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박명순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대용으로 부랴부랴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밤사이 누군가 식빵 몇 개를 꺼내 먹었는지 빵이 부족하네요. 하는 수 없이 한 개를 만들어 반씩 나눠 접시에 담아 놓으니, 아이들 둘이서 크기를 재가며 더 큰 것을 먹겠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매일 먹는 국과 밥이 싫증 날 만도 하지요. 특히, 작은놈이 더 유난을 떱니다. 빵을 양손에 들고 요리조리 크기를 재더니 한 입 베어 문 빵을 누나 몫으로 내놓네요.

"야, 이 돼지야!"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던 딸아이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자 벌써 저만큼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딸아이가 엉겁결에 바닥에 흘린 빵 조각을 주워 입안에 털어 넣는 게 보입니다.

바로 그때, 아득한 기억 너머에서 방바닥에 떨어진 막대 사탕을 줍는 아이가 떠오르고, 그 뒤를 이어 아이의 손목을 치며 "먹는 것을 너무 밝히면 이 담에 가난해"라며 막대 사탕을 빼앗아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던 섬뜩한 아이 엄마의 모습이 불쑥 떠오른 것입니다.

마침 옆에서 그 소리를 들은 저는 그 순간 가슴이 움찔하며 불에 댄 듯 낯이 붉어졌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왜냐하면 먹을거리가 귀해 잘 녹지 않는 눈깔사탕 하나도 동생과 돌려먹던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가끔 엄마가 씹다 붙여 놓은 껌을 찾느라 벽지를 더듬거나 부엌 찬장 안을 뒤지기도 했는데, 단물 빠진 껌이 굉장한 먹을거리인양 우리는 서로 씹겠다고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건빵 한 봉지가 생기면 숫자를 늘려 먹을 요량으로 일단 반으로 쪼갭니다. 그리고 똑같이 반반씩 나누어 갖고도 가위바위보 내기를 해 한 개라도 더 먹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때 야금야금, 깨작깨작은 저의 주특기였지요.

한 입에 털어 넣고 마는 동생과 달리, 먹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아껴먹는 모습이 지금 저의 알뜰한 성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먹다 떨어뜨린 사탕쯤이야 바로 주워서 물에 씻어서 먹는 게 보통이었던 제게 여간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였지요.

그래서 이렇게 사나? 갑자기 멀쩡한 제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지요.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빚으로 시작한 신혼집에서 맞벌이 10년 만에 집 한 채 장만한 걸 스스로 대견해하던 제 삶이 조금 가난해 보였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어서 일찍부터 넉넉한 사람들이 부러워졌습니다.

그러나 곧 웃고 말았습니다.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군 내 가정이기에 그들에게 없을 뿌듯함이 제게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인내 끝에 맺힌 달콤한 열매의 참맛을 아이들도 알게 되었으니 이 보다 큰 교육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난히 먹는 것에 욕심을 부렸다기보다, 먹고 싶은 달콤한 유혹을 이겨내고 그 기쁨을 감질나 하며 좀 더 오래 맛보겠다는 어린 영혼의 순수한 욕심이 아니었을까요.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걸맞지 않지만, 넘치는 것보다 조금 부족한 게 아이들 교육에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먹는 일의 '도도함'을 가르치지 못한 탓에, 우리 아이들은 뭐든 잘 먹습니다. 잘 먹으니 건강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부적과도 같은 '식탐은 가난이다'는 말이 망령처럼 되살아나서, '혹시 우리 아이들이 가난하게 살면 어쩌지?' 하는 노파심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들이 커서 우아하게 잘 살면 좋겠지만, 그보다 먹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게 우선인 것 같아, 아직도 저는 바닥에 떨어진 사탕을 버리지 못합니다. 지나친 식탐도 문제지만,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먹을 수 있는 것도 너무 함부로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식탐은 가난이다'는 모호한 편견을 심어주기에 앞서, 분수에 맞는 식생활과 검소함을 먼저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