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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중인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28일 오전 열린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전문가 초청 정책간담회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망과 과제`에 참석한뒤 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하루도 안 돼서 공은 다시 열린우리당에게 돌아왔다. 당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치에서 그만 손을 떼라"고 했지만 노 대통령은 초강수 정치로 되돌려줬다.

28일 노 대통령은 "지금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두 가지뿐"이라며 이 두 가지를 모두 걸었다. "그 길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임기 중도 하차와 탈당 가능성을 흘렸다.

전날 김근태 의장이 "앞으로 정부가 방향을 정해놓고 추진하는 당정협의에는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 지도부와 대통령의 직접 대화를 강조한 것이 무색할 지경이다. 한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언론을 통해 들어야하는 당 지도부는 뭐가 되나"라며 혀를 찼다.

"대통령은 정치에서 손 떼라"→"결별하자는 게 아니라..."

2003년에도...노무현 대통령은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한 입장을 밝했다.
ⓒ 이종호
이날 오전 9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김한길 원내대표만 해도 이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제야말로 당정 분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대통령은 안보와 외교·경제 문제에 집중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노 대통령의 정치 개입 금지를 요구하며 내세운 논리는 '행정부 수반' 역할론이다.

송영길 의원(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열린우리당이 최초로 집권해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긴밀한 협의가 필요했을 때는 '당정 분리'라는 이름으로 당의 개입이 사실상 제한됐다"며 "노 대통령은 정치에 개입하지 말고 남은 임기 동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행정권 수반으로 헌법적 권한을 충실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는 정당이 자주적으로, 민심에 맞게 풀어갈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날 회의 결과를 브리핑한 노웅래 공보부대표 역시 "대통령이 정치에 관여해서 민생과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치는 당에 맡기고 안보와 경제에 전념해 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전해진 뒤 열린우리당은 표정 변화가 역력했다.

김근태 의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날 열린정책연구원 주최의 '북핵 사태' 전문가 토론회에 참석한 김 의장의 '멘트'를 따기 위해 2시간 가량을 기다린 취재진의 질문에도 일체 답하지 않았다. "수고하십니다" "비가 그쳐야할 텐데"라며 서둘러 국회를 빠져나갔다.

김 의장은 이날 저녁 예정된 비상대책위 회의를 통해 당내 의견을 수렴한 뒤, 조율된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말은 아끼고 있지만 "매우 중대한 상황"이라는 분위기는 감지된다.

우상호 대변인의 논평도 '톤 다운' 됐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과 결별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반자로서 함께 가자는 것이다. 국정을 함께 논하고 책임을 나누자는 점에서 고언을 드렸다. 국정운영의 책임은 당에도 있으므로 함께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하 지혜를 발휘하려 노력하고 있다. 국민은 당정청이 한 목소리로 민생에 전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 대변인은 이후 기자들과 만나 "본인의 인사권이 휘둘리는 마당에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의 발로로 이해할 수 있다"라며 연민과 공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청와대 만찬 거절로 폭발한 당청 관계는 당분간 '냉각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청와대쪽에서도 열린우리당쪽에서도 당장 만나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연기된 청와대 회동에 대해서도 별다른 기약이 없다.

['임기' 발언] '모든 것'을 걸고 한나라당 향해 던진 승부수

2005년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대연정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정치협상을 정치권에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김동진
열린우리당에선 노 대통령의 발언을 두 가지로 분리해서 봤다.

우선,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발언은 한나라당을 향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사실상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킨 한나라당이 답할 대목"이라며 "대통령이 사임하면 60일 이내 선거를 치러야 하는데 한나라당은 준비가 되어 있나"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이 앞서 제안한 여야정 정치협상회의만 해도 '주고받는' 협상의 성격이지만 대통령 임기는 '모든 것'을 건 승부수다. 한나라당으로서도 부담스런 대목이다. 이 당직자는 "후보를 최소한 30일 전에 뽑아야 할텐데 이명박·박근혜의 후보단일화가 가능하겠냐"라고 덧붙였다.

헌법 제68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궐위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 선거를 통해 선출된 후임 대통령의 임기 규정은 없으나, 5년의 임기를 새로 보장받는다는 게 다수 견해다.

두번째, 노 대통령의 "내가 당적을 포기해야 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되면, 그건 아주 불행한 일"이라는 말은 반대로 열린우리당을 향해있다. 탈당 문제다.

우상호 대변인은 지금도 "열린우리당은 일관되게 대통령의 탈당을 반대해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계개편 과정에서 노 대통령의 탈당은 예상된 바다. 문제는 언제냐 하는 점이다.

지금은 아니다. 당장 지도부에겐 정계개편 동력이 없다. 정동영-김근태계 핵심 맴버들의 회동도 무산되었다. 정동영 쪽에서 발을 뺐다. 여기에 노 대통령의 탈당은 '원심력'을 자극한다. 당장 '친노' 그룹은 통제권 밖에 놓인다.

김형주 의원(참여정치실천연대 대표)는 "김근태 의장 개인의 불편한 감정을 넘어 GT(김근태) 그룹 전체가 대통령과 각을 키우면서 간다면 더 이상 자제가 안 될 것"이라며 "그러면 아예 패러다임을 바꿔서 억지로 함께 하느니보다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냉정하게 분화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질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탈당' 발언] 열린우리당, "지금은 정계개편 동력도 없는데"

2006년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근의 정치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잠시 눈을 감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노 대통령이 실제 임기를 마치지 않고 중도 하차할 가능성? 대체로 "희박하다"는 전망을 내놓지만 누구도 단언은 못하고 있다. 여야 의원들 사이에선 대통령 사임시 헌법 규정을 살피는 어수선한 분위기도 감지되지만, 청와대에선 "각오와 심경을 표현한 것"이라며 더 이상의 해석을 삼가했다.

당내 '전략통'으로 꼽히는 민병두 의원은 "중대한 각오를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사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민 의원은 "임기 내 사법·국방개혁 등의 법안을 처리할 의지가 확고하다"며 "대통령직을 걸어서라도 한나라당의 협조를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사임까지 상황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깔려 있다. 그렇게 되면 노 대통령은 탈당·사임이라는 순차적인 카드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된다.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다.

민 의원의 분석이 맞다면, '임기 시작부터 레임덕'이라는 소리를 들어온 노 대통령의 역설적인 승부수다.

노 대통령의 임기를 건 발언은 국정의 고비 때마다 나왔다. 2003년 "재신임을 묻겠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작년 대연정 제안 때 절정을 이뤘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한국정치의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라면 대통령의 권력을 내놓겠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이를 두고 민주노동당은 "국민 협박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박용진 대변인은 "어떻게 47석 때 정치와 151석 때의 정치가 똑같냐"며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은 모든 것을 쥐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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