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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상규, '장례 행렬, 대구 근교'
ⓒ 눈빛
한국 사진의 역사는 여전히 불모지의 페이지로 남아있다. 그러기에 그 공백을 분주하게 메우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은 반가울 따름이다. 특히나 현재 한국 사진계 전반에 흐르고 있는 회화적이고 심미적인 경향 속에서 ‘현재’를 포착하고 ‘진실’을 탐구하는 리얼리즘 사진의 계보를 재정립하고자 힘쓰고 있는 민족사진가협회(회장 김영수, 이하 민사협)의 노력은 분명 한국사진사의 한 페이지를 채울 수 있는 날카로운 펜임에 틀림없다.

▲ <한국사진의 재발견>(민족사진가협회 엮음)
ⓒ 눈빛
이번에 발간된 <한국사진의 재발견>(눈빛)은 지난 2002년에 출간된 <한국사진과 리얼리즘 : 1950~60년대의 사진가들>의 후속작업이다. <한국사진과 리얼리즘>에 실린 작가 대부분이 한국 사진계에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반면 <한국사진의 재발견>에 실린 작가들은 민사협이 그야말로 ‘재발견’, 혹은 ‘재발굴’ 한 지역의 원로 작가들이다.

일반적으로 리얼리즘 사진이란 작가가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현실의 삶 또는 삶의 현실을 포착한 사진을 말한다. 하지만 1950~1960년대 리얼리즘 사진은 이러한 ‘드러냄’에 외부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최민 한예종 영상원 교수가 '스트레이트 포토, 리얼리즘, 다큐멘터리'라는 비평적 서문에서 밝혔듯 분단과 한국전쟁 이후의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사진들은 유형·무형의 사상적 탄압과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당시에는 ‘리얼리즘’이라는 용어 자체도 섣불리 사용할 수 없었으며, 사회의 어두운 측면이나 생활의 고통스런 측면을 정면으로 보여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작가들은 원치 않는 자기검열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고, 결과적으로 궁핍과 가난까지도 온정주의적 터치를 차용해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집에 실린 작품들 역시 “나이브하고 향토주의적이며 소박한 ‘트리비얼리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최민, 위의 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유행하던 살롱 사진의 진부함에 맞선 참신한 방식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 강해룡, '천막 투표소'
ⓒ 눈빛
▲ 이해문, '서울'
ⓒ 눈빛
이번 작품집에는 원로 사진가 강상규, 강해룡, 김범삼, 김수군, 김수열, 김운기, 리영달, 신건이, 이준무, 이해문의 작품이 실려있다. 말이 끄는 달구지에 관을 싣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장례행렬(강상규, '장례 행렬, 대구 근교')이나 지금은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금호극장 앞 천막투표소 전경(강해룡, '천막 투표소'), 천변에서 줄지어 빨래를 하고 있는 아낙들(김운기, '빨래터'), 빌딩은커녕 초가집과 천막만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는 서울의 전경(이해문, '서울') 등 하나같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네거티브 필름이나 오리지널 프린트 등 당시의 작업들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 않은 가운데 이번 작품집이 나오기까지 정범태 사진작가와 정인숙 사진작가(민사협 사무국장)의 열정이 크게 작용했다. 최민 교수는 “우선 그들의 존재 자체를 다시 확인하고 그들이 했던 작업의 윤곽을 짚어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예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만이라도 얼나마 반가운 일인가”라고 말한다. 최 교수의 말처럼 이번 작품집 발간을 통해 한국사진사에서 잊혀질 뻔한 혹은 버려질 뻔한 작가들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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