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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라도 내리는지 아침부터 하늘은 잔뜩 찌뿌린 채 울고 있는 알람이 무색할만치 방안을 어둠의 정적에서 놓아주지를 않고 있다. '오늘도 장사 못 가겠네.' 게슴츠레하게 떠지는 눈과는 달리 머릿속에서는 입력된 프로그램처럼 이 생각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BRI@하지만 오늘만은 여느날과는 조금은 다른 묘한 만족감 하나가 뒤이어 따라왔다.
'그래 큰일 치렀는데, 오늘 하루쯤 푹 쉬어도 되겠지.' 얼른 알람단추를 눌러 남편의 단잠을 좀더 지켜주기로 했다.

그 이유는 바로 2006년 12월 6일 때문이다. 이 날은 올 한해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내 인생의 특종으로 남을 그런 하루였다. 집 없는 설움과, 이사의 번잡스러움, 새 둥지를 찾아헤매는 그 시난고난함에서 드디어 나도 해방을 하게 된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내 집! 진짜 내 집이 생긴 날이다. 비록 대출의 힘을 빌긴 했지만, 생전 처음으로 만져보는 수천만원의 돈을 한장 한장 세가며 잔금을 치르고 두번 세번 읽어도 도통 무슨 말인지도 모를 각종 서류와 문서에 사인을 하며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드디어 나도 내 집을 갖게 됨을 서서히 실감할 수 있었다.

남편은 평생에 처음 장만하는 집이 자신이 아닌 내 이름으로 등록이 되는데도 "너도 참 신식이다. 집을 부인명의로 다 해주고 말야"하는 시누이의 핀잔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에도 별반 싫은 내색이 없었다.

하긴 남편의 승인이 없었다면 어찌 내 맘대로 남편이 아닌 내 이름 석자를 대한민국 등기부에 등재를 했겠는가? 시누이에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남편에게는 누구의 이름으로 문패를 새기느냐보다 더 중요한게 따로 있는 듯했다.

이사 갈 날은 아직도 한참인데 남편은 계약을 하던 그날부터 페인트를 새로 칠해야 하니, 마루를 깔아야 하니, 이참에 아예 부모님도 모셔오는 게 어떻겠냐, 그럴려면 베란다는 확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블럭놀이라도 하듯 작은 집을 개조하느라 꿈 속에서는 밤마다 공사중이었던 것이다.

잔금을 치르고 돌아서는데 "이사하는 날까지 어떻게 기다리냐?"하는 남편의 그 말에는 이름을 등재시킨 나보다 더한 책임감과 애착이 뚝뚝 묻어나고 있었다. 그 남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렇게 좋아"였다.

물론 나도 설레고 기쁘고, 좋은 그 감정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가장이라면 누구나 풀어야 할 평생의 숙제 중 가장 어렵고 가장 힘든 숙제를 푼 남편의 그 만족감에 어찌 비할 수 있겠는가? 이럴 때는 그냥 아닌 척, 덜한 척 해주는 것이 아내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집 문제에 있어 한번 꼬이면 풀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건강이 재산이라는 말을 절감하는 한해였다.

평생을 병원문턱이라고는 모르고 살던 아버지와 하루라도 쉬면 당장 생계에 위협을 받는 남편의 맹장수술, 그리고 건강만은 자신 있었던 나의 저혈압이 그것이었다. 병이란 것은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조용히 서서히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맞이하는 사람으로서는 당황스럽고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매일 불면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이 병이라는 생각은 하지를 못했었다. 하는 일이 없으니 잠이 안오고, 잠이 안오니 낮에는 항상 비몽사몽으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저혈압에 좋다는 말에 술을 마셔보기도 했지만, 역시 그때뿐인 처방으로는 병이 낫기는커녕, 여차하면 병이 낫기도 전에 금주클리닉의 도움을 받게 될 것 같아 시작한 것이 바로 운동이었다.

일주일에 오일 이상, 하루 한시간 이상씩 빨리 걷기를 하면서 난 건강 외에도 숨어 있던 나의 근성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한번 시작한 건 꼭 끝장을 보고야 만다는 정신과,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는 승부근성이었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지난 넉달 동안 쉬지 않고 운동을 했다. 그 결과는 가히 놀랍기만 했다. 술을 마시고 잠이 드는 날은 아침이면 속도 쓰리고, 머리도 아파왔지만 운동 후 드는 밤잠은 꿀맛보다 더 달콤했고, 맞이하는 아침은 떠오르는 태양보다 더 찬란하기만 했다.

