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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의 강준만 교수는 신문 칼럼과 인터뷰 등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지 꽤 오래되었다. 2006년에 강준만 교수 이름으로 나온 책만도 13권이나 된다. 실로 엄청난 글쓰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그가 <한국인을 위한 교양 사전> <나의 정치학 사전> <세계문화 사전>에 이어 또 한 권의 '강준만 표' 사전을 세상에 내놓았다(이 책도 2006년 12월에 발간되었으니, 앞에서 말한 13권에 포함된다).

여기서 강준만 교수의 '사전'은 어떤 의미인가? 사전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단어를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고 그것에 대하여 해설한 책"이다. 그런데 거기에 또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1) 사전(辭典)은 단어의 의미·품사·용법·어원·표기법 등을 해설한 책이고, 2) 사전(事典)은 사상(事象)의 체계적 분석·기술에 의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다."

전자의 사전은 영어로 'dictionary, lexicon'이고, 후자의 사전은 'encyclopedia'라 할 수 있다. encyclopedia는 흔히 백과사전이라고 부른다. '백과사전'은 "학문·예술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 걸친 사항을 사전 형식으로 분류·배열하여 해설해 놓은 책"이다.

@BRI@결국 <한국생활문화사전>은 한국의 생활문화를 강준만 교수 나름대로 백과사전식으로 정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강준만 교수는 한국의 생활문화라는 주제를 인간커뮤니케이션 문화, 신체·정신 문화, 의식주 문화, 놀이·유흥 문화, 한국인 코드1, 한국인 코드2, 조직·집단 문화로 분류하고, 그것을 다시 각 장마다 10개씩, 총 70개의 항목으로 배열하여 해설해놓고 있다.

강준만 교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대담론과 사회과학의 과잉' 때문에 일상적인 삶을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하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내용들, 예를 들면 미니스커트, 라면, 찜질방, 러브호텔, 룸살롱, 성매매특별법, 대마초 등과 같은 이슈들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파헤치고 있다.

그런데, 강준만 교수가 이런 이슈들에 대해 우리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주는 방식은 매우 자유분방하다.

"왜 우리는 생활을 기록하지 않는가?"라는 저자의 머리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강준만 교수는 70개의 관련 주제에 대해 학술서적은 물론이고,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각종 자료를 모으고 정리했다.

이런 정리는 '라면'에서는 라면의 역사를 살펴보고, '찜질방'에서는 유럽의 목욕 문화와 한국의 목욕 문화를 비교하고, '나르시시즘'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는 식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관련 주제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부분도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논의의 전개가 기발하게 전개되는 부분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름'과 관련해서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시작해 한국 정당들의 이름 바꾸기를 비판하고, '첫인상'에서는 <블링크 : 첫 2초의 힘>에서 시작해 한국 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를 우리나라에서의 첫인상의 중요성에 대한 '가설'까지 연결한다. 또 '얼굴'에서는 에릭 에릭슨의 '정체성 위기'에서 시작한 논의가 대중 스타에 대한 '쌩얼 열풍'의 원인에 대한 진단에 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아울러 지극히 논리적으로 전개되던 논의도 어떤 대목에서는 감상적으로 흐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김치'에서는 "김장철엔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게 하나 있다. 그건 '김치 속'을 충분히 남겨 두는 것이다. '김치 속'이 김을 만나면 환상적인 음식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냥 구은 김에 밥을 쫙 깔아놓고 그 위에 김치 속을 올려놓은 뒤 둘둘 말아먹으면 '으악' 소리가 나올 만큼 맛이 있다. 하루 세끼 내내, 열흘 내내 그렇게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는다. 김치가 민족혼이 아니라면 무엇이 민족혼이랴."(210쪽)


다른 한편,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소의 날카로운 비판처럼, 저자의 평소 논지가 잘 드러나는 부분들도 많이 눈에 뜨인다.

예를 들어, '러브호텔'에서는 러브호텔이 서양의 고전 건축물을 흉내 내는 듯한 모습을 보고 '키치의 제국'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한 후, 이내 정치로 그 화살을 돌려 '키치의 정치학'을 이야기한다.

"남의 영역엔 수입된 서구의 잣대를 들이대고, 나의 영역엔 토착·전통·관행의 잣대를 쓰는 것, 이게 바로 키치의 정치학이다. 서구의 잣대는 서구에서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국산 잣대도 원래 그런 건 아니라는 사실은 무시된다."(329쪽)

'홍수 민주주의'에서는 한탕주의가 미덕일 수 있었던 초고속성장의 단계는 지났으니, 차분하게 내실을 다져가야 한다고 충고한다(저자는 미국은 전형적인 한탕주의 국가였다고 말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우리말로 옮기면 '미국식 한탕주의'가 적당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강준만 교수는 이 책에 대한 바람을 이렇게 적고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위해 지불한 비용과 시간에 상응하는 실용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나는 그걸로 대만족이다."

그런데 우리가 백과사전을 찾는 경우는, 무언가 알고 싶은 것이 있어 그 부분을 찾아보기 위함이다.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며 읽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런 점에서, 강준만 교수의 바람대로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서는 인터넷 시대에 부응하는 형식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기존 4권의 사전과 앞으로 나올 또 다른 사전들(강준만 교수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엄청난 양의 주제어를 제시해놓고 있다)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한국생활문화사전 - 왜 우리는 생활을 기록하지 않는가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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