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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술독에 빠진 남편의 속을 달래주는 콩비지탕.
술독에 빠진 남편의 속을 달래주는 콩비지탕. ⓒ 김혜원

"아이구 죽겠네. 속 아프고 입도 깔깔하고..."

@BRI@"죽긴 뭘 죽어. 신나지. 아주 신나셨던데 뭘 그래. 당신 정말 그렇게 마시다 일 낸다. 나이를 생각해야지 당신이 지금 이십대야 삼십대야."
"잔소리 좀 그만하고 뭐 먹을 것 좀 줘봐. 오늘도 또 있는데 아주 죽겠다."

미운 분(?)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던가요. 연일 새벽 가까운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갈짓자 걸음으로 들어와서 술 냄새 풍기고 천장이 들썩거릴 정도로 코까지 골아가면서 잠이 든 남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꿀밤이라도 한대 먹이고 싶을 정도로 속이 상하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다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믿을 수는 없지만) 하는 일이라니 마음넓은 아내가 참아줄 수밖에요.

돼지등뼈를 담가 핏물을 우려냅니다
돼지등뼈를 담가 핏물을 우려냅니다 ⓒ 김혜원
술을 잘 못하는 남편은 아주 나쁜 술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술을 먹기 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빈 속에 독한 술과 자극성 있는 안주들을 먹는 것도 몸에 좋지 않은데 만취하게 되면 못 볼꼴(뭔가 보여주는)까지 보이곤 하니 속이 좋을 리 없습니다. 이렇게 연말을 보내고 나면 연초에는 반드시 병이 납니다. 위는 위대로 장은 장대로 심지어는 위산이 역류하면서 식도까지 상해서 한동안은 먹지도 못하고 고생을 하는 것이지요.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남편이 병이 나면 힘든 건 역시 아내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밉고 또 미워도 알아서 속을 달래 내보낼 수밖에요.

콩은 예로부터 오곡중의 하나이며 '밭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할 만큼 맛과 영양이 풍부합니다. 특히 콩을 갈아서 만든 비지는 소화와 흡수도 좋고 과음으로 인한 단백질 부족을 효과적으로 보충할 수 있는 식품이지요.

등뼈를 삶은 후 갈은 콩을 넣으면 콩비지탕이 됩니다
등뼈를 삶은 후 갈은 콩을 넣으면 콩비지탕이 됩니다 ⓒ 김혜원
가락시장등 대형시장에 가면 돼지등뼈를 구할 수 있습니다. 감자탕의 재료로도 애용되는 돼지등뼈는 다른 부산물에 비해 값이 저렴합니다. 돼지 한 마리에서 나오는 등뼈 전체를 한 벌이라고 하는데 한번에 많은 양을 끓여 두고 먹기 위해 세벌을 만원에 구입했습니다.

비지의 참맛은 좋은 콩에서 나오는데 유전자 조작이 가해지지 않은 순수 토종콩을 미리 사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돼지뼈에 생강과 마늘 소금을 약간 넣고 삶고 콩은 미리 불려 껍질을 제거하고 삶은 뒤 곱게 갈아 둡니다.

돼지뼈가 충분히 삶아지면 씹는 맛을 풍부하게 낼 수 있도록 양배추를 잘게 채 썰어 넣고 야채와 고기들이 충분히 익을 때 쯤 갈아 둔 콩비지를 살짝 얹어서 끓어 주면 됩니다.

가족이 많아 커다란 솥 한가득 콩비지탕을 끓였답니다
가족이 많아 커다란 솥 한가득 콩비지탕을 끓였답니다 ⓒ 김혜원
양배추와 돼지뼈 만을 넣고 끓인 비지에 갖은 양념을 한 양념장을 얹어서 먹으면 고소하고 개운한 콩비지탕이 되구요, 식성에 따라서 충분히 볶은 신김치 위에 살짝 얹으면 구수하고 얼큰한 김치비지찌게가 된답니다.

콩요리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도 비지찌게는 인기랍니다. 돼지뼈에 붙어있는 살코기를 발라먹는 재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콩비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거든요.

아침에도 술이 깨지 않아 식탁에 앉아서도 술 냄새를 퐁퐁 풍기는 남편에게 콩비지 탕을 한그릇 떠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니 양심은 있는지 실없는 소리를 합니다.

"구수하고 좋다. 뱃속이 든든해지는 것 같아. 오늘이 마지막이야. 하루만 참아 달라구. 비지찌게 진짜 죽이는데. 역시 내 마누라가 최고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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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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