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프레야코 사원을 둘러보는 3인의 한국인 아가씨와 그들의 곁을 맴도는 현지 아이들
프레야코 사원을 둘러보는 3인의 한국인 아가씨와 그들의 곁을 맴도는 현지 아이들 ⓒ 제정길

행장을 꾸려 낯선 곳을 향해 떠남은 대체 무엇을 찾아보고자 함일까?

뜨거운 땡볕아래 땀을 줄줄 흘리며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절약하고 저축해서 경비를 마련하여, 한방에 세 명이 자는 불편을 감수하며, 그들은 무엇을 찾아 이 외진 곳을 헤매이는 것일까?

사원(寺院)은 이미 풍화되고 마모되어 부분으로만 남아있고, 버려진 세월의 후미진 곳에서는 자비를 바라며 내미는 아이들의 손길만 쓸쓸한데, 그들은 무엇을 보고자 이곳에 온 것일까?
잃어버린 과거의 향수를 원해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신기함을 찾아서? 현실의 무료함에서 일탈하기 위해서?

바콩 사원의 아름다운 조형미 앞에서, 가파르게 깎아지른 30도의 햇볕을 내뿜는 5층 구조의 돌계단을 걸어 오르면서, 그리고 사원의 맨 꼭대기에 서서 더 넓은 초석으로만 남은 유적지를 내려다보면서, 그 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진 밀림을 조망하면서, 내내 떨쳐버릴 수 없는 생각, 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는 누구인가?

무슨 힘이 이 거대한 신전을 짓게 하고 천년 후에까지 사람을 불러오게 하는가?

다만 몽매한 백성을 끌어가기 위한 통치술의 한 방편이었고 신을 빗댄 통치자의 자기 과장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에 현혹되어 밥상 위의 파리 떼처럼 사람들은 이 더위에도 꾸역꾸역 몰려드는 것은 혹시 아닐까….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랑하는 최초의 피라미드형 사원인 바콩 사원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랑하는 최초의 피라미드형 사원인 바콩 사원 ⓒ 제정길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크고 탐스런 유방과 잘록한 허리, 풍만한 엉덩이와 배꼽가의 주름 서너 개, 발찌는 찼으나 신발은 신지 않은 채 천년의 시간동안 바콩 사원의 한쪽 벽면에 그녀는 서 있었다.

쉼 없는 세월의 조탁은 완벽하였던 그녀의 신체 일부를 바람이 되어 허공 속에 흩어지게 하였으나 그래도 여전히 관능적인 자태로 우릴 내려다보며 유혹하고 있었다. 애초에는 신을 위하여 이제 와서는 인간들을 위하여 춤추는 무신(舞神) 에바타(Evata). 앙드레 말로가 젊은 날 사흘 밤낮을 홀려 쳐다보았다는 에바타, 그 에바타가 그곳에서도 우리를 뇌살시키고 있었다.

바콩 사원 벽면에 조각된 Evata. /압살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더군/
바콩 사원 벽면에 조각된 Evata. /압살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더군/ ⓒ 제정길
그 사람들도 거기에 있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을 다치게 하기 위한, 오랜 내전의 산물인 지뢰에 의하여(캄보디아에 매설된 지뢰가 전 세계 다른 나라에 매설된 것보다 더 많다고 하니…) 신체의 일부를 앗겨버린 사람들이 악사로 변신하여 바콩 사원 아래 보리수나무 그늘 가에서 자비를 구하는 음악을 연주하나, 무신 에바타는 들리지 않는지 춤추지 않고, 지나는 객들은 고개를 외면하고 종종 걸음으로 바삐 간다. 음악은 낮게 깔리는 저녁 안개처럼 우울함이 되어 그들의 곁에만 감돌 뿐!

지뢰 피해자들로 구성된 거리의 오케스트라
지뢰 피해자들로 구성된 거리의 오케스트라 ⓒ 제정길

태양도 종종 걸음으로 바삐 가는지 어느 듯 중천을 넘어섰고, 한때 호수였다는 메마른 땅위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룰레이 사원은 기도처럼 우뚝하고, 1200년이란 시간의 애무는 처녀 같은 연분홍 속살을 드러내게 하였는데, 바람 한 점 없는 염천의 무더위는 순례자의 속살마저 드러내고 싶도록 만드는구나.

9c경 크메르 왕조 초기에 건립된 룰레이 사원
9c경 크메르 왕조 초기에 건립된 룰레이 사원 ⓒ 제정길

오후, 반데스레이(Banteay Srei) 사원. 10세기초에 건립된 붉은 빛 나는 사암의 아름다운 사원. 여성의 성채란 이름처럼 여성스럽고 조형미와 조각술이 환상적으로 감미로운데, 곳곳에 새겨진 부조는 동시대의 어느 것보다 세밀하고 정교하여 도저히 돌로 천년 전에 만들어 졌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게다가 프랑스 인에 의해 복원되었다고 하지만 보존 상태도 아주 좋았고, 다만 힌두교의 신화를 배경으로 하여 양각된 온갖 부조들을 지식과 시간이 짧아 제대로 음미할 수 없음이 안타까웠는데. 누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난디를 타고 있는 시바신이 양각된 반데스레이 정문위의 부조
난디를 타고 있는 시바신이 양각된 반데스레이 정문위의 부조 ⓒ 제정길

중생이 신에게로 다가가는 길은 여러 개의 문들로 첩첩이 격리되어있고,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 본 즉 그곳에 신은 없고 그의 허상만 향 내음 속에 덩그러니 앉아있는데, 만약 그가 애초부터 없었다면 사람들은 무슨 명목으로 이 아름다운 조형물을 후세에 남길 수 있었을꼬?

사원 내부로 들어가는 겹겹의 문: 돌로 만들어졌다는 게 믿기 어려울만큼 섬세하고 화려하다
사원 내부로 들어가는 겹겹의 문: 돌로 만들어졌다는 게 믿기 어려울만큼 섬세하고 화려하다 ⓒ 제정길

어느 듯 서편으로 기운 해는 반데스레이 지붕 위에 마지막 열정을 쏟아 붓는데, 갈길 바쁜 순례객은 신화를 읽어내기에 여념이 없으니….

지붕위에 햇살을 받고 있는 반데스레이 사원
지붕위에 햇살을 받고 있는 반데스레이 사원 ⓒ 제정길

덧붙이는 글 | 장삼이사(張三李四) 누구나 다녀오는 앙코르 와트를 그것도 4박5일의 짧은 일정으로 주마간산 격으로 보고 와서 무얼 안다고 주절주절 글을 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런데 톤레샵 호수에서 양은 대야를 타고 구걸을 하던 외팔이 소년의 잔상이 며칠이 지나도 뇌리에서 지워지지를 않아 결국 이 글을 쓰고 말았다. 

그의 처참한 환경, 그러나 그 환경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았던 밝은 미소. 그는 나보다도 우리 모두 보다도 훨씬 더 자기의 생을 사랑하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는 그 아이가 아니므로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것을 나는 누구에겐가 전달하고 싶었다. 왜 그런지 그렇게 해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그냥.
 
삶은 개체의 수만큼 다양하고 개체의 수만큼 또 외로워 결국 여행이란 이 외로움을 확인해보는 과정의 하나일터….

앙코르 와트 여행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