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동녘
<아리랑>은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님 웨일즈가 김산을 만나게 된 것 자체가 어떤 운명이 아닐까. 그냥 묻힐 뻔 했던 혁명가가 님 웨일즈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김산의 삶도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지만 님 웨일즈의 업적도 주목할 만하다.

님 웨일즈는 신문 기자로 당시 중국에 와서 사회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혁명가들의 생애를 자서전으로 만들었는데 자신이 만난 대략 25명의 혁명가 가운데 김산은 단연 돋보이는 여러 품성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자신은 모든 것에 패배했지만,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승리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김산이 1905년이라는 민족적 슬픔으로 가득찬 시기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아마도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현대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이루지 않았을까. 그는 기실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그처럼 성숙할 수 있다니 경이로울 따름이다.

나는 이따금씩 옌안에 있는 그 옹색한 방안에서 꾸밈없고 조용하게 자신의 신상 이야기를 해주던 김산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이나 영국의 지식인 중에 철학적 객관성을 가지고 자기의 혹독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던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고 생각해 본다.

김산은 우리 시대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고, 가장 추악하고, 가장 혼란스러운 대변동 속으로 내던져진 한 명의 민감한 지식인이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상주의적인 시인이요, 작가였다. 그는 아무런 환상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냉소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했지만 또한 변화와 진보를 확신하였다. (48쪽)


님 웨일즈에 의하면 김산에게 ‘고통과 패배는 꿈을 없애버리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사상이 한층 깊은 의미를 지니고 타오르도록 만들어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님 웨일즈는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다가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이름으로 많은 도서가 대출되고 있어서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고 그는 바로 김산이었다. 님 웨일즈는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김산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한참동안 연락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김산이 찾아왔다.

통역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미 영문으로 된 책을 많이 읽은 김산은 문법에 맞는 회화를 구사하지는 않았지만 님 웨일즈와의 의사소통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김산은 님 웨일즈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1905년 3월 10일 김산은 평양 교외의 차산리라는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라면서 동족들이 일본 순사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을 보고 자라며 혁명가의 꿈을 키웠다. 소년 시절부터 영웅에 대한 존경심이 남달랐던 김산은 독립군에 가담해서 왜놈들을 혼내주겠다는 결의를 하곤 했다.

형의 구둣가게에서 일하며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얼마 후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하며 대학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당시 조선에는 훌륭한 대학이 없어서 조선학생 대부분은 일본에 가서 고등교육을 받고 싶어했다고 한다.

@BRI@일본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도쿄제대에 응시할 준비를 하는 가운데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고 학생 1000명을 포함하여 이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6000명이 살해되었다. 중국인도 600명 이상 피살되는 대학살이 일어났다. 그 이후 많은 한국 학생들은 더 이상 일본으로 유학을 오지 않았으며 김산도 소련에서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계속할 생각으로 일본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

김산은 중학교 시절부터 우상이었던 톨스토이를 떠나 마르크스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동료 김충창에 의해 자연스레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김산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공산당에 가담하여 일본과 맞서 싸웠다.

그러다 일본군에게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고 풀려났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풀려난 게 이상하다는 듯 괴소문을 퍼뜨렸다. 일본 스파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오명을 쓴 채 그가 키운 중국공산당의 보안기관에 의해 처형당하고 만다.

일본과 맞서 싸우다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하고 모진 한파와 굶주림, 모진 고문 끝에 얻은 결핵 같은 것들은 오히려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하나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그는 진정 영웅이었다. 어느 누가 강요한 적 없지만 오로지 조국의 독립만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서도 연애의 희생물이 되지 않겠다는 말을 되뇌던 혁명가의 모습에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아픔으로 굴곡진 역사를 되새겨보는 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말 그대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혁명가 김산의 이야기는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도 힘겨워 하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줄 것이다. 리영희 선생의 경험처럼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 책은 두고두고 많은 이들에게 읽힐 고전이 될 것이다.

아리랑 (리커버 특별판)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동녘(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과 영화, 음악을 좋아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