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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미래를 가장 명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다. 미래학(futurology)에서 과거(역사)와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를 연구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12월 5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이 호주의 수도 캔버라에 도착해 2박3일 동안의 호주 국빈방문일정을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박정희(1968), 노태우(1988), 김영삼(1994), 김대중(1999) 대통령에 이어 호주를 공식 방문한 다섯 번째 대통령이다.

@BRI@우연하게도 한국 대통령들이 호주를 방문할 때마다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사안들이 발생했다. '군사독재의 나라'에서 'IMF 국란'을 거쳐 'IT 선진국'으로 변화한 과정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한-호 두 나라 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박정희 대통령, 호주와 함께 APEC을 출범시킨 노태우 대통령, 시드니에서 세계화 선언을 한 김영삼 대통령, '한국의 만델라'로 불리면서 한국의 국가이미지를 한껏 끌어올린 김대중 대통령이 그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어떤 미래적 전망을 그리고 있을까?

호주에서 노의 구상은 무엇?

청와대 대변인실이 발표한 브리핑자료에 의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2월 3일,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것을 필두로 호주, 뉴질랜드를 방문한 후에, 12월 11일부터 13일까지 필리핀에서 열리는 제10차 ASEAN+3 정상회의, 제2차 동아시아 정상회의 등 ASEAN 관련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호주방문을 통해서 에너지, 광물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약속받는 자원협력양해각서에 서명하고,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의 공동관심사를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중 최근에 불거진 북핵문제에 관한 논의는 초미의 관심을 모으는 사항이다. 이는 호주가 미국, 영국과 더불어 대북강경론을 펼치는 대표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호주는 지난 북한 핵실험 이후 제일 먼저 대북제재(비자발급 중지, 금융제재, PSI참여)에 나선 바 있다. 특히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 이어 '부시의 둘째 푸들'로 불릴 정도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정책을 철저하게 추종하는 강경보수파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 호주언론은 "이번 노 대통령의 호주방문으로 한-호 양국의 관계증진에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북한 핵문제 해결방안을 놓고 양국 정상이 이견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고 있다.

호주통신(AAP)은 지난달 베트남에서 열린 2006년 APEC회의 당시 미국과 호주, 일본이 한국에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할 것을 요구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존 하워드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의 방호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적절한 답변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한편, 자원과 북한, 이 두 가지 현안은 1968년 9월 호주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이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한-호 정상회담 단골메뉴다. 그런 관점에서, 노무현-존 하워드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어림짐작해본다.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의 방호에 맞춰서 호주 공영방송 SBS라디오 한국어 프로그램에서 '역대 한국 대통령의 호주방문 역사'라는 타이틀의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방송내용의 일부를 인용해서 대통령별로 다시 정리했다.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호주방문 역사

▲ 1968년 노스웨스트항공사 전세비행기를 타고 호주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 이례적으로 큰딸(박근혜)을 대동했다.
ⓒ 국정홍보처
▲ 전세기 타고 날아온 박정희 대통령 … 1968년 9월에 호주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은 호주를 국빈 방문한 첫 대통령이다. 그는 1967년에도 호주를 방문했지만 재직 중에 급서한 홀트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한 조문방문이었다.

박 대통령 부부는 이례적으로 17살 난 딸 박근혜(당시 성심여고2)를 대동했다. 박근혜 의원의 첫 외국나들이였다. 박 대통령 가족은 대통령 전용기가 없던 시절이라서 노스웨스트 항공사의 전세기를 타고 호주에 입국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존 고튼 총리를 상대로 원자재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정상회담을 했고, 두 정상은 양국의 유대강화방안을 집중적으로 협의한 결과 정치, 경제, 사회문제 협력증진방안 등 모두 23개 항의 합의안을 도출했다.

그 후 20년 동안 호주를 방문한 한국 대통령은 없었다. 양국의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일부 한인 동포사회 원로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정치와 광주민주항쟁, 12,12사태 등이 간접적인 원인이었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 반대시위 속에 등장한 노태우 대통령 … 20년 만인 1988년, 마침내 노태우 대통령과 봅 호크 호주 총리의 정상회담이 호주에서 열렸다. 산발적 반독재 반대 시위 속에 호주를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은 정부차원에서 한-호 관계를 텄다.