물론, 살도 많이 빠졌다. 타고난 통뼈라 아무리 운동을 해도 빠지지 않을 거라는 남편의 확신을 뒤집으며 3킬로그램이나 줄어든 것이다. "에게! 겨우 3킬로!"하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은 누구나 3킬로 남짓의 생명으로 세상에 내보내진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비웃음이 아니라 박수를 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게다가 빠진 살보다 더 많은 자신감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은 추위와 괴팍스런 날씨 때문에 조금 게으름을 부리고 있지만 운동에 길들여져 운동할 시간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이 몸과 마음만은 머지않아 또 운동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소위 "아무것도 아니다"는 남편의 맹장수술에도 병원비와 생계를 걱정하고 보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늦게나마 남편 이름으로 보험을 가입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 가장 대박인 특종이 있다. 그건 바로 이제껏 단 한번도 고맙다고, 대단하다고, 존경스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에 대한 또 다른 발견이었다.그 이름이 내 남편임에 조금은 쑥스럽지만 내 인생의 특종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노점상 사장님을 얻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도 남편은 전화를 해와서는 아이들의 사이즈를 물어왔다. 알고보니 애들 옷을 팔기 위해 나온 아저씨의 헛헛한 홑바지와 티셔츠를 어쩌지 못해 남편이 먼저 본인이 팔고 있는 겨울옷을 들고가서 애들 옷이랑 맞바꾸자고 한것이다.

그렇게 바꿔온 애들 옷은 물론 입히지 못하고 있다. 디자인이 안 예쁘고, 원단이 낡고, 스타일이 구식이고, 그 흔한 브랜드메이커가 안 붙어서가 아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 모든 조건까지 갖춰줬으면 오죽 좋으랴만은 나 역시 워낙 구식인지라 겨울옷은 그저 따뜻하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남편이 사온 옷을 옷장 안에 넣어둘 위인은 되지 못한다.

작은애 것은 너무 작고, 큰애 것은 내가 입어도 될 정도로 큼지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작은애는 항상 어리다고만 생각하고, 큰애는 크게만 생각하는 남편의 심리가 작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노점상을 하면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우리 네 식구 먹고 사는 데 지장만 없으면 했다.(사실 요즘 같으면 추위와 괴팍스런 날씨 때문에 조금 지장이 생기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꿔오는 각종 먹을거리와 옷들 때문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공으로 얻게 되었다.

그건 바로 인심이었고, 사람냄새 물씬나는 남편의 넉넉함이었다. 언제까지 노점상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점상을 접거나, 번듯한 내 가게를 갖게 되더라도 남편이 지난 일년 동안 보여준 "돈보다 사람이 먼저"였던 그 마음만은 변치 않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건 모두에게 칭찬받고 싶고,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특종이다. 그건 바로 지난 2006년의 삼백마흔날을 내가 단 하루도 잊지 않고 해온 일에 관한 것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또 누구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 그 일은 바로 시골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런 엄마를 봐서인지 요즘은 밤이 되기가 무섭게 다섯살 된 딸아이는 전화기를 집어들어 할머니네 번호를 꾹꾹 누른다. 제 집 전화번호 일곱자리도 못 외는 녀석이 할머니에 전화번호 열자리는 어찌 그리 잘도 기억하는지 그 아이가 무서워 저녁 외출은 꿈도 꾸지 못한다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다.

잠깐이라도 엄마가 안보이면 그 누구도 아닌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서는 엄마 없어졌다고 울어대는 통에 상처만 안났을 뿐 늙은 엄마의 꾸지람에 등짝은 시퍼렇게 멍이 들고, 다리는 열번도 더 분질러졌었다.

게다가 전화를 하는 딸아이의 말들이 더 나를 놀래킨다. "할무니 밥 잡쉈어요? 할아버지 괴기 많이 잡수셨어요? 다리 아픈 거는 어쩐가 몰라! 매 아프믄 뱅원 가야쓰끈디요." 이 엄마가 하는 말들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니 요즘엔 슬슬 딸보다는 손녀의 전화를 더 기다리는 듯해서 십삼년 전화해온 내 맘이 조금 서운해지려고 한다.

사실 하루도 쉬지 않고 전화를 하다 보면 때로는 귀찮고, 때로는 번거롭고, 때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돈벌이 안되는 아버지한테 용돈 한푼 드리지 못할 때는 더없이 마음이 아팠고, 일이 바빠서 얼른 끊으라고 할 때는 한달음에 달려가 도와드리지 못하면서 새끼제비처럼 잘도 받아먹는 이 뻔뻔함이 싫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부모님은 딸 전화에 용기를 얻고, 딸 전화 받아야 잠이 오고, 딸 전화가 사는 재미라니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딸의 전화 한통이 부모님 두분을 살게 한다는데 말이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대한민국 모든 아들, 딸들이 부모님께 삶의 이유가 되고, 희망이 된다는 그 전화를 드리기 바라면서 2006년 한해 나만의 특종을 마무리 지어본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나만의 특종"응모합니다.

사실은 특종 공모기사에 '나도 대학생'이라는 번듯한 제목을 붙이고 싶었으나 아직도 결정을 못내리고 있는 상황이라 '2007년 나만의 계획'에 대한 기사를 공모할 때 번듯한 제목을 붙일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기사를 접습니다. 모두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한해 되셨으리라 믿으면서 마무리 또한 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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