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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인 호주 중산층 주택. 호주에서도 수년 전엔 한국 못지않은 부동산 광풍이 불었었다.
ⓒ 윤여문

약 2년 전부터 잦아들었지만, 그 이전 10여년 동안 호주에서도 한국 못지않은 부동산투기가 횡행했다. 또한 내집 마련의 꿈을 키워왔던 무주택서민들의 조바심에서 비롯된 사회적 불안심리가 그 광풍의 중심에서 소용돌이쳤다.

그 원인으로는 세계적인 기조였던 낮은 이자율 등이 크게 작용했지만, 부동산으로 한몫 잡겠다고 발벗고 나선 '꾼들'과 결과적으로 그들을 도와준 꼴이 된 부동산중개업자·은행·언론 등도 그 책임의 일단을 면할 수 없다.

'경매장 바람잡이(dummy bidding at property auctions)'까지 일삼는 부동산중개업자들, 소비자협회로부터 고발을 당할 정도로 '돈 장사'에 몰두했던 금융기관들, 부동산경매를 생중계하고 필요 이상으로 대서특필한 방송과 신문사들이 대표적인 '꾼들의 후견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부동산 중개인, 호주에서 두번째로 불신받는 직업

호주에서 가장 신뢰받는 직업군은 간호사(89%)-교사(77%)-경찰(65%) 순이다. 반면 가장 신뢰도가 낮은 직업군은 자동차 세일즈맨(3%)-부동산중개인(10%)-기업CEO(14%) 등이다. 이런 결과는 모건여론조사기관이 14세 이상의 호주 성인에게 직업윤리와 정직성을 물어서 얻은 답이다.

부동산중개사·자동차 세일즈맨·보험판매원이 호주에서 불신받는 직업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난 4~5년 전부터 기업CEO가 포함된 것이 눈에 띤다. 한편 최근에 보도된 부동산업계의 관행을 살펴보면 부동산중개사들이 왜 불신을 당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최근 호주통신(aap)은 "부동산경매 바람잡이 행위는 앞으로 법적인 제재를 당할 것"이라는 정부발표를 전하면서 "구매충동을 유도하기 위해 부동산가격을 예상가보다 낮게 광고하는 행위도 금지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뉴사우스웨일즈주 공정거래위원회는 북부 해안가의 한 부동산업자가 2차례에 걸쳐 바람잡이를 이용한 주택경매를 실시한 사실을 적발하고 해당업자의 부동산중개 자격을 평생 동안 금지(banned for life)시켰다.

▲ '‘돈 잔치 하는 호주의 CEO들'을 보도한 11월 13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
물의 빚는 호주 은행CEO들의 돈잔치

11월 13일자 <시드니모닝헤럴드>는 "호주의 5대 은행 중의 하나인 웨스팩 은행(Westpac Bank)의 CEO 제임스 모건이 840만 호주달러(약 64억 원)의 연봉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는 전년 대비 13% 인상된 금액이다.

웨스팩 은행은 호주의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는 동안 무분별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세일을 실시해서 물의를 일으킨 은행 중의 하나. 모지기 세일을 통해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창출했는데, 그 과실을 일부 은행 고위직들이 나누어 갖는 형국이다.

올초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커버스토리를 통해서 일부 CEO들의 무분별한 '돈 챙기기'를 비판한 바 있다. 노동자들이 버는 1년치의 돈을 호주의 CEO들은 단 1주일 만에 벌어들인다는 것.

같은 신문은 이어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고액연봉을 받는 CEO들이 결성한 경제단체가 노동자의 최저임금 인상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고 보도하면서 "기업에서 벌어들이는 돈을 CEO들이 왕창 가져가버리면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몫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광고에 눈멀어 부동산 붐 편승한 언론들

그러나, 일부 CEO들의 고액연봉을 비판한 <시드니모닝헤럴드>와 <데일리텔레그래프>도 호주 부동산시장 과열을 부추긴 책임의 일단을 면할 수 없다. 사회현상을 전해야하는 언론사로서 부득이한 측면이 있었지만 '꾼들'의 논리와 주장을 여과없이 무분별하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호주의 부동산 붐이 이어지는 동안 호주의 대부분 신문들은 부동산 섹션을 크게 보강했고 부동산시세 변동상황을 간지 형식으로 따로 만들어서 배포했다. 그만큼 부동산시장에서 들어오는 광고수입이 컸던 것.

특히 호주의 대표적인 상업TV방송인 <채널7>과 <채널9>은 '옥션 생중계' '로케이션! 로케이션!(Location! Location!)'등의 프로그램을 방영해서 가뜩이나 뜨겁게 달아오른 부동산시장에 기름을 부었다.

오죽하면 호주국영 abc-TV의 방송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위치>가 "두 방송사의 부동산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프로그램을 보는지 부동산광고를 보는지 헷갈린다"고 비아냥거렸을까. 지금 이 프로그램들은 중단된 상태다.

눈만 뜨면 부동산관련 뉴스를 접해야하는 무주택자들의 심리가 흔들리면서 호주부동산시장의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그들이 마침내 무리한 융자를 얻어서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었던 것. 심한 경우는 100% 융자까지 있었다.

결과론이지만 그들 대부분은 '부동산 상투'를 잡은 꼴이 되어서 지금 울상을 짓고 있다. 상당한 숫자의 주택소유자들이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강제매각을 당해 집을 잃거나, 부동산 가치보다 은행부채가 더 많은 '깡통주택'의 상태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

▲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특색 없이 지어 '빅맥 하우스'라고 불리는 호주의 주택단지. '부동산 붐의 사생아'라고 비난받는 주택형태로 정원이 거의 없다.
ⓒ 윤여문
화병으로 자살한 K씨의 부동산 실패기

K씨는 1980년대 한국에서 작은 규모지만 '집장사'를 해서 꽤 돈을 모은 사람이다. 그는 1989년 주택사업을 하는 친구의 권유를 받아서 호주로 이민을 떠나왔다. 당시 호주의 부동산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기준금리도 17%에 육박해서 은행융자를 받아서 부동산을 구입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K씨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에서 17% 이상의 이자를 내고도 '집장사'를 성공적으로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까지 팔아서 그 돈으로 새 집을 짓고 헌 집을 수리하는 등의 사업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호주는 한국이 아니었다. 까다로운 관청의 허가요건과 건축노동자의 높은 임금 때문에 수지타산을 맞출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손을 들었고, 불행하게도 그가 손을 떼자마자 부동산 가격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자본금을 다 날려버린 K씨는 건설노동자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2004년, 부동산 가격이 절정에 다다랐고 K씨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힘든 노동으로 모은 돈을 종자돈 삼아서 은행융자를 있는대로 받아서 부동산구입에 나섰다.

바로 그 시점이 꼭짓점이었다. 시쳇말로 상투를 잡은 것. K씨가 그 당시 '부동산 폭락'을 경고하는 연방준비은행(RBA)나 일부 경제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피할 수 있는 재앙이었다.

호주 부동산의 사이클을 거꾸로 탄 K씨는 결국 엄청난 빚에 시달리게 됐다. K씨는 지방 도시로 도망치듯 떠났다가,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자 자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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