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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의 순교 협박에 대하여

▲ 지난 16일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 열린 사학법개악 규탄대회.
ⓒ 하재근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사학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투쟁에 나섰다. 급기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이광선 총회장과 사립학교연합회 조용기 회장 등 종교계 인사들이 "순교를 각오한 거룩한 투쟁에 나선다"며 집단 삭발식을 치르기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마저도 사학개혁의 후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어떻게 해서 '사학개혁저지 투쟁'이 이 땅의 기독교계 지도자들에게는 순교를 각오할 만큼 거룩한 성전이 되었는가? 기독교에서 순교는 자신들의 믿음, 즉 하나님과 예수를 위해 죽는 것을 말한다.

@BRI@이 땅의 사학이 재단의 사적이익추구의 도구나 사설 영지로 전락했다는 것은 만인이 다 아는 일이다. 무릇 보편 종교란 특정한 개인, 특수한 집단만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 전체, 인류 전체의 공공선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 아닌가.

그런데 우리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국가공동체 전체를 위해 있어야 할 공교육의 학교를 사유하고 독점하려 한다. 공공 영역에서 공공선을 실현해야 할 학교를 독차지하면서 사설 영지 수호에만 매달리는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제 순교라는 말로 공동체를 협박하고 있다.

'순교'는 종교적 차원에서는 믿음을 위해 죽는 것이지만, 정치적 차원에서는 공공선을 위해 죽는다는 의미가 있다. 만약 누군가가 자기 자식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빌면서 죽었다면 아무도 그 죽음을 일컬어 순교라고 하지 않는다. 순교라는 말은 이렇게 사적 욕망, 오직 특정한 개인에게만 그 이익이 귀속되는 사태와는 반대로 개인의 안위와 욕심을 뛰어넘는 공공선의 함의를 내포하고 있어 숭고한 뜻을 지닌다.

베트남전 당시 제국주의 세력의 베트남인 학살에 맞서 분신자살한 스님의 모습이 국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것이 바로 그러한 '순교'적 의미의 저항이었기 때문이다. 순교라는 말이 특별히 거룩한 의미까지 갖는 것은 초월적인, 무사무욕한, 오직 정신성만 있는 그 어떤 것을 위하여 물질적 존재로서의 모든 것인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인간성의 위대함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존경받는 보편 종교 지도자들의 순교 발언은 정치적인 무게가 상당하다.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이라는 이념을 상징하는 그들이 생물학적인 생명을 버린다고 할 정도면 이전투구를 벌이던 정치집단 누구도 옷깃을 여미고 그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공공선에 맞서 사설왕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다고 한다. 기독교라는 보편 종교의 이념이 대한민국에서 코미디 같은 양상으로 전복되고 있다. 최고 종교지도자들의 '순교 각오'라는 말이 협박은 협박이 돼 참을 수 없을 만큼 천박한 3류 코미디인 이유다.

박종순 한기총 대표회장은 "개정사학법은 1200만 성도를 괴롭히는 법"이라며 "선교와 교회는 지키고 사수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학재단의 이익을 선교, 교회 자체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립학교가 사설학원이 아닌 엄연한 공교육 학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자식을 보내야 했던 국민들의 한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끝없이 자신을 비워가면서, 또 사적 욕망을 버려가면서, 정신성과 공공선에 헌신함으로써 사회적 존경에 값하는 것이 종교지도자다. 그런데 이 땅의 한기총 대표는 거꾸로 공공선이라는 가치를 사학재단의 이익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있다. 정말로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과 종교를 저버리는 행위는 기독교 지도자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부조리극의 무대가 되려 하는가

▲ 올 12월 국회 앞에서 진행된 사학법개악 저지 텐트 농성.
ⓒ 이철재
기독교 지도자들과 더불어 수구신문, 한나라당 등이 가장 격렬하게 반발하는 사학개혁이 바로 '개방형 이사제'다. 그들은 1차적으로는 개방형 이사제 자체를 없애려 한다. 이사회를 독점해야 기득권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개방형 이사제를 없애는 것이 여의치 않자 한나라당이 그동안 취해온 전술은 '등'자를 통해 개방형 이사제의 원래 취지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 열린우리당이 내부적으로 '등'자를 사실상 수용하는 쪽으로 논의를 진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개방형 이사 추천권한을 그 실체도 없는 학부모회나 동창회 '등'에도 주는 쪽으로 후퇴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개정사학법상 이사 추천권한을 가지고 있는 학교운영위원회(아래 학운위)도 절대 공공선을 추구하는 기구라고 보기 어렵다. 학교의 민주화를 가져오리라고 기대했던 학운위가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그 학운위에 '등'자까지 붙여 재단, 교장 세력에 우호적인 부유한 학부모들이나 보수적인 동창회가 이사를 추천하게 되면 개방형 이사제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개정사학법의 역사적 의의를 엄중히 되새겨야 한다. 아무도 개정사학법이 사학개혁의 완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출발일 뿐이다. 그런데 종교사학이나 수구 기득권 세력들은 전체 이사의 4분의 1에 불과한 개방형 이사로 인해 학교를 좌익이 접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는 원내 1당인 열린우리당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누구의 힘이 더 센가로 사학개혁 문제를 생각하는 것 같다. 정당은 공공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힘센 편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올 7월부터 시행된 개정사학법은 여전히 사학재단의 저항에 부닥쳐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시행일 직전에 마치 사학개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동일학원은 자신들의 비리를 고발한 교사들을 해직시키기도 했다.

이젠 제대로 시행도 못해 보고 개정 1년 만에 도로 후퇴가 거의 기정사실처럼 굳어지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하재근 기자는 '학벌없는 사회' 사무처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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