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하자 하니 별 소리가 다 나온다. 그 중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말은 가히 '개그적'이다. 나쁜 대통령이라니. 참 세상 좋아졌다. 언제 대통령을 대놓고 나쁜 대통령이라고 해본 적 있었을까.

오래 전 박근혜 전 대표의 부친께서 대통령을 하던 시절엔 '나쁜 대통령'이라 했다간 국가원수 모독죄나 국가보안법으로 구치소 신세를 졌을 것이다.

과거 '민주'나 '자유'라는 말만 해도 잡혀가던 시절에 비하면 세월 많이 좋아졌다. 그런 말 해도 가만히 놔두는 걸 보면 노무현 대통령도 세상 많이 변화시켰다.

그야말로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는 요즘이다. 예전 박정희라는 사람이 대통령을 할 때 '표현의 자유'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고초를 겪었던 일이 자꾸만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옥 가고 죽어 가며 세상 바꾼 이들도 정작 '표현의 자유'를 아직도 날름 누리지 못하는 세상에 전직 대통령의 따님께선 '표현의 자유'를 너무 잘 누린다. 그것도 복이다. 그런 세상 거저먹는 것도 타고난 운이다.

@BRI@노무현 대통령은 어찌 보면 '나쁜 대통령'일 수도 있다. 모든 이를 잘 살게 해준다고 하고서 못 사는 사람들 그냥 둔 점도 그렇고, 개혁한다면서 칼 뽑더니 마무리 못한 점도 그렇고, 언론 폭력과 맞서 싸운다더니 슬그머니 꼬리 내린 점도 '나쁜 대통령'의 범주에 든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지지리도 힘들게 사는 서민들이 했을 때 정당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하는 건 어딘가 어색하다. 어울리지 않는다. 손석춘 칼럼니스트가 잘 쓰는 표현처럼 박 전 대표의 말은 '생게망게'하다. 눈꺼풀만 감았다 떠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이 아른아른한 시절 아니던가. 먼 과거도 아니다.

육영수 여사의 죽음으로 눈물을 뚝뚝 흘렸던 우리 어머니도 이젠 그쯤은 안다. 그러니 '나쁜 대통령'이란 말은 자격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 이 땅의 힘없고 가난한 민중 아니면 그 말 할 자격 없다.

신동엽 시인이 바라던 대통령을 만나보고 싶다

세상이 바뀌어도 내가 바라는 대통령은 나오지 않는다. 신동엽 시인은 이미 40여 년 전에 이런 대통령을 바랐다. 반세기가 되어도 신동엽 시인이 바라는 대통령은 나오지 않았다. 신동엽 시인이 바라는 대통령은 내가 바라는 대통령이기도 하다. 신동엽 시인의 시를 보자.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위에 장자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신동엽 '산문시' 전문)

멋지다. 이런 대통령이 나온다면 함께 술 한 잔 나누고 싶다. 시인의 집을 찾아가는 대통령을 따라가 술 심부름이라도 하고 싶다. 올 연말 대선 때 이런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가 있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선거 운동할 용의도 있다.

과연 우리에게 신동엽 시인이 바라는 대통령은 없는 것일까. 왜 우리에겐 늘 '나쁜 대통령'만 있어야 하는 건지 그게 궁금하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