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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연재소설이 신문 판매부수를 좌우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기 작가를 유치하는 일이 곧 신문의 경쟁력이었다. 소설은 장안의 지가(紙價)를 올리며 인기리에 연재되다가 책으로 영화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대박 문화 상품의 정해진 코스였다. 어쩌다 신문이 안 온 날 배달 소년들이 두 번 걸음 해야 했던 진짜 이유도 뉴스보다 연재소설에 빠진 독자들 때문이기 일쑤였다.

그 시절 신문은 세상을 읽는 척도였고 신문 연재소설은 세상사를 담은 거울의 한 단면이었다. 작가들은 그 역할에 충실했고, 그 수고로운 매일의 노동은 시대의 걸작을 낳기도 했다. 유명한 소설치고 신문 연재를 거치지 않은 작품이 드물었다.

지금 대한민국 문화계의 최대 이슈는 문화일보가 연재 중인 소설 <강안남자>이다. 청와대가 연재소설의 선정성을 이유로 문화일보 절독을 선언하면서 시작된 파문은 정치공방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이쯤 되면 과거 같아서는 당연히 '탄압' '표현의 자유', 혹은 예술과 외설에 대한 논쟁들이 즐비할 터다.

문단 전체가 들끓고 정권의 심사를 건드린 작가의 이름은 문학사에 한 방점을 찍으며 독자들의 지지를 얻어냈을 것이다. 과거의 외설 시비는 적어도 '작품'을 놓고 문학의 이름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성을 메타포로 한 시대와 정권에 대한 풍자 또한 없을 리 없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강안남자> 사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일 뿐이다. 인터넷 '야설' 수준의 것을 '문화'를 표방한다는 신문이 버젓이 연재한 것은, 그 신문의 저급한 취향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미 수년째 연재됐음에도 이제야 문제 삼은 청와대의 뒤늦은 개입이 일을 우습게 만들었다. 외설로조차 불릴 수 없는 이 화장실 객담은 '올해의 소설'로 인구에 회자되는 훈장을 달고 말았다.

청와대와 여당의 진심이 무엇이었건 간에, 소설 <강안남자>는 신문과 소설의 위상이 땅에 떨어져버린 시대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소설을 썼을 뿐이라는 '밤의 작가' 이원호는 일약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로 재탄생했다.

작가는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저항 문학'의 기수로 떠올랐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결과는 소설 <강안남자>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면류관'을 씌워준 꼴이 되었다.

염재만의 <반노>에서 비롯된 외설 논쟁은 적어도 마광수와 장정일로 이어질 때까지는 '문학'의 범주에 있었다. 지금의 사태는 결과적으로 문학을 욕보이고 유린한 셈이다. 정녕 2006년의 소설이 유발시킬 수 있는 정서란 기껏 '청와대 여직원들의 수치심' 말고는 없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 계명대신문과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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