무엇보다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 기구) 창설 구상이 노태우-봅 호크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이때 양국관계 발전의 살아있는 첨병 역할을 해온 호한재단(Australia Korea Foundation, 호주)과 한호재단(Korea Australia Foundation, 한국) 창립이 합의되기도 했다. 한동안 역동적으로 활동했던 한호재단이 유명무실해진 아쉬움이 있지만 호한재단은 지금도 양국의 문화교류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 캔버라 총독관저에서 조깅을 준비하는 김영삼 대통령.
ⓒ 국정홍보처
▲ "북한을 돕자"던 김영삼 대통령 … 1994년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호주를 방문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폴 키팅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워킹홀리데이 비자제도 및 한국전쟁 참전 기념탐 건립 추진에 합의했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김영삼 대통령의 특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현재 호주 한인사회의 양적 팽창의 기반이 되고 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제도 도입에 대한 합의는 드라마틱하게 이뤄졌다. 양국 정상의 기자회견장에서 동아일보 송영언 기자(현 동아일보 논설위원)가 질문형식으로 언급하자 두 정상이 즉석에서 합의한 것.

시드니 구상으로도 불리는 '세계화선언'은 리젠트 호텔에서 수행기자단과의 조찬회견에서 이뤄졌다. 호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구상했다는 이유로 '비행기 구상'으로 표현하기도 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그 당시 국제화라는 말이 너무 흔해서 세계화라는 단어를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세계화 선언'은 나중에 'IMF 국란'의 단초가 됐다는 이유로 크게 비난받았다.

한가지 주목할 사항은 김영삼 대통령이 당시 동포간담회를 통해 북한을 돕자고 호소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우리가 북한을 돕지 않으면 북한을 도와줄 나라가 하나도 없다. 우리는 그럴만한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최근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을 퍼주기라고 비판한 그의 모습과 크게 상충하는 발언이었다.

▲ '최고의 환대' 받은 김대중 대통령 … 1999년, 호주를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의 그 어느 대통령보다 호주 언론으로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북한에 대해 강경일변도로 나가던 호주정부로부터 '햇볕정책'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얻은 것은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호주 언론은 김대중 대통령을 '아시아의 만델라'라고 격찬하며 그의 민주화 역정에 큰 관심을 보였다.

▲ 캔버라 공항에서 존 하워드 총리의 영접을 받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
ⓒ 국정홍보처
김대중 대통령은 존 하워드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과학기술협력 협정, 상호 사법지원합의 협정, 전력개발 촉진을 위한 합의 등의 성과를 얻었지만 호주동포사회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일부 동포들이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실리 못지않게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의 면모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호주방문으로 형성된 한국의 높은 국가이미지는 외교와 통상 측면에서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큰 무형자산으로 작용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숙제

2006년 현재 호주와 한국의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호주는 한국의 8번째 수출교역국이지만 한국은 호주의 3번째 큰 수출국가로, 한국의 대 호주 만년 무역적자는 해소되지 않았다. 무역적자의 주된 원인은 호주로부터 석탄, 원유, 철광석 등 천연자원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말 한국을 방문한 존 하워드 총리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천연가스를 수입해 달라'며 구애작전을 펼쳤지만 한국의 반응은 냉담했다. "가스산업 구조개편이라는 발등의 불이 급했던 데다 시베리아 가스전을 노리고 있는 터였기 때문이다"라고 한국의 언론은 보도했다. 그런데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은 오히려 한국이 "천연가스를 구입할 수 없느냐?"면서 호주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신세가 됐다.

석탄물량 확보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1990년대 한전은 호주에 3개 광산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한국정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광산지분을 팔고 현지 사무소까지 폐쇄한 바 있다.

▲ 캔버라 거리에 설치된 노무현 대통령 방호 환영 대형 간판.
ⓒ 국정홍보처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 상대인 존 하워드 총리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신봉자다. 경제우선정책과 국익 우선정책을 금과옥조로 삼는 노련하기 그지없는 '정치 10단'으로 정평이 나 있다.

또 12월 4일, 당권경쟁에 승리해서 노동당 당수직에 오른 캐빈 러드 제1야당 당수도 중요한 협상 파트너다. 그가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차기 총리직에 오를 가능성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에게는 역대 대통령들이 호주를 방문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혹은 주고, 받은 것)'을 꼼꼼하게 체크해 정상회담의 성과를 극대화 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다. 역사학은 미래학의 텍스트다. 노 대통령이 호주 방문에서 자원확보 문제와 북핵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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