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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은 바닷속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진기한 경험이 큰 즐거움이다.
아쿠아리움은 바닷속을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진기한 경험이 큰 즐거움이다. ⓒ 유신준
아침을 마치고 짐을 싸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노리코씨네 몫으로 담가둔 김치를 소포장으로 나누는데 15kg 스티로폼박스 4개가 꽉 찬다. 거기다가 아내가 준비해 둔 밑반찬과 고춧가루 등의 꾸러미도 걱정스런 크기다. 건너올 때 사토시 트렁크가 이삿짐수준이었는데 김치 뭉치에 비하면 그건 짐도 아니다.

@BRI@고민끝에 B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가까운 사람 좋다는 게 뭔가. 이럴 때 덕 좀 보자. 고맙게도 선뜻 함께 가겠다고 나서준다.

마침 B의 본가에서 김장을 하는 날이라 거기도 잠시 방문했다. 김장철 풍경도 옛날과 달라 요즘은 김치를 사먹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B의 본가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김장을 담그는 훈훈한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세 동서가 함께 모여 김장을 담그는 모습을 사토시가 카메라에 담는다. 노리코씨는 김장을 해서 일년내내 먹는다는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김치는 그냥 먹고 싶을 때 구입해서 먹는 마트 제품일 뿐이니.

아직도 이런 전통이 남아있다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눈치다. 정겨운 김장 풍경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다시 느껴보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일요일이라서 고속도로가 정체될 것 같아 출발을 서두르기로 했다. 분주한 틈이라 점심은 집에서 대충 때웠다. 사람들은 B의 차에 태워 앞세우고, 내 차에는 짐을 싣고 사토시를 태웠다. 김치 상자와 함께 차 안에 짐을 쌓아놓으니 꽉 찬다. 차에 실었으니 어쨌든 서울까지는 갈 것이고 공항에서 일이 또 걱정이다. 내용물이 김치라서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나.

준비를 끝낸 2대의 차량이 출발했다. 며칠간 묵었던 곳을 떠나는 사토시는 어떤 감회가 있을까. 차 안에서 그에게 기억에 남는 일이 뭔가 물었다. 음식도 맛있고 풍경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게 돼서 기뻤단다. 꼭 집어 이야기하지 않지만 B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면서 이곳에 다시 오려면 한국어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한다.

혹여 놓칠세라 조심조심 B의 차를 따라가는데 차창 너머로 보이는 앞차풍경이 가관이다. 손짓이 난무하는 보디랭귀지의 천국.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차 안의 분위기가 물씬 전해온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는 동안 이야길 들어보니 서툰 영어와 짧은 일본어로 서로 소통하는 것이 더 재미있단다.

아쿠아리움과 찜질방 문화 순례

소통의 즐거움이라. 아는 사람들끼리니 거리낄 것도 없을 것이고 핵심에 닿을 듯 말 듯 소통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다. 그런 재미가 없었다면 4시간 반 넘게 걸린 휴일 고속도로가 무척 따분했을 것이다. 다국적언어를 통한 즐거움으로 서울길이 훨씬 짧아진 듯하다.

테마별로 많은 볼거리가 있다. 모두 어린 아이라도 된 듯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테마별로 많은 볼거리가 있다. 모두 어린 아이라도 된 듯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유신준
이미 어둑해진 서울에 도착해 코엑스에 들렀다. 아쿠아리움이라는 곳은 나도 처음이다. 휴일이라서 그런지 입구에 관람객이 제법 많이 밀렸다. 입장권을 끊을 때는 꽤 비싼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안을 둘러보니 그게 아니다. 제법 비싼 값어치를 하는 곳이다.

