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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동양 최대라는 톤레샵 호수에서 능숙한 자세로 배를 모는 아이들
크기가 동양 최대라는 톤레샵 호수에서 능숙한 자세로 배를 모는 아이들 ⓒ 제정길

바다 보다 넓은 톤레샵(Tonle Sap) 호수에 해가 잠깐 비껴 섰다. 서울시의 열 배나 되는 물밑에는 고래까지 산다는 (가이드 왈) 이 거대한 호수에 서보니, 인간의 삶터가 땅위만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알겠다. 호반가로는 수많은 수상가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호심 곳곳에는 조막만 한 어린애들의 배 몰이가 한창인데, 다섯 살도 채 안돼 보이는 아이의 노질이 프로의 경지를 넘는구나. 막

배를 타고 30분쯤 호심을 헤쳐 나아가니 호수의 중앙에 이르기는 턱없이 멀었으나 이미 대해(大海)의 맛을 풍겨, 배를 천천히 돌리면서 산천경개를 구경한다.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물결은 찰랑찰랑 뱃전을 때리고, 구름은 멀리 두둥실 떴고, 해마저 서편에 비스듬히 누워 그 매운 맛이 덜해 서늘하고 상쾌하다. 게다가 대양(大洋)같은 호면(湖面)에서 맞는 일모(日暮)의 풍경이란, 약간 쓸쓸하고 약간 감미롭고 약간 멜랑꼬리 한 맛을 더해 기분이 장히 고조되는 차에, 그때 멀리서 작은 쪽배에 몸을 싣고 아이 하나 우리 곁으로 다가오니….

ⓒ 제정길

가까이 다가올수록 윤곽이 뚜렷해지는데, 아니 이럴 수가. 쪽배라고 생각되었던 것은 쪽배가 아니라 양은 대야이고, 노라는 것은 노가 아니라 나무 막대기에 불과한데, 게다가…. 놀랍게도 채 여섯 살도 돼 보이지 않는 아이는 몸 전체에 팔을 하나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았으니….

ⓒ 제정길

양은 대야 하나와 나무 막대기 하나와 남은 팔 하나로, 손오공이 구름 타고 천지간을 횡행하듯 넓디넓은 톤레샵 호수를 자유자재로 횡행하는데, 눌러쓴 모자 아래로 눈빛은 초롱초롱하고 미소는 해맑아서 혹 어느 부처의 현신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마저 들기도 하지만, 모진 세상 인간이란 것들이 살아가는 행태를 생각해보면 어쩐지 납을 삼킨 듯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져, 일없이 넘실대는 물결을 쳐다보며 못 본 척 딴청을 부려보고 싶은데, 어디엔가 대고 삿대질이라도 하며 따져보고 싶은데.

도대체 누구인가!
저 아이를 파도치는 호면 위로 내몰아 쫓은 자는, 내몰아서 한푼의 자비를 벌어오도록 만든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저 아이의 팔을 앗아가게 만든 사람은?

노를 저을 때마다 죽지만 남은 팔은 허공에서 흔들리고, 흔들릴 때마다 보는 이의 가슴에도 물결이 일어, 달러 한 닢 내미는 손이 무참하기만 하네.

ⓒ 제정길

해 기울어 호수 너머로 숨었는데 남은 잔광 저녁 하늘을 채색하여 꿈속인양 불타오르고, 배 속력을 높여 어두워지는 수면에 파도 일렁이며 귀환지로 바삐 돌아가는데, 뱃전에 부딪혀 길게 금을 남기며 뒤로 줄달음질치는 물결 위에는, 양은 대야에 막대기 노를 젓던 외팔이 아이의 잔영이 아직도 따라오는데, 노을, 천천히 쓸쓸해진다.

톤레샵 호수의 저녁 노을
톤레샵 호수의 저녁 노을 ⓒ 제정길

여정을 끝내고 돌아오는 날의 새벽에도 여명은 나를 불러 깨웠다. 열어둔 커튼 너머로, 아무도 모르게 강림하는 메시아처럼 조용히 와서 나의 옷깃을 흔들었다. 일어나 창가로 가니 해는 아직도 뜨지 않았고, 동녘은 일출전의 불그스레한 색깔로 물들어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중앙부근에 두 줄의 푸른빛이 창공을 향하여 뻗어있었다.

상서로웠다. 마치 캄보디아의 앞날에 영광이 있으리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앙코르와트를 세운 위대한 민족, 그러면서 폴포트라는 괴물에 의해 수백 만 명을 학살당한 불행한 민족, 그들의 장래에 서광이 비추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영광 있어라 캄보디아여.
영광 있어라 양은 대야를 타고 톤레샵 호수를 누비는 외팔이 아이여.
영광 영광 있어라.

Siem Reap의 새벽 여명
Siem Reap의 새벽 여명 ⓒ 제정길

덧붙이는 글 | 장삼이사(張三李四) 누구나 다녀오는 앙코르 와트를 그것도 4박5일의 짧은 일정으로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 와서 무얼 안다고 주절주절 글을 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런데 톤레샵 호수에서 양은 대야를 타고 구걸을 하던 외팔이 소년의 잔상이 며칠이 지나도 뇌리에서 지워지지를 않아 결국 이 글을 쓰고 말았다. 

그의 처참한 환경, 그러나 그 환경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았던 밝은 미소. 그는 나보다도 우리 모두 보다도 훨씬 더 자기의 생을 사랑하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그 아이가 아니므로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것을 나는 누구에겐가 전달하고 싶었다. 왜 그런지 그렇게 해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냥.
 
삶은 개체의 수만큼 다양하고 개체의 수만큼 또 외로워 결국 여행이란 이 외로움을 확인해보는 과정의 하나일터….

앙코르 와트 여행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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