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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시집 <자전거 도둑>.
신현정 시집 <자전거 도둑>. ⓒ 애지
세상은 내가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현재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또는 그러한 상황을 훌쩍 넘어서는 것일 수도 있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이 그의 삶의 상황에서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도 달라진다. 박재삼의 시에서처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가 유달리 전해오는 것일 수도 있고, 신석정의 시에서처럼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푸른 별을 바라'보며 기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난 그렇게 듣는다/기러기들이 감나무 위를 날아가니까/기럭기럭 우는구나 하고 듣고/억새밭 위를 날아가니까 억새억새 우는구나 하고 듣고/또 달을 지나가니까 달빛달빛 우는구나 하고 듣는다
- '기러기 울음' 중에서


시적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결국 역으로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러기'의 울음소리는 수시로 바뀐다. 그러나 실제로 바뀌고 있는 것은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자기 자신이다. '난 그렇게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를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사는 양에 대한 긍정적 시선을 발견하게 한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사니까 이렇게 보이고 저 사람은 저렇게 사니까 저렇게 보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에 따라 대상을 보려 하지 않는다. '감나무 위를 나는' 삶도 있고 '억새밭 위를 나는' 삶도 있으며 '달을 지나가는' 삶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달콤한 휴식' 같은 것을 시의 측면에서 체험한다. 때로는 역광 아래에서 또 때로는 마당을 쓸다가 마치 쉼터에 잠시 앉아 쉬어가는 사람처럼 시를 맛본다.

@BRI@마당에 긴 줄 해서 널어놓은 빨래 걷다가/쪼그리고 앉아 담배 피운다/고추잠자리 날아온다/바지랑대 끝에 고추잠자리 앉을락말락 한다/뒤돌아보지 않아도 등 뒤에 무엇이 남실대는지 안다/역광으로 피우는 담배 그 참 맛있다.
- '역광(逆光)' 중에서


이 빗자루 손에 잡아보는 거 얼마만이냐/여기 땅집으로 이사와 마당을 쓸고 또 쓸고 한다/얼마만이냐/땅에 숨은 분홍 쓸어보는 거 얼마만이냐/마당에 물 한 대야 확 뿌려보는 거 얼마만이냐/땅 놀래켜보는 거 얼마만이냐
- '담에 빗자루 기대며' 중에서


어찌 보면 가장 완벽한 '휴식'은 세상 밖에서 취하는 '휴식'일지도 모르겠다. '키를 가린 갈대밭에서 손을 높이 올려' 허공에 내민 그 손이 바로 '휴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손이 밝아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시인의 시 '훠이훠이'에서는 '나, 세상 밖에까지 가서는/손을 훠이훠이 내젓다가 오고 싶었다'라고 노래한다.

시 '지렁이가 따라올라오다'에는 '생명'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있다. 한 편의 상황적 이야기 같은 시이다. 왠지 무겁다(?) 생각하며 흙 한 삽 떠올렸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안에 지렁이가 있었고 결국 구덩이를 파려다가 도루 내려놓는다는 내용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제각각의 삶에 대한 사랑이기도 할 것이다. '지렁이'가 등장하는 또 한 편의 시를 보면 이 말이 틀린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이 개였다, 흐렸다/아하, 개이기는 개이려나 보다/비 온 뒤 조금 흐린 날/어디서 지렁이 나와 기고 있는/땅 한 줄 향기롭다.
- '개인 날' 전문


끝으로 이 시집의 특징 한 가지를 말해두자면 행간을 모두 띄워놓고 비워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 행간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책이름: 자전거 도둑(애지시선4) / 지은이: 신현정 / 펴낸날: 2005년 9월 12일 / 펴낸곳: 애지 / 책값: 7000원


자전거 도둑

신현정 지음, 애지(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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