전시장 코스가 세분되어있고 테마별로 볼거리가 많다. 바다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고자 다양한 수조와 생태환경에 공을 들인 노력도 놀랍다. 무엇보다 바닷속을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경험이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모두 어린아이라도 된 듯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코엑스 통로를 걷고 있는데, 앞서가던 사토시가 뜬금없이 서울아가씨들이 예쁘다는 말을 한다. 내가 소개해 줄 테니 한 사람 골라보라고 농담을 했더니 수줍게 웃는다. 순진하긴…. 코엑스 시식코너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그동안 한국의 대표 음식 칼국수를 먹어보지 못해 섭섭했는데 이곳에서 그 경험까지 마쳐 버렸다.

저녁을 먹기 위해 코엑스 통로를 걸었다. 사토시가 뜬금없이 서울아가씨들이 예쁘단다.
저녁을 먹기 위해 코엑스 통로를 걸었다. 사토시가 뜬금없이 서울아가씨들이 예쁘단다. ⓒ 유신준
남산을 가볼까 했으나 모두 피곤한 기색이다. 시간이 아깝다고 욕심을 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 멀리서 남산타워 불빛만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고 숙소로 향했다.

오늘 숙소는 비장의 카드 '찜질방'이다. 호텔은 심심하니 재미있는 곳에 데려가겠다며 내가 앞장섰다. 아무리 일본에 찜질방이 없다지만 땅만 파면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오는 온천의 나라 사람들에게 찜질방 자랑이라니.

함께 간 곳은 서울역 근처의 S찜질방. 넓은 면적의 4층 건물 전체를 찜질방 시설로 사용하고 있는 대규모 시설이다. 언젠가 서울에 볼일이 있어 상경할 때 기차 옆 자리에 앉았던 분에게 소개받은 곳이다. 서울에 올 때마다 이용하게 되어 몇 년째 단골이 되었다.

부대시설도 만만치 않다. 식당, 스넥 코너에다가 별도 수면실은 물론 영화관, 헬스장 PC방 등을 모두 갖추고 있는 위락시설이다. 호텔보다 불편한 점도 더러 있겠지만 그 불편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알뜰한 재미가 모여 있는 곳이다.

사토시는 게임을 해보겠다며 B와 PC방으로 갔다. 아내는 노리코씨와 사라지고….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좁혀지지 않는 감정의 공간은 혼자 넘어야 할 산

우츠노미야씨에게서 몇 차례 전화가 왔다. '모시모시'. 휴대폰 폴더를 열면 바로 일본어가 튀어나온다. 일본에 전화할 때는 대개 집 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휴대전화로 국제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잘 몰랐다. 처음에 그의 전화를 직접 휴대폰으로 받고 나서 깜짝 놀랐다. 좋은 세상이다.

온천의 나라 일본에는 찜질방이 없다. 찜찔방이 그들에게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을까.
온천의 나라 일본에는 찜질방이 없다. 찜찔방이 그들에게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을까. ⓒ 유신준
이곳 일이 궁금하기도 하고 가족을 맡겨 놓았다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단다. 서로 알고 지낸 지 한두 해도 아니고, 그 미안함이 좀 가실 법도 한데 여전하다. 그러지 말라 해도 가까울수록 더 예의를 지켜야 하는 법이라나. 문화 차이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의 어긋남.

그가 일본사람이고 내가 한국사람인 이상 절대로 메워지지 않을 공간이다. 핏속을 흐르는 유전자에 새겨진 '감정의 기본 값'이 서로 다른 걸 어쩌겠는가. 처음에는 미묘하게 어긋나는 감정들이 좀 섭섭했었다. 가까워지면 서로 허물없어지는 것이 친밀함의 표현인데….

지금도 아쉬움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그건 내가 혼자서 넘어야 할 산이다.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사귐의 기본 아니던가.

내 것만 주장하면 소통되지 않는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아야 국경을 넘는 인연의 문이 조금씩 열린다. 그런 배려들이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오해에 흔들리지 않을 든든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덧붙이는 글 | 지난 11월 22일부터 27일까지 충남지역을 방문한 일본 구마모토현의 노리코씨와 아들 사토시군의 한국 여행일정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기사는 또한 지난 10월 4일부터 한달 동안 연재한 '부부가 함께 떠난 규슈 여행기(1∼15)'의 후속기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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