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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대학로에 있는 이음아트에서 2006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리나>를 주제로 작가와 독자가 만났다.

▲ 강영숙 작가와 독자들의 만남
ⓒ 이명옥
최창근씨가 사회를 맡은 이 행사에는 작가 강영숙씨와 평론가 소영현씨,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대표교사인 박상영씨, 탈북 소녀로 작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최금희씨, 시인 조병준씨, 소설가 윤성희씨 등이 모여 <리나>를 소재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 강씨는 솔직히 연재를 하기 전에 아무런 세부 계획이 없었고 그저 음악처럼 소박한 느낌으로 1년 3개월간 연재했으며 연재가 끝나자마자 별다른 수정 없이 책으로 나왔다고 <리나>의 출판 배경을 설명했다.

강씨는 또 실제로 탈북한 분들이 책을 보면 마음이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보여드릴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먼저 책을 읽고 ‘경험이 너무 한정되어 있다, 리나를 계속 써라’고 말하기도 하고 ‘공장 지대에서 혼자 살아남아 있는 부분을 작가가 너무 가혹하게 그려내지 않았느냐’며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더라. 마지막 결론에 대해서 P국에 들어오게 끝내려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론이 맥 빠진다는 생각도 들고, 어디 있으나 똑같은 느낌이 들어서 P국에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끝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는 ‘리나의 경험은 꿈같다, 국경에서 서류를 기다리며 상상하다가 꿈으로 끝난 것이 아니냐’는 등 다양한 느낌을 이야기하더라.”

강씨는 매스컴이 주목한 것은 소재 자체의 특이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강씨는 1966년생으로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 왔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평범했다고 한다. 여상을 나오고 무역회사를 3년 정도 다니다가 국문과에 가고 싶어 서울예전에 다녔다고 한다. 즐겁게 학창생활을 했고 지금까지 크리스천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강씨는 본래 시를 쓰고 싶었지만 ‘네 시는 시가 아니니 시를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장르를 바꿨다고 밝혔다. 그가 데뷔한 1997년은 IMF가 터진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데뷔작에 대한 평이 괜찮았음에도 수년간 원고청탁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강씨보다 1년 먼저 데뷔한 윤성희씨나 친구인 소설가 하성란씨는 무척 잘 나가고 있을 때였다. 강씨는 그럭저럭 지내다 <트럭>이라는 작품이 ‘문학동네’의 눈에 띄어 책을 엮게 되었다고 한다.

강씨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단편이 <날마다 축제>인데 그 단편을 쓰면서 해볼 수 있는 일은 다 해 본 것 같으며 지금도 두 딸에게 가끔 이 작품을 읽어준다고 한다.

평론가 소영현씨는 “강 작가는 여전히 구체적인 사실들을 모호하게 만들지만 그만의 독특한 서사 기법과 몇 겹의 매개체로 변형된 개체를 통해서 자신의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들은 그 의식이 변할 때마다 어떻게 변형이 이루어지는가를 잘 읽어내면 재미있게 작품을 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상 방법을 조언해 주었다.

▲ 강영숙 작가와 박상영 셋넷학교 대표교사
ⓒ 이명옥
강씨에게 탈북 소녀 최금희씨를 소개해줘 <리나>를 구상하고 쓰는 데 도움을 준 셋넷학교 교장 박상영씨는 “나는 장군의 아들이다, 왠지 모르게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적응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적응이 안 되는 사람을 보면 쉽게 전염이 된다, 적응 안 되는 어른들에게는 병든 기운이 있지만 적응을 못하는 청소년들에겐 넘치는 에너지가 있지 않은가, 탈북 청소년들을 보는 순간 내가 외로운 저들과 놀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대안 학교를 세운 경위를 설명했다.

이어 “그들은 자의로 이민을 온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뿌리 뽑혀 낯선 땅에 던져진 것이다, ‘강가 앞에서 전화하라우’라는 한마디로 고향을 떠나 3년, 5년 베트남과 중국을 떠돌다 들어온 삶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라고 덧붙였다.

▲ 강영숙 작가와 탈북 여학생 최금희
ⓒ 이명옥
박씨는 “강영숙씨는 술친구인데 만나다보니 적응 못하는 사람에 관심이 많더라, 금희를 데려갔더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쓰는 소재를 잡은 것 같다, 금희가 같이 오면서 책을 절반쯤 읽었는데 ‘우리가 탈출할 때랑 똑같아, 똑같아’ 소리를 반복하더라,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서슴없이 탈북가족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직 그들에게 이 땅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제 3의 땅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시인 조병준씨는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남자들이 나쁜 짓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자들을 악의 축으로 그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작가 강씨는 “보이는 만큼의 현실이 진실이 아닌가”라고 반문한 후 “세상의 많은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역할은 남자들의 몫이고 그 아류로 약자들을 괴롭히는 것 역시 남자들이다, 그것도 남자들의 능력이라고 인정하지만 리나처럼 칼을 들고 행동으로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페미니즘적인 표현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내게 무의식적으로 피해의식이 깔려있는 것 같다, 더 이상 미화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한 독자는 “리나가 넘는 국경이라는 것이 공간의 개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여러 굴절된 욕망의 경계, 소외자들이 지닌 주변인 의식, 꿈이나 가상공간 등 모든 경계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어보려는 작가의 의지가 국경이라는 현실의 경계로 표현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리나>는 독자들의 바람처럼 언젠가는 경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가족 이기주의를 싫어하는 작가 강씨는 탈북자, 이주 노동자, 조선족, 국제결혼, 성적 소수자, 비혼모 등에 관심이 많다. 경계를 허물고 우리 안으로 끌어안아야 할 수많은 경계인들의 실상을 그리는 강씨의 작업은 탈북 가족 이야기 <리나>를 통해 이제 겨우 운을 떼었을 뿐이다. 독자들의 지극한 바람대로 성장 소설의 뒷이야기가 강영숙 특유의 모호하고 까칠한 문체로 다시 선보일 그날을 기대해 본다.

<리나>는 성장소설... 또 다른 시작일 뿐

ⓒ이명옥

<리나>에 대해 작가 강영숙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탈북 가족을 주제로 한 <리나>라는 장편소설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았는데 평소에 탈북가족에 관심이 많았나.
"꼭 그렇지는 않다. 다만 나는 가족 이기주의를 비롯해 소수자들을 소외시키는 이기적인 경계를 무척 싫어한다. <리나>는 소수 열외자에 대한 내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편견과 여전히 존재하는 경계를 드러내 보인 시도일 뿐이다."

- 소설 속 인물들은 허구인가, 아니면 실제 모델이 있는가.
"모두 허구다. 소설을 쓰기 전에 탈북자로 남한에 정착해 현재 외대에 재학 중인 금희씨를 만나 탈북자들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참고만 했을 뿐 특정인을 모델로 삼지는 않았다."

- 앞으로도 계속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쓸 예정인가.
"아직은 확실히 모르겠다. 독자들은 '<리나>는 성장 소설이다, 성장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작품으로 보여 달라'고 주문하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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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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