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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날이 추워지면서 사람만 추운 건 아니겠지요. 산자락에 붙여 지은 집이라 여름이면 뱀이 기어 내려오고, 겨울이면 들과 산에서 헐벗고 지내던 쥐들이 온기를 찾아 집으로 찾아듭니다. 쥐의 입장에서야 함께 살자는 공동선의 문제이겠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 더욱이 뱀보다 쥐를 더 두려워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 그것은 한 지붕 아래 함께 동거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세입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 전부터인가. 집안의 벽체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쥐가 그 안에 들어갔을 리는 없고 -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라 아예 그럴 수는 없다고 믿었습니다 - 몇 해 전에 기르다 잃어버린 애완용 집게가 벽 틈으로 들어갔거나, 추위에 쫓긴 딱정벌레들이 벽 틈에서 바스락거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벌레나 집게가 내는 소리 치고는 소리가 너무 컸습니다. 그 소리는 밤이나 낮이나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벽을 두드리면 잠시 조용해지더니 나중에는 망치로 벽을 두드려도 콧방귀도 뀌지 않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벽체 밑으로 밥풀처럼 떨어진 스티로폼 조각들을 발견하였습니다. 명백한 쥐의 소행이었지만, 나는 쉽게 시인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안색이 창백해진 아내는, 내게 어찌 해 보라고 성화였지만 벽 속에 든 쥐를 어떻게 잡는단 말입니까? 들어온 구멍이 있으면 그리로 나가길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벽을 갉아대는 쥐가 벽 안에 든 전선이라도 갉아 합선이라도 낸다면 그 안에 든 스티로폼에 불똥이 튀겨 큰불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 문제의 쥐약
ⓒ 이형덕
날씨 추워지자 찾아든 반갑지 않은 손님... 쥐

할 수 없이 인근의 약국에 가서 "쥐약 있냐"고 물으니, (이 대목에서 도시 사는 이들은 모두 웃더군요. 그런데 실제로 시골에서는 쥐약도 약국에서 팝니다) 약사는 끈끈이를 내놓았습니다. 나는 거기 붙어 발버둥치는 쥐를 상상하곤 곧바로 손을 내저었습니다.

"그거 말고, 먹는 쥐약이요." 그 말에 약사는 먹는 쥐약은 안 나온 지가 꽤 오래되었다고 했습니다. 왜 없냐는 말에, 약사가 하는 답변이 걸작입니다. 대통령이 못 만들게 해서 벌써 몇 년 전부터 생산, 판매를 안 한다는 겁니다.

한때, 백성들의 두발부터 아녀자들의 치마 길이까지 직접 챙긴 영도자가 있었던 시절은 있었지만 쥐가 먹는 약까지 손수 챙기는 대통령이 있다는 소리에 약간 당황했습니다. 사람이나 가축의 피해가 커서 못 팔게 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수긍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해당 장관이 지시한 일이라면 모를까, 어디 대통령이 쥐 잡는 약까지 직접 챙길 리가 있을까. 요즘 들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많은 이들이, 그저 무엇이든 대통령 탓으로 여기는 민심이 엿보이는 것 같아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맞은 편에 비상약품도 비치해 두고 팔던 - 바로 이 대목에서 도시 사람들은 또 웃더군요 - 슈퍼에 가 물으니, 거기는 다른 대통령 밑에서 사는 국민인지, 아니면 대통령 말도 잘 안 듣는 강 건너 사람 친척인지, 쌀알 모양의 먹는 쥐약을 팔더군요. 혹 품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섯 통이나 샀습니다.

우선 개들을 묶어 두고, 무려 12군데의 취약지에 쥐약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보니, 벌써 땅바닥에 있는 세 군데의 쥐약이 말끔히 없어졌습니다. 그때, 그 어두컴컴한 뒷광에서 무언가 시커먼 게 내게 달려들었습니다. 으악! 거의 토끼만한 쥐가... 아니, 자세히 보니, 그것은 분명히 지난 밤에 내가 묶어 놓았던 검둥이 닥스훈트 덕수가 아니겠습니까? 목줄이 풀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없어진 쥐약은?

쥐 잡으려다가 개 잡는가 보다고 놀라서, 이리저리 전화를 걸어 처방을 물었습니다. 쥐약을 먹으면 나대면서 괴로워하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면 안 먹은 거라는 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읍내 가축 약국에 들러 상담을 했습니다. 요즘 쥐약은 몸 안의 혈액에 작용하여 내출혈을 일으키게 한답니다. 그래서 우선 눈이 멀게 되고, 이로 인해 약을 먹은 쥐들은 눈이 침침해져 환한 밖으로 기어 나와 죽게 된다는 겁니다.

대개 쥐약을 먹은 개들은 토하게 되는데, 토하지 않았다면 이삼일 지켜보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 쥐약 겉봉에 보니, 해독제로 비타민을 먹여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집에 있던 비타민C며, 여자들이 먹는 토코페롤까지를 가져다 덕수에게 먹였습니다.

입에 넣으면 뱉는 걸 달래고 얼러서 간신히 두어 알을 먹였는데, 현재 일주일이 지나도록 덕수는 잘 먹고, 잘 노는 걸 보면 비타민이 해독은 되나 보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다시 쥐약 봉투를 보니, 해독제는 비타민 K1이라고 적혀 있더군요. 참 희귀한 비타민 성분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쥐약은 쥐들이 먹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안에 놓은 쥐약도 말끔히 없어진 것입니다. 거실의 장 밑과 부엌 구석에 놓아둔 쥐약이 없어진 걸 보고 아내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침통한 표정으로 나는 없어진 쥐약을 다시 듬뿍 놓고, 그러면 또 없어지기를 서너 번 반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나흘 지나면 100% 죽는다고 사망률까지 정확히 적혀 있는 쥐약이 그렇게 말끔히 사라지는데도 쥐의 시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벽체를 갉작이며 자신의 안부를 묻지도 않았는데, 친절히 전해 줄 뿐입니다.

▲ 쥐 대신 쥐약을 뺏아먹은 혐의로 고생했던 닥스훈트 '덕수'
ⓒ 이형덕
계속 사라지는 쥐약... 쥐들은 어디가서 죽었을까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부엌에 갔던 아내의 비명소리에 - 아이를 낳을 때보다 더 크고 처절한 비명이었습니다 - 기겁을 하여 나가보니, 거의 공황 상태에 빠진 아내는 손으로 부엌만 가리켰습니다.

"걸레인 줄 알고 밟았어요."

드디어 '그분'이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내 발은 움직여지지를 않고, 공연히 늦잠을 자는 아이만 헛 입을 벌려 연거푸 불러댔습니다. 잠시 후, 정신을 수습하여 벽에 기대 놓았던 죽비를 들고, 아내와 아이에게 떠밀려 부엌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습니다. 등 뒤에서 아우성치며 시키는 대로,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을 들어 보니, 그 안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누운 쥐의 검은 등이 보였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죽비로 그분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습니다.

[추신] 현장 검증에 입회하여 사체를 확인한 아내의 말에 의하자면, 자신이 보일러실에서 목격한 팔뚝만한 쥐와는 동일 쥐가 아님이 판명되어 여전히 우리 가족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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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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