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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공감> 겉표지
<천 개의 공감> 겉표지 ⓒ 한겨레출판
<사람풍경>을 통해서 김형경은 독특한 이력을 추가했다. 소설가로서는 이색적으로 '심리'를 이야기했던 것이다. 물론 그때의 그녀는 아마추어였다. 하지만 다른 아마추어들과는 달랐다. 성실했고, 또한 열정적이었다. 그렇기에 다들 이익을 만들어준다는 심리에 집착하고 있을 때 그런 책을 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런 그녀가 이번에는 자신의 내면에서 벗어나 타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천 개의 공감>에서 '자기 알기', '가족 관계', '성과 사랑', '관계 맺기' 등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름의 분석을 해준 것이다.

물론 그녀는 여전히 아마추어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아마추어들과 다르다. 정신분석의 힘을 믿으며, 그것이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에 그러하다. 그렇기에 이 책이 나르시시즘과 열등감은 물론 자신의 삶에서 실천해야 할 것들을 타인에게 충고하려는 투사 방어기제의 산물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숨지 않고 앞으로 나선 것이리라.

정신분석 치료란 무엇일까? '정신'이라는 용어의 잘못된 뉘앙스로 인해 사람들은 일단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김형경은 그것이 약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피하고 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다지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적 욕망과 공격성, 그곳에서 파생되는 분노와 불안 같은 것들을 자신에 맞게 보살피고 처리하게 해줌으로써 인간의 정신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최초의 연금술사는 '엄마'... 두 번째 연금술인 정신분석은 주도적·자율적

@BRI@책의 첫 글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싶어요"라는 고민에 정신분석을 '연금술'이라고 비유한 것도 그런 이유다.

김형경은 최초의 연금술사는 '엄마'라고 말한다. 엄마의 무한한 사랑으로 아기의 정신이 특정한 모양으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정신분석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엄마에 의한 것은 수동적인 것이지만, 두 번째 연금술인 정신분석은 주도적이고 자율적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 치료에 대한 생각을 바꿔주는 명쾌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천 개의 공감>에서 그녀는 연금술을 알려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가령 여자 상사가 무례하고 간섭이 심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상담자에게 김형경은 유년기의 생존법을 버리라고 말한다. 상대방을 강자라고 생각하면서 별것 아닌 일에 피해의식을 느낄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옳고 모든 잘못은 상사에게 있다는 식의 분열 방어기제 등을 말하며 그것을 버리라고 말한다. 감정이 아닌 이성과 합리를 바탕으로 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당부도 잊고 않고 있다.

김형경은 남편이 무계획적이고 게으른 것 때문에 고민이 많다는 상담자에게는 환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내면의 환상에 젖어, 자신의 입장에서만 판단하면서 그것에 상대방이 맞지 않을 때 속상해 하고 화를 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김형경은 남편이 쉬는 날에 소파에서 꼼짝도 안 하는 것을 불만스럽게 볼 것이 아니라 '만성우울증'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다. 단순히 남편이 가사 분담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를 떠나서 남편 역시 나름대로 심리적인 문제가 심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치료가 필요한 심각한 것인데 상담자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결코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리라.

<천 개의 공감>은 대개 이런 식으로 구성돼 있다. 고민은 소소한 것들처럼 보이지만, 누구나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들이다. 이에 대해 김형경은 정신분석학의 용어들로 설명하고 있지만, 어려워할 필요는 아니다. 본질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고민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기에 답변은 단순히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 답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누군가를 미워했던 마음, 이런저런 이유로 괴로워하던 것들을 의외로 '쉽게' 해결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더불어 그런 과정을 통해 정신분석 치료에 대한 신뢰를 주며 더욱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용기도 주고 있다.

분명 김형경은 아마추어, 하지만 프로도 쉽게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다

분명히 김형경은 아마추어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녀가 직접 치료를 받아본 경험이 있고, 그 분야의 책을 아무리 읽었다 한들 아마추어라는 딱지를 떼기 어렵다. 하지만 프로도 쉽게 할 수 없는 것을 그녀는 <천 개의 공감>에서 해내고 있다.

그것은 문제를 즉시 해결해준다는 과장광고에서 벗어나, 정신분석을 통해서 장기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줬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무게감은 묵직하기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천 개의 공감>은 당장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장기적으로 그 문제를 직시하고 풀어갈 수 있는 답을 찾게 해주는 교두보로써 제 몫을 톡톡히 해낸 것이리라.

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사람풍경(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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