에서 바라본 장제전 앞쪽풍경
ⓒ 이승철
그녀가 왕위에 있는 동안 투트모스3세는 항상 생명의 위협과 함께 왕위를 영원히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는 핫셉수트 여왕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그녀가 만든 기념물에 새겨진 핫셉수트란 이름을 모조리 깎아 버렸다.

핫셉수트 장제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그녀가 왕위에 있는 동안 인근 나라들과 통상에 주력했다는 흔적이라며 커다란 향료나무가 서 있었던 자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녀는 왕위에 있는 동안 향료를 직접 생산하여 통상에 임했다고 전한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기묘한 형상의 석회암 바위산 아래 하나의 건축물로 보이지만 장제전은 3단의 제단 형식으로 되어 있다. 맨 아래에 있는 제단 입구 계단 옆에는 독수리 머리모양을 한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이 돌기둥은 이 신전을 지키는 수호신인 셈이다.

위로 올라가면 중앙 제단 위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기둥들이 서있다. 이 기둥들은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는데 가운데 기둥에는 오시리스 상이 붙어 있다.

▲ 장제전 열주 사이에서 사진 찍는 관광객 부부
ⓒ 이승철

▲ 장제전 입구에 있는 여왕이 통상하던 향료나무가 있던 곳 표지(나무 밑둥이 남아 있다)
ⓒ 이승철
핫셉수트여왕 자신과 부왕 그리고 남편의 상들이다. 장제전의 중앙은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지만 좌우 양쪽은 대부분 무너져 내리고 기둥과 오시리스 상들도 깨지고 부셔졌다.

장제전 중앙 벽에는 아직도 선명한 채색벽화가 남아 있는데 향료를 생산해 통상하는 것을 나타낸 그림과 여왕이 얼굴에 수염을 붙인 그림이 있어 이채롭다.

"저 신전 뒤편에 솟아 있는 바위 좀 보세요. 마치 곰처럼 보이지 않으세요?"

일행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신전 뒤편 석회암 바위산은 정말 보는 각도에 따라 기묘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어 여왕의 장제전을 더욱 신비경으로 이끌고 있다.

장제전 안과 넓은 제단 광장은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신전도 유명한 곳이어서 수백 명에 이를 것 같은 많은 관광객들로 붐빈다. 신전을 둘러보고 내려오다가 우리일행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주변에 있던 중국청년 한 명이 자신도 끼워 달라고 한다.

▲ 장제전 벽에 있는 벽화
ⓒ 이승철

▲ 장제전 제단입구 독수리상 기둥 옆에 선 필자
ⓒ 이승철
중국청년의 행동이 우스꽝스럽고 귀여워 우리들 자리에 끼워주자 주변에 서있던 서양청년들까지 몰려든다. 모두 재미있어 하며 그들을 받아주었다. 그러자 10여명의 각국 청년들이 너도나도 달려든다. 그들 때문에 우리일행의 기념사진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뒤섞인 사진이 되고 말았다.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길 오른편으로는 부서지고 흩어진 유적의 흔적들이 널려 있다. 그 유적들 가운데 성문처럼 보이는 커다란 구조물 한 개가 건재하다. 이 문이 바로 제11왕조 몬투호텝(Montjuhoteph)왕의 장제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부근의 핫셉수트 장제전과 함께 이곳 사람들이 성스러운 곳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지명이 다이르알바리(Deir el Bahri)인데 이 말은 '북쪽사원' '성스러운 곳'이라는 뜻이란다. 이곳은 고대 이집트의 수도였던 테베의 북쪽 끝 지역에 해당하는 곳이다.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목에는 왼편 불그스레한 바위산 아래로 허름한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가게 앞을 걸어 나오는 관광객들을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 몬투호텝 3세의 장제전 입구
ⓒ 이승철
뱀처럼 조각한 지팡이며 우리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 모자들도 보인다. 아랍특유의 문양으로 염색한 스카프며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본떠 만든 조각품들 그리고 기괴한 모양의 마스크(탈)를 파는 가게들도 있었다.

"싸요! 싸요! 빠리빠리 오세요?"
이게 무슨 소린가? 깜짝 놀라 돌아보니 아랍상인 한 명이 우리들이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우리말로 호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어, 저 사람들 웃기네, 우리말을 하잖아?"
그런데 그 정도로 끝이 아니었다.
"항개에 이천언! 항개에 이천언! 싸게 팝니다. 빨리빨리 오세요?"
이 아랍상인은 좀 더 정확한 발음으로 우리 화폐 단위까지 말하고 있었다.

"어라! 저 사람 언제 우리말을 배웠지? 저 정도까지 하는데 한 개 팔아줘야지."
마음씨 착한 여성 일행 한 명이 2달러를 주고 하얀 면 스카프 한 개를 사는 것이었다. 그 일행이 스카프를 사서 손에 들고 나오자 바로 옆 가게 상인이 부럽다는 듯 바라보다가 큰 소리로 떠든다.

"꼬레아! 넘버원!, 또 오세요? 마니마니 사세요."
이게 웬 말인가? 그들은 어느새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한국인들에게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 한국과 한국인들이 최고라니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근처를 걸어 나오던 다른 외국인들은 머쓱한 표정이다.

▲ "항개에 이천언"을 외치던 상인과 가게풍경
ⓒ 이승철
그러나 이런 기분 좋은 일이 여행 중에 여러 곳에서 보고 들어야 할 것들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들 상인들 때문에 좋아진 기분은 나일강 근처로 나와 먹은 점심 맛에도 영향을 끼쳤는지 현지 식단인데도 모두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음 코스인 카르낙 신전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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