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피아노 책을 보며 엉망진창 계이름을 나에게 가르쳐 주는 아들.
피아노 책을 보며 엉망진창 계이름을 나에게 가르쳐 주는 아들. ⓒ 이선희

나는 소나티네 책을 구입하긴 했지만 한동안 칠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우리집에 들른 그녀에게 책을 보여 주었다. 그녀란 내가 명곡집을 못 칠 거라고 말했던 그녀다.

그녀왈 "아니! 소나티네 샀어? 당신은 피아노 배우는 단계를 몽땅 무시하네."

그러면서도 도움이 될 거라며 책에 쳐야 할 순서를 표시해 주고 갔다. 사실 내가 단계를 무시하고자 해서 그랬겠는가? 그냥 단계라는 어떤 것인지, 어떻게 밟아야 하는 것인지 몰랐을 뿐이다.

@BRI@나는 소나티네 책을 소설을 읽듯이 천천히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었다. 그리고 그녀가 표시해준 쉽다는 소나티네 악보를 펼쳤다. 사실 앞부분 소나티네 오른손 멜로디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맨 처음 나오는 소나티네에 나름대로 코드를 만들어 써 넣었다. 그리고 쳐보았다. 수월히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드를 포기하고 악보에 나오는 왼손을 지켜가며 쳐 보았다. 형편없었다. 나는 낮은 음자리표가 너무 낯설었다.

한동안 나는 좀 슬퍼졌다. 정말' 내가 낮은 음자리표는 보지 못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오기가 생겼다. 아무리 어려워도 홀로 피아노를 배울 때만큼 어려우랴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피아노를 독학하면서 한 번도 재미없다고 생각한 일어 없다. 항상 재미있었다.

어찌할까? 이 고개를 어찌하면 넘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든 생각이 낮은 음자리표 악보를 자주 보기로 한 것이다. 자주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좋아질 것 같았다. 자꾸 보면 정들고 정들면 재미있게 마련이라는 것은 싸이라는 가수를 좋아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코드가 적혀 있는 책에도 왼손반주가 악보로 나오기 때문에 낮은 음자리표를 자주 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때맞춰 딸이 홀로 하는 계이름 공부도 낮은 음자리표 계이름 쓰기였다. 딸의 계이름 공부를 봐주면서 나도 톡톡히 이득을 보았다. 딸의 계이름 공부만 챙겨줬는데도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낮은음자리표의 계이름을 일주일 전보다는 훨씬 수월하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낮은 음자리표를 익히자 다시 소나티네에 도전했다. 나름대로 낮은 음자리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나티네 한 악장을 치는데는 오랜시간이 걸렸다. 느낌엔 5분이내에 끝나야 할 소나티네 한 악장이 30분은 걸린 것 같았다.

한 번 더 쳐 보았다. 시간이 조금 단축되었다. 다시 또 쳐 보았다. 바로 전에 쳤을 때보다 빨리 칠 수 있었다. 이렇게 며칠을 연습하자, 그런대로 들을만하게(?) 소나티네 한 악장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나티네가 내게는 별 흥미도, 성취감도 주지 못했다. 배워야할 코드와 반주법에 얼마나 많은데, 내가 여기에 쏟을 시간이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소나티네보다 초우가, 잊혀진 계절이 더치고 싶은 곡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소나티네 책을 뒤로 미루고, 반주법과 명곡집을 다시 잡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치는 것이 내 피아노 배우기의 목표였고, 나는 아직 그 목표를 달성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엔 지금 나처럼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책 좀 추천해 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익혔던 책을 알려주고, 새로운 책도 추천한다. 새로운 책에는 내가 익혔던 책에는 없는 것이 있을 때가 많다. 그럴때면 공부의 끝은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피아노를 책을 스승삼아 배운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대부분 피아노를 잘 치셨던 분이나 아직도 잘 치는 분들이다. 그 분들이 걱정해 주셨던 것은 대부분 자세다. 피아노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걱정해 주시던 분들이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 대부분 신기해 하신다.

"손모양 예쁘고, 자세 좋다"는 말씀들을 해주신다. 사실 나는 자세도 책에서 배웠다. 책에는 친절하게도 사진이나 일러스트로 좋은 자세를 가르쳐준다. 나는 책에서 본 대로 허리를 펴고 둥근 손모양을 유지하며 치려고 노력했다. 사실 허리를 굽히고 피아노를 치면 펴고 치는 것보다 허리가 아프고, 둥근 손모양이 아니면 연습을 할 때 자주 틀리고 힘이 든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책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자세를 잡게 되었다.

책을 통해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좋은지, 레슨을 받는 것이 좋은지 그걸 말해달라면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그것은 개개이 처한 사정에 따라 기질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이 독학외에 다른 것을 선택하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배웠을 뿐이다. 그러나 배우면서 나는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한창 피아노를 연습할 때 이웃들은 내게 물었다.
"집에 박혀서 뭐해?"
나는 대부분 피아노를 쳤고, 때로는 몇주간 피아노책 외의 독서를 접기조차 했다.

지금도 나는 피아노 앞에 앉는 것이 재미있고, 피아노 책을 보는 것이 즐겁다. 배움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진정한 배움은 고진감래가 아니라 감진감래라는 것을 알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